[건설 여풍] 안미선 포스코건설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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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女풍]

 “영하 40도 러시아 공업도시까지 뒤져 협력사 발굴” 

안미선 포스코건설 상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6.3%. 하지만 건설·부동산 업계의 여성 임원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시공능력 10대 건설사 중에서도 여성 임원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아직은 1~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그만큼 남성 중심적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직 손꼽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여성 임원과 대표가 곳곳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들을 만나봤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까.

 

  “건설사에서 28년간 구매 분야에서만 일한 사람, 남녀를 불문하고 찾기 어려울걸요?”

 

[건설 여풍] 안미선 포스코건설 상무
안미선 포스코건설 구매계약실 상무

 

 

 

 

정말 그랬다. 1992년 포스코의 여성공채로 입사해 포스코건설이 창립된 이후 줄곧 포스코건설에서 구매를 담당한 안미선 상무. 여기저기 찾아봐도 상위권 건설사에서 안 상무보다 구매 업무를 오래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주관적 관점에서 카리스마로 따지나 객관적 관점에서 업력으로 따지나 건설사 구매 파트에서 안 상무와 비견될 사람은 없다”고 했다.

 

안 상무는 28년간 ‘구매’라는 큰 틀에서 여러가지 일을 추진하고 매듭지어왔다. 철근이나 콘크리트 구매 등 구매부서의 일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에만 관여한 것은 아니었다. 상생협력을 통한 하도급 생태계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나 구매제도 개선 등을 꾀했다.

 

“건설에서 구매가 담당하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아세요? 들으면 깜짝 놀라요.”

지난달 31일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본사에서 안 상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타고난 입담가에 기운이 넘치는 에너자이저였다.

 

건설사에서 사회생활 첫 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포스코에서 1992년 여성공채를 실시했다. 남녀 구분없이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다. 그 때 문과에선 28명 정도 뽑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나다. 포스코에서 일할 수도 있었고 새로 만든 포스코건설에서 일할 수도 있었는데 손 들고 건설사로 보내달라고 했다. 건설사는 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고 그 중심에 늘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와서 일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우린 늘 새로운 걸 만든다. 그것도 환율, 물류대란, 통제 불가능한 날씨까지 감안해서 공기(工期)를 맞춘다. 이해관계자도 정말 다양하다. 정부, 인허가기관, 협력사, 발주처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소통해야 한다. 건설사는 공을 수십개 돌리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늘 새로운 분야다. 기술은 또 얼마나 빨리 발전하는지…

 

구매부서도 내가 손 들고 온 곳이다. 처음에 인사부로 가라고 했는데, 프로젝트 중심의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커리어니까 회사에 의견을 개진했다. 경영 MBA도 했고 잘할 수 있다고 어필했다. 회사에서도 의견을 존중해줬다. 그 때 구매부서에 여직원이 많지 않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건설사의 3대 축은 엔지니어링, 조달, 시공이다. 고객의 필요에 맞게 엔지니어링 단계에서 최적의 설계를 만들면, 그 설계에 맞춰 물품과 설비, 자재, 하도급사를 연결하는 구매 업무가 필요한데 그 업무를 하고 있다. 건설사 매출에서 지출되는 비용의 70%를 구매부서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다.

 

모든 분야가 중요하지만 구매는 회사 경쟁력과 직결되는 파트라고 볼 수 있다. 올해부터는 구매 파트 중 설비계약 업무를 맡았다. 예를 들어 포항 제철소를 구성하는 플랜트를 설비라고 하는데, 그 설비를 국내외 제작사로부터 구매하는 일이다. 이전까지는 자재계약을 했다.”

 

자재라면 최근 원자재값이 올라서 고민이 많았겠다.

 

“자재계약그룹에서 시멘트·철근 구매 총괄을 맡았을 땐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국제정세 문제로 공급망에 변화가 생겼던 게 정말 큰 문제였다. 지난해 요소수 파동도 있지 않았나. 고민이었다.

 

디젤(경유) 엔진을 이용하는 건설기계 장비는 대부분 요소수를 필수로 사용하는데 레미콘 차량과 덤프트럭 등이 멈추면 현장이 멈춘다. 그 때 우리는 선제대응한 측면이 있다. 계열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을 통해 요소수를 직접 수입해보자고 제안을 했고 시너지를 발휘했다.

 

요소수 대란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우리 현장의 문제는 크지 않았고, 국가적으로도 필요한 곳에 우리 그룹사가 기여했다.”

 

건설사에서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2011년 인도네시아에 일관제철소를 지을 때 일이다. 플랜트 핵심설비는 사실 유럽 공급사의 기술에 의지해야 한다. 기술적 우위에 있다보니 유럽사들이 부르는 값도 비싸고 우리 협상력은 약해질 수도 있다. 그 때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하다가 엔지니어 부서와 협업해 새 협력사를 찾기로 했다.

 

고민 끝에 찾은 곳이 러시아 공업도시 예카테린부르크(EKATERINBURG)에 있는 공급사다. 우랄 산맥 중부 우랄 지역의 최대도시인데 영하 40도로 아주 추운 곳이다. 직접 만나 확인해보니 러시아에서 몇 개의 훈장도 받는 등 기술이 괜찮았다. 그 회사로선 첫 수출이었고 우리 회사로선 원가는 낮추고 품질을 확보할 수 있었던 파트너사 발굴이었다.”

 

 

 

반대로 가장 고되고 어려웠던 순간을 꼽는다면.

 

“2012년 호주에 갔을 때다. 당시 우리 회사는 호주 진출을 꾀하려고 했다. 광산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싶었다. 사업부서와 함께 구매부서가 나간 첫 시도였다. 수주 견적단계부터 함께 하는 구매 총괄 직책으로 호주에 1년 가까이 나가게 됐다. 5명으로 꾸려진 우리 팀이 가장 먼저한 게 현지 도급계약서 내용을 확인하는 거였다. 핵심만 뽑은 개요서만 500페이지가 넘었다. 그것도 영어로. 그걸 알아야 하도급 조건을 만들고 입찰에 들어갈 수 있으니.

 

호주에서 기술 좋은 파트너사를 찾아 견적을 받는 것도 난관이었다. 첫 진출이다보니 포스코를 몰라서 우릴 만나주지도 않고 이메일에 대한 답도 없었다. 호주 파트너사 없이는 입찰에 제대로 나설 수도 없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안 되길래 결국 발주사를 찾아갔다. 발주사에게 공동으로 이름을 올려서 견적을 받아야 좋은 조건으로 입찰을 넣을 수 있다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하나씩 배워갔다. 바닥부터 시작하니 쉴 시간이나 있어겠나. 발주자 사람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네는 월화수목금금금이네?’”

 

결과는 어땠나.

 

“못 땄다. 다른 국내사가 수주했다. 아무리 계산기 두드려도 나올 수 없던 조건이었는데. 그 때 정말 너무 상심해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셨던 것 같다. 귀국해서는 입사후 처음으로 눈물도 흘렸다. 수주 못해서 미안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수험생 엄마였던 때였다. 아이 옆자리에 있어주지도 못했는데 성과도 나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그 때 거래관계, 구매방법, 소싱 등 해외 프로젝트의 노하우를 단기간에 많이 배웠다. 이 경험을 근간으로 파나마, 방글라데시 등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다.”

 

구매가 관여하는 일이 이렇게 다양할 줄 몰랐다.

 

“협력을 이끌어내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구매의 역할이다. 구매라고 하면 보통 원가절감만 생각하는데 그 원가절감은 우리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전체 파트너사, 우리 공급망이 상생관계에 있어야 가능하다. 상생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하도급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고 궁극적으로 시공사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2020년에 구매혁신추진반장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당시 건설사 최조로 저가제한 낙찰제를 실시했다. 협력사가 수주를 위해 무리한 출혈 경쟁을 하면 결국 공장이나 아파트 등 시공물에 안전 문제가 날 수 있다. 중소협력사가 수익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어야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데, 기존의 최저가 낙찰제는 이런 철학이 없다.

 

우리가 일정 부분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데, 협력업체 부도나 품질 악화 등 기회 비용을 고려하면 궁극적으로 생태계 구축을 통해 경쟁력이 올라간다고 사업부서를 설득했다. 실제로 그렇다. 일정 기술 이상의 파트너사를 구해 오랜 기간 관계를 맺는 건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일이다.”

 

저가제한 낙찰제는 회사가 산출된 저가제한 기준금액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한 입찰자는 배제하는 방식이다. 저가제한 기준금액은 입찰 참여 업체들이 제시한 공사 금액에서 회사 발주 예산초과 금액 및 최저가를 제외한 나머지 입찰 금액의 평균가와 발주 예산을 합한 금액의 80%로 정해진다.

 

[건설 여풍] 안미선 포스코건설 상무
안미선 포스코건설 구매계약실 상무/포스코건설 제공

 

 

 

구매 업무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허투루 할 것이 없지만 현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년에 30~50곳의 현장에 방문해서 협력사와 사업부서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해야 구매제도를 혁신할 수 있다.

 

예를들어 2015년에 근로자들 소통앱을 설치해서 현장 화장실을 확충했다. 이게 무슨 구매부서가 할 일이냐 싶겠지만, 이게 다 하도급 계약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내용이다.”

 

건설사의 몇 없는 여성임원으로 고민에 휩싸인 적은 없나.

 

“건설사에 왜 이렇게 여성 인력이 없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건설하면 공사 현장을 떠올리고, 현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드세고, 강하고, 딱딱하고 그런 이미지가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건설업엔 다양한 직무가 있다. 건설사에 현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 좀 더 여성 인력이 늘어나지 않을까.

 

여성 인력은 이미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현재 포스코건설 구매계약실의 20%가 여성이다. 여성이라고 건설사 입사를 주저할 때는 지난 것 같다.”

 

새내기 직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잡생각에 휩싸이지 말고 본업에 충실하면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내 위로 여성 임원은 많지 않았지만 성별과 상관없이 좋은 멘토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일하면 조직 내 성장이 따라오더라. 30년 근속을 하며 느낀 점이다.

 

 

 

여성이고 남성이고, 결혼을 했고 안 했고, 자식이 있고 없고 등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짐을 갖고 인생을 산다. 모두 일과 가정, 혹은 일과 자기 삶을 양립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양립이라는 경험 자체가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두 무르익을 수 있다.”

연지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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