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深山)의 구상나무 향 [허찬국]

 

 

심산(深山)의 구상나무 향

2021.12.08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전나무나 주목과 같은 침엽수들의 냄새, 특히 우리나라 고유종 구상나무의 향이 참 좋습니다. 12월에 흔히 눈에 띄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 절로 그 향이 생각납니다. 좋았던 기억 때문에 20년 가까이 아파트에 살 때 집에서 키워보려고 몇 번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중학생 시절 학교의 연례행사였던 한라산 등반 때, 비가 와 서둘러 하산하는 길에 작은 구상나무인지 주목인지를 파려고 애쓰다 본대에 뒤쳐져 크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30, 40대를 보낸 미국에서 매년 11월 말이면 집서 멀지 않은 공터에서 다양한 크기의 크리스마스트리용 전나무를 파는 큰 시장이 열리곤 했습니다. 막 베어져 아직도 싱그러운 큰 전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물로 채운 받침대에 고정시켜 한 달 정도 집 안에 놓아두곤 했습니다. 거실 가득한 나무의 향이 좋았습니다.

 

넓게 열린 공간에 짙푸르게 서있는 구상나무들 사이에 있으면 폐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향이 정말 대단합니다. 지난 달 하순 눈 쌓인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오랜만에 다녀왔습니다. 정상에서 약 2.3km 떨어진 성판악 코스의 진달래밭(해발 1,500m)에서부터 등산로 주변 왕성한 구상나무들의 짙은 내음과 차가운 산의 기운을 마음껏 들이마셨습니다. 입산통제 시간 때문에 서둘러야 했지만 구상나무 향 덕인지 힘들지 않게 산행을 마쳤습니다.

 

 

산에서 구상나무 고사목을 볼 때마다 서식 환경 변화로 한라산, 지리산 등에 분포한 이들의 군락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안타까운 보도가 떠올라 맘이 편치 않습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주요 원인 물질입니다.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줄여준다니 숲을 늘려 구상나무 서식 환경을 개선 할 순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여가 활동으로 자주 찾는 강원도를 오가며 벌목된 산들을 봅니다. 계획에 따른 벌목의 결과지만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요. 멀리 동남아나 아마존 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열대 우림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구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온난화는 거대 환경 현상인 동시에 더위를 싫어하는 필자에게는 개인적인 일처럼 느껴집니다.

 

자르지 않은 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판매하고 나중에 이를 수거해 숲에 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독일의 한 업체(WunderTree.co) 누리집에 따르면 베를린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화분에 심긴 나무를 제공한 후 나중에 수거하여 수종(樹種) 다양성이 필요한 숲에 심는다고 합니다. 벌써 완판된 것을 보면 크리스마스트리로 쓰기 위해 나무를 자른다는 게 좀 불편하던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심산(深山)의 구상나무 향 [허찬국]

  (좌)지리산 반야봉 군락지의 구상나무, 2019년 11월

  (중)한라산 진달래밭 군락지 구상나무, 2021년 11월

  (우)오대산 정상 주변  군락지의 주목, 2020년 8월 

 

12월의 성탄절은 기독교 전통에서 출발한 축일(祝日)이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 상업적 의미가 크고, 젊은 층이 흥겨워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이는 우리의 구정과 같은 서양의 전통과는 다른 모습이지요. 하지만 이웃을 돌아보고, 땅 위의 평화를 비는 것은 기독교 신도가 아닌 사람도, 동서양 어디에서나 공감할 만한 자애의 발로일 것입니다.

 

 

 

특히 팬데믹이 2년째 지속되며 불안과 걱정이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역병은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나 못사는 나라의 처지를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살림이 빠듯한 사람들일수록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와 제한 조치에 일자리나 생활의 근거가 위협받기 쉽습니다. 백신을 확보할 경제적 능력이 없고 의료시설이 낙후된 나라들은 방역과 감염자 치료를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입니다.

 

각종 어려움을 탈출하기 위해 선진국으로 향하는 난민들을 막아서는 박대는 더 모질어지고 있습니다. 인종·문화적 차이와 경제적 부담에 더해 이제는 잠재적인 바이러스 보유자이어서 배척할 이유가 늘었습니다.

 

예술은 팬데믹 시대의 춥고 황폐한 마음에 따뜻한 초콜릿이나 생강차와 같은 위안이 됩니다. 필자는 절기(節期) 음악으로 1982년 니콜라우스 하논코트(Nikolaus Harnoncourt, 1929-2016)의 J. S.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좋아합니다(주 참조). 소년 합창단과 독창자가 여성들을 대신하고, 바흐 동 시대 원전 악기들이 기악 반주를 연주하는 공연은 볼 때마다 감동적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팬데믹 터널에서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보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이 겨울에 무사히 넘기기를 기원합니다. 모두가 진한 구상나무의 향과 같은 평온함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주: https://youtu.be/98UjjwzJBFE.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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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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