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자산시장에 미치는 영향
홍춘욱 이코노미스트·경영학 박사
日 인구 줄어도 대도시 집값 올라
도시 번성·지방 소멸 양극화
지난 글에서는 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는데, 이번에는 자산시장에 가져올 영향을 점검해보자. 일단 주식시장부터 살펴보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수출의 함수’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프1’에 나타나는 것처럼 한국 주식시장은 수출이 잘될 때 상승하고 수출이 부진할 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7월을 고비로 종합주가지수(KOSPI)가 약세를 보이는 것도 수출 증가율이 5월을 기점(+45.6%)으로 탄력이 둔화된 영향이 크다.
저출산 충격에서 자유로운 주식시장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직접적 요인은 수출이 한국 기업 실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데 있다. 그리고 부진한 수출은 글로벌 투자자의 한국주식 순매수 강도를 떨어뜨리곤 한다. 한국 수출은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글로벌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간주돼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수출 변동을 촉발하는 것은 선진국 소비자의 기호 변화다. 2008년이나 2020년 봄처럼 소비자들이 미래를 비관하고 저축을 늘리기로 결정할 때 한국 수출은 급격히 감소한다. 반대로 2010년이나 2021년처럼 미래를 낙관하고 소비를 늘리기 시작하면 한국 수출은 역대급 호황을 누리곤 한다. 이런 현상은 ‘공급사슬망의 채찍 효과’에 의해 나타나는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소비자들의 사소한 기호 변화가 공급사슬망 끝에 위치한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필자를 비롯한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끊임없이 미국 경제지표, 특히 고용 및 소비 통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따라서 주식시장은 저출산 및 인구 감소 충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시장은 어떨까. 직관적으로 본다면 인구가 감소하는 과정에서 주택이 남아도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인구가 감소한 일본 사례는 이런 예상과 딴판이다. ‘그래프2’에 나타난 것처럼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 맨션(이하 아파트) 가격은 1990년대 초반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전국 단위 토지 가격 흐름은 전혀 다르다. 전국 토지 가격은 1992년 이후 2017년까지 계속 떨어졌고 2018~2019년 잠깐 반등한 후 2020년부터 다시 하락하고 있다. 대도시 아파트 가격과 전국 토지 가격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낸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2000년대 초반 시작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의 개혁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정부는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다”고 선언한 후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얀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2020, 121쪽). 이때 고용 안정을 보장하던 이른바 ‘종신고용’ 시스템이 해체되고 ‘블랙기업’으로 불리는 기업이 대거 출현했다. 블랙기업은 고이즈미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을 이용해 인턴으로 채용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고하는 식으로 근로자를 착취하는 기업을 뜻한다(곤노 하루키, ‘블랙기업’, 2013, 241~243쪽).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 기업에 근무하는 엘리트들이 연쇄적으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 사건의 배후에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악용한 기업들의 행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부의 구조개혁을 ‘실패’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많은 연구자는 고이즈미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 시행 이후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전체 고용도 늘어나는 등 긍정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Georg D. BLIND and Stefania LOTTANTIVON MANDACH, ‘Decades not Lost, but Won: Increased Employment, Higher Wages, and More Equal Opportunities in the Japanese Labor Market, Social Science Japan Journal Vol. 18, No.1’, 2015, pp. 63~88).
日 부동산시장 양극화, 한국에서도 재현 가능성
더 나아가 2012년 말 ‘아베노믹스’로 불린 강력한 통화공급 확대 정책이 시작된 것도 일본 경제구조를 바꿨다. 아베노믹스 이전 일본 엔화 가치는 매우 안정적이었으며,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 흐름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일본 중앙은행 자산 규모가 30조 달러(약 3경5271조 원·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34%)를 돌파할 정도로 강력한 통화공급 확대 정책을 펼치면서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변화는 일본 경제에 불균형 발전을 유발했다.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곳은 수출 대기업이다. 수출기업은 엔화 약세와 노동시장 개혁 수혜가 집중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수출 대기업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면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 거대 도시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기술 수준을 갖춘 인력을 쉽게 고용할 수 있고, 투자자들도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근로자도 거대 도시에 자리 잡은 기업을 선호한다. 산학 연계 활동이 손쉬운 데다, 해고되더라도 해당 지역에서 형성한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른 회사로 이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거대 도시의 번성과 달리 지방 소멸 현상은 촉진되고 있다. 젊은 인구가 고소득 일자리를 찾아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노령인구 위주로 재편된 지역의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일본 부동산시장의 양극화 현상은 이와 같은 경제구조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 주식시장의 몰락과 회복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투자에 적합한 시장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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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318호]
홍춘욱 이코노미스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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