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죽음 [김수종]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죽음

2021.10.28

 

미국 인구의 2%가 입양아 출신이라고 합니다. 미국 인구가 약 3억3,000만 명이니 660만 명이 입양아로 인생을 시작했다는 얘기입니다. 입양이 보편화된 사회이지만 입양아들은 남다른 사연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가슴 뭉클한 입양아 사연을 소개했기에 자유칼럼 독자와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직후 입양되어 52년을 살아왔던 한 남성이 유전자 조회를 통해 찾아낸 '생물학적 아버지'와 극적 상봉을 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에 사는 샘 앤서니(52)라는 공무원입니다. 그는 후두암이 악화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있게 해준 생부(生父)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앤서니는 직장 상사의 도움으로 유전자 조회를 통해 찾아낸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올해 8월 2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2005년 발병한 암으로 죽어가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 유전자 조회와 공문서를 검토한 결과 당신과 제가 같은 조상을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당신의 이름이 크레이그 넬슨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그 크레이그 넬슨이 맞는지요?" 앤서니는 편지와 함께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고위직에 오른 자신을 소개한 대학동창회보 복사본을 동봉해서 보냈습니다.

 

미국 서부 애리조나 주에 사는 크레이그 넬슨(78)이 편지를 받아본 것은 8월 9일이었습니다. 그는 편지 봉투에 적힌 발신인 주소를 보고 "잘못 온 건가?"하고 생각했습니다. 버지니아에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뜯어 내용을 읽는 순간 그는 흥분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50여 년 전 노스캐롤라이나 군 기지에서 복무할 때 만났던 걸프렌드가 낳은 자신의 생물학적 아들이 보낸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찾으려고 애를 쓰다 포기한 지가 수십 년이 지났는데 그 아들이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1969년 걸프렌드가 장거리 전화로 ‘아이를 낳고 입양시켰다’고 전한 말이 아들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습니다.

 

편지에서 앤서니는 "이 편지가 당신에게 큰 충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희망은 사진을 보고 가족의 병력을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라고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넬슨은 전화기를 들고 편지에 적힌 번호를 눌렀습니다. 수술실에 있던 앤서니는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넬슨은 음성 녹음으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내가 당신이 찾는 크레이그 넬슨이 맞다."

 

 

이렇게 해서 생물학적 부자는 52년간 잃어버린 인연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들과 아버지가 혈육의 정을 교류할 시간은 단지 11일뿐이었습니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를 갈라놓은 52년은 미혼부모나 입양아에게 다사다난한 세월이었습니다. 넬슨은 1966년 23세 나이로 육군에 지원해서 3년간 위생병으로 근무했을 때 여자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제대가 임박했을 때 여자 친구가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기자들도 확인할 수 없게 두 사람의 말이 엇갈렸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결혼을 거부했다고 하고 남자는 여자가 결혼을 거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화를 건 취재진에게 생모는 혼외 자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려 자신의 현재 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익명을 요구했습니다.

 

넬슨은 제대 후 오레곤주에 있는 부모의 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옛 여자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네가 지금 남자 아기의 아빠가 됐다."고 말했으나 잠시 후 "넌 절대 아기 아빠가 될 수 없을 거다. 입양시켰다."고 전했습니다. 넬슨과 그의 부모는 변호사를 통해 아이의 친권을 찾으려고 알아보았으나 입양했을 경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단념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 50년이 흘렀다는 겁니다.

 

입양된 젖먹이 앤서니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순탄하게 자랐습니다. 누이동생도 입양아였습니다. 고등학교 땐 축구선수로 뛰었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후 워싱턴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취직했습니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공무원 2,800명이 근무하는 미국 연방정부 기관입니다. 그는 청장 특별보좌관으로 승진해서 그 분야에서 꽤 알려진 인물이 되었습니다. 외국 귀빈에게 주는 대통령의 선물을 고르는 게 그의 임무였습니다.

 

앤서니의 양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2016년 사망하고 나자 앤서니의 마음속에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관심이 솟아났습니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2인자 데브라 월 부청장은 앤서니와 30년 같이 근무한 여성 상관으로 부하의 고민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은 아마추어 족보학 전문가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도 입양아 출신이었는데 유전자 조회를 통해 아버지의 생물학적 부모, 즉 할아버지를 찾아냈고 따라서 생판 몰랐던 사촌들도 찾아냈습니다.

 

월 부청장은 낳아준 부모를 찾아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앤서니는 망설이다가 2020년 9월 응낙했습니다. 월은 앤서니에게 유전자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5일 만에 유전자 조회, 인구조사 기록, 신문철 등을 통해 앤서니의 생모를 찾아냈습니다. 앤서니는 그해 10월 생모에게 자신의 암 진단 결과와 함께 가족 병력을 알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생모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첫 마디는 "어떻게 나를 찾았느냐. 누가 또 이 사실을 아느냐?"였습니다. 그래도 둘은 1시간 동안 주로 앤서니 성장과정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눴습니다.

 

앤서니는 생모에게 서로 연락하면서 지낼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생모는 생각해봐야 하겠다며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은 채 대화를 끝냈습니다. 다시 전화는 없었습니다. 전화 대화의 기억을 되살려서 앤서니는 결정적인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바로 생부의 이름이 '크레이그' 이며 성은 확실치는 않으나 '넬슨' 같다는 기억이었습니다. 월 부청장은 유전자 조회를 통해 곧 생부를 확인했습니다. 엔서니는 몇 달간 연락을 망설였습니다. 생모가 그랬듯이 생부가 그와의 접촉을 거절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무서웠습니다.

 

올해 6월 중순 월 부청장은 앤서니를 설득해서 편지 쓰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그래도 앤서니는 미루고 미루다가 7월 31일에야 편지에 사인했습니다. 월은 8월 2일 특별우편으로 편지를 부쳤고, 넬슨은 9일 이 편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들의 편지를 받은 이튿날 넬슨과 그의 동거녀는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생전 본 적이 없는 아들을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애리조나에서 버지니아까지 장장 3,700㎞를 나흘 걸려 달렸습니다. 넬슨은 운전하고 동거녀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를 중계했습니다.

 

 

8월 14일 오후 넬슨이 앤서니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앤서니의 아내와 딸이 그들을 맞아 거실로 안내했습니다. 앤서니는 병실용 침대에 누운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넬슨은 "헬로"라고 첫 인사를 하며 "안아봐도 되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세 여자는 방에서 나갔습니다. 둘이만 있게.

 

앤서니의 목소리는 가족이 아니고는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유전자로 연결된 두 사람에게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앤서니는 넬슨의 발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크기가 똑같았습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꼭 쥐고 그의 군대 생활과 형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더니 지갑을 꺼내 빛바랜 옛날 사진을 꺼냈습니다. 빨간색 무개차 앞에 군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이었습니다. 앤서니의 생모와 데이트할 때 몰고 다니던 차였습니다.

 

앤서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그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둘이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아버지의 뇌리에는 앤서니의 인생이 자신과 함께 사는 것보다 훨씬 부유하고 알찼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넬슨은 엔서니에게 그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앤서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지었습니다. 앤서니가 자는 동안에도 넬슨은 침대 옆을 지켰습니다.

 

 

8월 18일 아버지 넬슨은 조용히 아들 앤서니에게 다가가 작별 인사를 속삭였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보자"

 

그리고 넬슨은 동거녀와 함께 애리조나로 향했습니다. 20일 미시시피 강 근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월 부청장이 보낸 문자를 받았습니다.

 

아들 앤서니의 부음이었습니다.

 

​이 사연을 읽으면서 똑같은 입양아 출신인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도 낳자마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잡스의 말년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들과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접촉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잡스는 어릴 때 입양아라고 놀림을 받자 양부모를 일컬어 "1000% 내 부모"라며 생물학적 부모를 "내 정자은행이고 난자은행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앤서니가 느끼는 '낳은 정', 잡스가 느끼는 '기른 정' 모두 감동적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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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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