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식을 못 파는 이유 ㅣ 개미가 단타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
[전문]
https://contents.premium.naver.com/coindesk/nextmoney/contents/211021144917022rl
애초에 왜 샀는지 불분명하니까”
국내 금융투자 전문가 3인 대담
글로벌 증시에 불안감이 감돌고 조정 장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작년과 다른 시장 분위기에 개미 투자자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연내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개시, 에너지 가격 대란 등 악재 속 살얼음판 증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자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코노미조선’은 국내외 투자 전문가들을 만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위기 속 투자 귀재들의 조언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해외 전문가의 거시 환경 분석 다음 차례는 국내 전문가의 더 디테일하고 현실적인 투자 조언이다. ‘이코노미조선’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만 실무를 떠난 지 오래된 원로급 유명인이 아닌, 지금 이 순간 투자 현장의 중심에 서 있는 젊은 전문가의 냉철한 진단을 듣고 싶었다. 세계적 투자 대가와 부자들처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고 싶은 개인에게 가장 쓸모 있는 조언을 해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10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메리츠증권 회의실에 세 명의 투자 전문가가 모였다. 투자 전략 부문 최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자인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이 대담 사회를 맡았다. 이 센터장 양옆으로는 최준철 VIP자산운용 공동대표와 이한영 DS자산운용 주식운용1본부장이 앉았다. 최 대표는 서울대 투자 동아리 ‘스믹(SMIC)’에서 함께 활동하던 김민국 공동대표와 함께 2003년 가치투자 개척자(Value Investment Pioneer)란 의미의 VIP투자자문을 세운 인물이다. 자문사 설립 후 연평균 18% 안팎의 수익을 내면서 회사를 가치투자의 명가 대열에 올렸다. 2018년에는 자문사에서 운용사로 전환했다. 이 본부장은 대한민국 펀드 대상 올해의 매니저(사모 부문) 상을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받은 인물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한국에서 돈을 가장 잘 굴리는 전문가’란 의미다.
전문가 3인은 시장 조정기에도 옥석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라며 각 산업 내 1등 주를 골라낼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또 과거의 인기 주식에 집착하는 개인의 경향을 지적하면서 유연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유망 업종으로는 이차전지와 미디어·콘텐츠, 여행·레저, 은행·보험 등을 꼽았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이하 이경수) “정치권에 40대 기수론이란 표현이 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신 분들은 ‘자본시장의 40대 기수론’을 논할 때 가장 적합한 두 사람이다. 실무 현장에서 매일 증시와 직접 부딪히며 사는 현역이자 가치투자(최준철)와 액티브 투자(이한영) 분야의 고수들이다. 이들과 자본시장 주변 환경 변수와 그 상황에서의 구체적인 투자 전략, 투자 철학 등을 주제로 대화하겠다.
우선 작년과 올해 국내 주식시장 분위기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지난해 개인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엄청나게 유입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코스피 지수는 전년 대비 30% 올랐다. 지수가 잘 오르다 보니 처음 투자하는 사람도 ‘주식이 쉽다’고 할 정도였다.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 2020년 그토록 좋았던 시장이 올해 확 달라진 이유는 뭘까.”
최준철 VIP자산운용 공동대표(이하 최준철) “2020년은 숫자(실적)보다 내러티브(이야기)가 중요한 해였다. 주식 초보라도 각 분야에서 제일 좋다는 회사 주식 사고, 코로나19라는 대형 이슈에 연동된 테마주 사고, 미래 내러티브 좋다는 기업 주식 사면 어렵지 않게 돈을 벌었다. 올해는 숫자가 중요해졌다. 작년에 내러티브로 올라간 많은 주식이 흔들렸다. 여기에 딱히 내러티브가 없는 포스코나 건설주가 갑자기 상승하니 개인으로서는 전혀 대응이 안 되는 것이다. 숫자가 잘 나오는 종목은 개별적으로 오르는데, 초보 투자자는 아무래도 숫자를 챙기는 습관이나 전문성이 없다 보니 버텨주는 종목을 쉽게 놓치는 것이다.”
이한영 DS자산운용 주식운용1본부장(이하 이한영) “우리 회사의 경우 지난해 운용 수익률이 75%에 달했다. 금리가 제로(0) 수준이다 보니 내러티브가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조달 비용이 거의 안 드니 직관적인 이해도만 높으면 쉽게 올라가는 시장이었다. 올해는 확실히 쉽게 먹을 수 있는 장이 아니다. 작년이 굵직하게 양으로 승부하고 쭉 먹는 장이었다면, 지금은 순환 장세다. 투자 방식과 무관하게 까다로워졌다.”
이경수 “두 분 말씀을 정리하면, 팬데믹 이후 상승장의 출발은 내러티브였다는 분석이다. 작년에는 굉장히 좋은 유동성과 낮은 금리 덕에 내러티브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반면 올해는 금리가 올라가고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이야기도 나오면서 유동성 여건이 악화했고, 내러티브에 대한 검증도 엄격해졌다. 자, 그렇다면 인플레이션 우려는 어떻게 보나.”
최준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이라면 무서울 수 있다. 뭘 해도 안 되니까. 기업 활동을 위해서는 수요가 있어야 한다. 디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수요를 줄이고 오늘의 구매를 내일로 미룬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괜찮다. 기업 환경에서 인플레이션은 약한 기업에만 리스크 요소다. 강한 기업은 괜찮다. 숫자를 보고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투자자라면 인플레이션 환경이 무섭지 않다.”
이경수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옥석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최준철 “무조건 센 놈, 마진율을 보존하는 1등 기업에 집중한다. 과자 만드는 밀가루 가격이 오른다고 치자. 잘 팔리는 새우깡은 가격을 올려 마진율을 지킬 수 있다. 반면 시장 장악력이 약한 이름 모를 과자는 가격을 올리기 힘들다.”
이경수 “이 본부장도 같은 관점인가.”
이한영 “그렇다. 매출 성장률보다 영업이익 성장률이 더 좋은 기업을 찾는다. 진짜 대장주는 이익률이 오른다. 지표를 보다가 이익률이 계속 높아지면 ‘얘가 바로 대장이구나’ 판단하고 들어간다.”
이경수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인플레이션은 기업 체력을 테스트하는 구간이구나. 그 테스트를 통과하면 더 좋은 것이고. 개미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데 선수들은 즐기고 있었네(웃음).”
이한영 “올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초과 수요로 일어나는 인플레이션)이 될 텐데, 경기가 정상 궤도로 가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나.”
이경수 “일시적이라는 연준 시각에는 나도 동의한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에 ‘공급자 배송 시간 지수’라는 게 있다. 이 지수가 60 이상이면 쇼티지(shortage·부족)가 심화한 것으로 본다. 과거 쇼티지 사례를 보면, 공급자 배송 시간 지수가 60 아래로 떨어져 정상 상태로 진입하기까지는 평균 10개월이 걸렸다. 이번 경우는 올해 8월쯤이 피크였으니 내년 상반기에는 공급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요즘 자본시장뿐 아니라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이 너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신재생 쪽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자본이 이쪽으로만 쏠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전히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에너지가 많은데도 (화석연료 발전 시설이) 증설이나 가동률을 올릴 때 너무 눈치를 본다. 그러다가 화석연료 생산량이 부족해지면 다른 대체에너지 가격은 급등한다.”
최준철 “그린플레이션(친환경을 뜻하는 그린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탄소 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물가를 압박하는 현상)이라는 조롱 조의 신조어가 왜 등장했겠나. 친환경은 당연히 좋다. 문제는 친환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우리가 얼마나 잘 버틸 수 있느냐다.
이와 관련해 투자자라면 워런 버핏의 투트랙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버핏은 미국 아이오와주에 대규모 풍력발전소를 갖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등지에서는 태양광발전소를 사들였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약 8조원을 투자해 일본의 5개 상사 지분을 샀다. 에너지·금속·광물 등의 원자재를 수입해 파는 상사들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버핏으로서는 신재생은 신재생대로 투자하면서 그린플레이션까지 대비한 셈이다.”
이경수 “시장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나는 기업 실적이 3분기에 고점을 찍은 다음 빠질 것으로 본다. 반도체 가격은 내년 1분기까지는 계속 하향 곡선을 그릴 듯하고. 당분간 금리도 계속 오를 텐데, 까다로운 시장 분위기는 언제까지 갈까.”
최준철 “시가 총액 상위 기업 중심의 시장 급등 가능성은 한동안 없을 것으로 본다.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개별 주를 찾는 게임이 이어질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한영 “난 연말에 시가 총액 상위 종목들이 뭔가 한 방을 터뜨려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삼성전자 주가가 30% 치솟았다. 만약 올해도 삼성전자가 이런 피날레를 해낸다면 시장 숨통이 다소 트일 것이다.”
최준철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삼성전자는 사이클을 덜 타는 회사로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고 본다. 안정적이지만 2018년처럼 반도체 사이클을 타고 화끈하게 뻗어 나가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1등 기업이고 잘하니까 장기 투자하면 크게 실패하는 일은 없겠지만, 예전처럼 사이클 탈 때 단타로 들어가서 두 배씩 먹는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경수 “시장을 위협하는 리스크 요소는 뭐가 있을까.”
최준철 “하나를 꼽으라면 중국이다. 중국이라는 시스템과 시장이 너무 불확실하고 주변에 적도 많다. 자본시장 관점에서는 리스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는 계속 삐걱대고, 사교육 문제 해결하는 방식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방향성은 동의하는데, 방법이 너무 거칠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경수 “중국 이야기를 하니 하나 보태자면, 중국 GDP(국내총생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 유관 산업까지 합치면 40%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추구하는데, 부동산에서 나오는 부가가치가 줄어들면 성장률도 흔들릴 것이다. 당연히 주식시장에는 부정적인 이슈다.”
이한영 “개인 투자자가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점도 리스크라고 본다. 10월 초 동진쎄미켐 해프닝처럼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고 가짜뉴스에 현혹되는 일이 발생하는 걸 보면 걱정된다. 삼성전자가 동진쎄미켐 인수를 검토한다는 글이 돌았다. 전혀 근거 없는 글이었다. 게시물을 눌러보면 낚시하는 그림이 걸려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날 동진쎄미켐 주가는 상한가까지 올랐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현 한국은행 외환자산 운용위원회 외부위원, 투자전략 부문 최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 채승우 객원기자
이경수 “지난해 국내외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사들인 주식 규모가 100조원이었다. 대부분 주식 투자 훈련이 안 된, 뉴스 제목만 보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사람의 자금이었다. 이들이 정상적인 주식 투자 방법을 익히고 적응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시장 분위기가 너무 빨리 변했다. 지친 개미들이 떨어져 나가면 암흑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최준철 “학습하는 도중 시험 난도가 갑자기 너무 높아진 셈이다. 중학교 문제 풀고 있는데 느닷없이 고등학교 문제가 튀어나왔다. 숫자 챙겨보는 훈련이 안 됐는데, 해가 바뀌면서 시장 방향이 변했고 작년 트렌드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경수 “지금 같은 조정기에 개인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까.”
이한영 “조정기에도 먹을거리는 제공된다. 소비재 시대, 철강 시대 등 시대마다 1등 주는 항상 있다. 해당 산업 내 대장주를 사야 한다. 1등 주를 제대로 골라내려면 열심히 공부하고 아는 것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체 계좌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게임을 해야 한다. 보유 종목 비중의 1%가 상한가 가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준철 “적중률에 집착하면서 내 관심 종목이 오늘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만 확인하는 건 에쿼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찍어주는 종목 조금씩 사서 하루하루 소일거리 하는 느낌으로 보내면 안 된다. 투자는 리스크와 리턴의 게임이다. 그때그때 리스크 대비 리턴 큰 걸 추려 사는 일을 반복해야 돈 벌 수 있다. 개인 투자자는 오로지 리턴만 보는 게 문제다. 몇 배 오를까만 생각한다. 리스크를 인식하는 연습만 해도 투자 수준이 달라진다.”
이경수 “두 분 말씀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교집합을 찾을 수 있다. 개인 투자자 대부분은 투자가 본업이 아니니까 공부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내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긴 하다.”
이한영 “본업이 따로 있어 투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건 이해한다. 그렇다면 유연성이라도 길러야 한다. 개미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유연성이 없다는 점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투자 조언에는 댓글로 욕설부터 단다.”
최준철 “개인은 유연성보단 신앙심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또 아마추어(개인)는 백미러를 보고 운전하는 편이다. 과거의 인기 주식에 연연한다. 여전히 많은 개미가 코로나19 치료제와 진단키트 관련 주에 사로잡혀 있는 현실이 그 증거다.”
이한영 DS자산운용 주식운용1본부장. 성균관대 경제학, 전 브레인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대한민국 펀드 대상 올해의 매니저(사모 부문) 상 2년 연속(2020~2021년) 수상, ‘미스터 마켓 2021’ 공저 / 채승우 객원기자
이경수 “개인은 주식을 잘 팔지 못한다. 애초 왜 샀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니까. 산 이유가 있어야 그 이유가 어그러졌을 때 팔 명분이 생기는데, 대부분 남의 말 듣고 신앙심에 사니까 팔아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이런 개미를 위해 끝으로 두 분이 투자 유망 업종과 추천 이유를 설명해주면 어떨까.”
이한영 “우선 이차전지. 시장 성장은 의심할 게 없고, 산업의 대표 기업이 한국 회사인 경우가 많다. 전체 자동차 대비 전기차 비중이 유럽·중국은 15~20%, 미국은 5%다. 내연기관차 메이커들도 앞다퉈 전기차 생산을 선언하고 있다. 미래가 너무 밝다. 두 번째는 미디어·콘텐츠. BTS·블랙핑크 등의 K팝이 전 세계를 점령했고, ‘오징어 게임’ 같은 히트작이 속속 등장하면서 관련 기업 수익성을 개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행·레저도 추천한다. 기저효과가 크고, 구조조정이 동반된 만큼 승자 독식 구조가 될 것이다.”
최준철 “은행과 보험. 현재 저평가돼 있고, 금리 인상에 따른 이익 확대가 기대된다. 주택 공급 물량 확대에 따른 수혜 주로 건자재 관련 업종도 주목해볼 수 있다. 또 ‘K’를 앞에 붙이는 산업은 해외로 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에쿼티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면 이런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
전준범이코노미조선 기자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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