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하면서 치료 선생님 다시 모시기 [홍승철]
재활하면서 치료 선생님 다시 모시기
2021.12.24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작년 이날에는 시설에 있는 남매를 찾아갔습니다. 올해는 그럴 수 없어 유감입니다. 뇌경색으로 꼬박 아홉 달째 재활 병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칼럼을 쓰는 것도 여섯 달 만입니다. 그동안은 재활에만 열중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 중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먼저는 전염성 피부병인 옴에 걸려 한 달간 격리되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재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격리 뒤에 돌아와 보니 재활 선생님 6인 중 운동 치료(걸음 치료) 1인, 작업 치료(손과 어깨 치료) 2인이 바뀌었습니다. 치료 선생님을 장기간 쉬게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치료 선생님이 바뀌는 일은 원하지 않는데, 특히 운동 치료의 〇〇〇 선생님이 빠지고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돌아온 지 열흘이 채 못 되어 허리 디스크 때문에 다리 통증이 심하게 왔습니다. MRI 사진을 찍어 보니 허리가 심각한 수준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은 재활에 집중해야 할 터인데 다리 상태는 일어서기도 괴로운 수준이었습니다. 다리 통증으로 한 달은 걸음 연습을 하지 못했고 다음 한 달간은 조심스럽게 약간씩의 걸음만 시도했습니다. 이래저래 상당히 긴 기간 걸음 연습을 제대로 못하니 속이 쓰릴 정도로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통증이 시작된 지 열흘쯤 지나니 심평원(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규정에 따라 ‘회복기’가 끝나간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맞춰 치료 시간도 1일 중 운동 1회 작업 1회씩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줄일 뿐만 아니라 다시 운동 선생님 한 분이 바뀌는 것으로 시간표가 조정되었습니다.
예정된 수정 시간표를 알게 된 때가 ‘회복기’ 종료 사흘 전이었는데, 다음 날 시간표 작성 책임자인 팀장을 만나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시간이 줄어든 건 이해하겠는데, 운동 치료 선생님을 왜 바꿉니까? 해 오던 선생님에게 계속 치료받게 해 주세요.”
팀장이 대답했습니다. “심평원의 기준에 따르면 치료해 오던 선생님 중 두 사람은 회복기 경과 후 환자를 치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격리 후에 바뀌는 선생님이 불과 3주 후에 바뀔 분이 되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내 말이 더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전의 〇〇〇 선생님에게 다시 치료받게 해 주십시오.” 〇〇〇 선생님은 회복기 후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전날에 대체적인 상황을 내게 귀띔해 주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현재 〇〇〇 선생님에게는 빈 시간이 없습니다.”
이때 나로서는 모험이 될 만한 말을 했습니다. “어쨌든 난 새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운동 시간 1회는 비워 두고 〇〇〇 선생님이 시간 날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거기서 대화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재활병원에서 치료 선생님이 한 번 맡은 환자는 언제 치료가 끝날지 모를 만큼 오래 갑니다. 나의 경우도 격리만 되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바뀌지 않았을 터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시간이 언제 날지 알 수 없습니다. 설령 한 환자 치료가 끝나서 시간이 난다 해도 나의 다른 치료 시간과 겹치면 소용없습니다.
며칠 후 그 팀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내 시간 중 현재의 운동 치료 1회와 작업 치료 2회를 제외한 어떤 시간에라도 〇〇〇 선생님의 시간이 난다면 해당 프로그램은 포기하고 선생님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느 선생님은 어쩌자고 매일 운동 치료 한 회를 빠뜨리느냐고 걱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후회할 일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바람대로 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후 한달 열흘, 격리가 끝난 뒤로는 두 달이 지났습니다. 거짓말같이 내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〇〇〇 선생님이 담당하던 한 환자가 갑자기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게 되어 선생님을 내가 맞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도 내겐 비어 있던 터라 다른 문제도 없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기다리던 두 달 간의 시간에도 그리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으니까요. 통증이 거의 사라질 때 원하던 선생님을 다시 대하게 되었습니다.
재활 병원의 치료사 선생님들은 나 같은 환자들로 하여금 다시 걷게 하고 손과 어깨를 다시 쓸 수 있게 만들어, 생명을 살리는 일에 버금가는 일을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아들 딸뻘 되는 젊은이들입니다. 다시 대하기 위해 노력했던 〇〇〇 선생님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보다 10년가량 젊은 아버지의 딸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기본에 충실한 치료를 합니다. 최종 결과를 빨리 이루려고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해야 할 일이면 빠뜨리지 않고 시도하도록 요구합니다. 환자로서도 힘들어서 생략하고 싶은 과정, 쉽게 지나가고 싶은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 걸 다 제대로 실행하게 합니다. 종종 힘들기도 하지만 신뢰가 갑니다.
그러면서 주의할 점, 고쳐야 할 점을 끊임없이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말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걸음 연습을 할 때 오랫동안 오른 팔꿈치가 굽어 손이 허리 높이로 올라갔습니다(뇌경색 환자에게 흔한 현상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한 번에 열 걸음을 걷든 백 걸음을 걷든 손 올라갈 때마다 반복해서 손 내리라고 말합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손으로 내 오른손을 탁탁 칩니다. 언짢게 여길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리 않고 손 내리려는 노력만 했습니다. 결국 눈에 띄게 개선됐습니다.
〇〇〇 선생님은 환자가 실행하면서 어려워하는 행동이 있으면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합니다. 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외발 서기가 가능해야 합니다. 이 일이 꽤나 어려웠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간 오른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왼발 끝을 앞뒤로 이동하기, 왼발로 공굴리기, 받침대 위에 한 발로 올라서서 외발 서기, 2단의 계단 중 한 발은 첫 계단에 고정시키고 다른 발끝으로 바닥과 둘째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연습하게 하고 마지막 날엔 실제의 계단 오르기를 실습하게 했습니다. 날마다 난이도를 높여갈 뿐 아니라 다른 능력도 추가한 것입니다. 혼자 연습할 과제도 제시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합창 지휘자를 연상했습니다. 내가 경험한 지휘자는 선곡을 할 때 힘찬 곡, 차분하거나 서정적인 곡을 번갈아 배치하였습니다. 합창단원이나 관객이 리듬감이 있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〇〇〇 선생님의 치료도 환자에게 힘들거나 난이도 높은 것, 몸이 다소 편하거나 쉬운 것을 적절히 섞으며 단계를 높여 갑니다.
원하는 선생님을 다시 대하기 위해 모험이라 할 만한 시도를 했고 결국 바람대로 이루었습니다. 그리하고 보니 재활 운동에서 진전을 이룬 일 이상으로 흡족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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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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