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121억달러 규모 해외건설 수주 무산...수출입은행(수은) 제약 탓?
"한국수출입은행(수은)법 시행령에 따른 제약으로 해외수주가 무산된 사례는 최근 4년간 최소 4건 이상에 121억달러(약 14조3000억원)로 추정된다."
지난 7월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가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보증 업무를 수은에게도 맡겨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 부총리가 거론한 4건의 수주 무산 사례는 무엇일까.
시일이 지난 후 무보 노동조합이 확인한 바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타바메시 화력발전 건설(한국전력공사, 두산중공업) △콜롬비아 보고타 메트로 1호선 건설(현대건설) △베트남 북남고속도로 건설(SK건설) △필리핀 태양광발전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삼성물산) 등이었다.
수은은 기재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현행 수은법 시행령이 수은의 대외채무보증의 총액을 무보의 연간 보험인수 금액의 35%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바람에 해당 사업에 수은의 보증 참여가 불가했고, 결론적으로 수주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랬을까.
우선 한전과 두산중공업이 추진했던 남아공 타바메시 화력발전 건설사업부터 살펴보자. 타바메시 화력발전 사업은 총사업비 21억4000만 달러짜리 사업으로, 2016년 한전과 두산중공업, 그리고 일본의 마루베니상사가 컨소시엄을 이뤄 입찰에 참여, 우선협상대상자가 됐고 2017년 가계약까지 체결했다.
순조로워보이던 사업이 삐걱대기 시작한 건 현지 환경단체들이 극렬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석탄발전을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으로 변경해보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현지 정부의 환경승인을 받지 못했다. 애초에 자금지원을 약속했던 남아공 네드뱅크는 친환경 투자 기조에 맞지 않는다며 손을 뗐다. 결국 한전과 두산중공업은 물론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일본의 마루베니상사도 사업에서 철수했다. 사업이 좌초되기까지 수출신용기관(ECA)의 보증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콜롬비아 보고타 메트로 1호선 건설의 경우 2019년 진행된 입찰에 당초 후보군으로 꼽히던 현대건설이 불참한 사업이다. 현대건설은 스페인·프랑스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준비했지만 결론적으로 사업참여를 포기했다. 당시 현지 외신보도들은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경쟁자였던 중국측 컨소시엄의 저가 공세를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이 이유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입찰조건이 시공사 등 참여기업에 과도하게 불리하게 잡혀 있던 것도 사업참여를 꺼린 이유로 알려졌다.
SK건설이 검토했던 베트남 북남고속도로 사업의 경우는 사업성이 부족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단순 토목공사였기에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이 적었다. 베트남 정부가 아예 국내사업으로 돌려버릴 정도였다. 애초에 국내기업이 들어갈만한 사업이 아니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필리핀 태양광 ESS사업의 경우도 입찰 초기에 무산된 사업이다. 일본 미쯔비시가 수주하면 삼성물산이 EPC(설계·조달·시공)를 담당할 계획이었지만, 미쯔비시가 입찰에서 떨어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이 사업 역시 ECA 보증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결국 홍 부총리가 지적한 4건의 수주 실패 사례를 수출 보증 문제로 엮기에는 인과관계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처음부터 홍 부총리에게 올라간 보고서가 잘못됐다는 게 무보 측의 주장이다. 홍 부총리 입장에선 14조가 넘는 해외 수주 기회가 보증 문제로 날아갔다고 하면 격노할 일이다. 제도개선을 시급히 추진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애초에 제시한 근거가 잘못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보가 처음부터 틀렸다면 홍 부총리로선 결과적으로 헛발질을 한 셈이다. 수주 무산 사례에 대한 진위를 검토하자는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의견에 "부처 이기주의"라고 쏘아붙인 게 오히려 민망해질 일이다.
이 발언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산업부의 어쩌면 당연한 제안은 한낱 '제식구 밥그릇이나 챙기는 부처 이기주의'로 폄하됐다. 무보의 조직원들이 부글부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해 무보의 무역보험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울 것이 확실시된다. 올해 우리나라가 역대 최대 수출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과연 지금이 우리나라의 수출신용기관 제도의 근간을 흔들 때인가.
설익은 정책의 후유증은 국민의 몫이다.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확대로 무보의 중장기보험이 위축되고 보험료 수입이 줄어들면 무보를 이용 중인 3만여 중소 수출기업들의 무역 보험료는 급등할 수 밖에 없다. 정말 이게 정부가 원하는 결과일까.
세종=민동훈 기자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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