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출신 국회의원, 사실 그대로 말하다 [고영회]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 사실 그대로 말하다
2021.12.17
법률안이 제출되면 해당 상임위원회로 넘겨지고, 그 법은 심층 심의하기 위해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로 넘어갑니다. 법안심의는 소위에서 대부분 이뤄지고, 법안의 진행은 소위에 달려 있습니다. 소위에서 의결은 관행으로 ‘만장일치제’로 결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직역 범위나 직역 조정에 관련된 법안이면 소위에서 막으려고 기를 씁니다. 어느 특정 직역에 불리한(?) 법안이 제출되면 이를 반대하는 의원 한 사람만 있어도 법안은 소위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소위 정원이 12명이라 할 때, 11명이 법안을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단 한 명이 반대하면 법안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로 뽑힌 의원들이 법안 심사를 이렇게 결정한다고요? 물론 만장일치제가 갖는 장점이 있습니다. 만장일치에 이를 때까지 상대방을 설득하고, 그렇게 설득을 받은 의원이 수긍하여 모두가 동의하는 법안을 마련하면 분명 장점입니다. 그러나 아예 작정하고 법안을 막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이때는 악폐가 됩니다.
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 가운데 변호사 관련 직역을 건드리는 법안은 통과하기 힘들다고 어려움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회 어느 상임위 소위에도 변호사 출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특허침해 소송대리권을 포함하는 변리사법 개정안 심의에서는 항상 변호사 출신 의원의 반대에 부딪혀 왔습니다. 그래서 상임위를 넘지 못하고 회기가 끝나고 결국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었습니다.
지난 11월 25일 국회 산자위 주관으로 변리사법 개정안(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대리 관련)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에서도 변리사계, 산업계, 변호사계 대변자가 참석하여 각자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때 참석한 변호사 출신 이소영 의원의 질의와 발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실제 특허침해소송의 풍경을 제가 말씀드리자면, 대부분 의뢰인이 변리사를 같이 선임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특허침해소송을 하면서 변호사만 선임한 케이스를 거의 보지 못했고, 실제로 통계를 보더라도 70% 정도 사건은 변호사와 변리사를 공동으로 선임합니다. 그런데 법정에서의 풍경은 변리사는 지금 법적으로 소송대리인으로서 등록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못 합니다. 변론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이 법의 쟁점은 ‘기술적인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있고 그거에 대한 라이선스가 있는 변리사가 법정에서 변호사와 함께 직접 변론에 참
여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고, 실제로는 어떤 풍경들이 펼쳐지냐면, (중략) 근데 변호사 자격만 있는 분이 이것에 대해 적절한 변론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변호사, 변리사 자격을 둘 다 가지고 있는 분이었고요. 그래서 이 변호사는 상대방이 주장하는데 기술적인 것에 대한 답변을 즉석에서 할 수 없어서, 뒤에 방청석에 앉아 있는 변리사가 쪽지를 줍니다. (중략) 사실 저도 변호사이기 때문에 변협에서 오신 두 분의 주장을 귀를 열고 들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중략) 민사소송법상 소송대리권이 변호사에게만 부여돼 있지만, 금과옥조는 아닙니다. 헌법상의 원칙도 아니구요. 만약 법률소비자의 이익에 그것이 부합하지 않으면 법률로서 그걸 조정할 수 있죠. 법률에서 허용되지 않고 있는데 지금 행정부가 시행령, 시행규칙으로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그것이 금과옥조는 아니다.“
사실 우리 헌법(46조)에서, 국회법(24조 선서)에서 국회의원이 어떻게 직무해야 한다고 정해 놓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직역끼리 다툼이 있는 법안에서는 합리적인 이유를 떠나 자기 직역 이익에 매달리는 사례를 참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과 다른 궤변으로 뒤덮이기 십상이었죠.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해결할 법안이 17대 국회부터 시작되어 이번 21대 국회까지 오면서, 변호사 자격자이면서 있는 실상 그대로를 직시하면서 발언한 것을 처음 봤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하는 현실이 참 드문 세상에 살다 보니, 현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을 보니 참 뭉클했습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뽑힌 국회의원은 어느 상임위에서 일하든 헌법 정신과 국회법 정신에 따라 직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더 정교해져서 한 걸음씩 선진국으로 더 나아가는 것이지요. 이런 의원들로 국회가 채워져야 우리의 앞날에 희망을 걸 수 있습니다. 헌법 정신에 충실한 의원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자유컬럼그룹
Recent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