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 길 ‘가을 추억’ 만들기[방재욱]

 

 

천변 길 ‘가을 추억’ 만들기

2021.10.29

 

코로나19 사태 지속으로 ‘집콕’하는 시간에 생겨나는 답답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매일 만보 이상 걷는 ‘만보 걷기’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아침 산책으로 자주 걷는 양재천변 길 산책을 나서며 어느 방향으로 걸을까 정하려는데, 그동안 걷기에만 집중하고 주변 환경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데 미흡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영동1교와 영동2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수변무대’ 일대에 전시되고 있는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고, 천변의 꽃길을 걷는 ‘가을 추억’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 영동2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영동2교에서 영동1교 쪽으로 향해 걷는 길에 마주하는 야외 공연무대인 ‘수변무대’ 일대에서 서초문화원 주관 ‘2021 양재천 예술제’(10. 15 ~ 11. 14)의 일환으로 야외조각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 이야기들을 담은 17점의 조각품이 전시되고 있는 야외조각전은 우리 생활 문화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출근 길’, ‘어린 왕자가 있는 풍경’, ‘그림자의 그림자’, ‘맞짱’, ‘만남-별들의 향연(합창)’, ‘메롱’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출근길(Way to work)’이란 작품<그림>은 황소가 뒷다리로 서서 왼쪽에 가방을 껴들고 있는 모습에서 황소의 의미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 가족 생계를 위해 기꺼이 생활 전선으로 향하는 가장들의 삶과 애환을 황소의 모습을 통해 풍자와 해학을 담아 표현한 작품이라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황소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모습의 조각 작품인 ‘맞짱(Matjjang, holding out)'에는 코로나19 사태를 염두에 두고 ‘코로나 시대의 힘든 우리들에게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 승리하는 황소의 강한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는 주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며 인상적인 조각들과 주제 설명을 곁들인 입간판의 사진을 찍고 수변무대를 벗어나니 바로 옆에 양재천의 ‘생태하천 식생안내’ 표지판<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표지판에는 천변을 걸으며 마주할 수 있는 꽃잔디, 구절초, 무늬꿩의비름, 삼색조팝, 억새 등 20종의 식물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식물 이름을 알고 식물과 친구가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산책을 하면 산책길이 더욱 정다운 공간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는 식물들을 보며, 나이 들어가며 ‘나도 나무나 식물처럼 아름답게 지내보자.’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일까요.

 

 

​영동1교에 도착해 개울을 건너 영동2교까지 500m 넘게 이어지는 천변 산책로의 꽃길을 따라 걸으며 무르익은 가을 추억도 만들어봅니다. 노랑 코스모스 꽃밭을 시작으로 해바라기 꽃밭, 황화 코스모스 꽃밭, 억새 길에 이어 다시 코스모스 꽃길이 열리고, 수크렁과 억새가 함께 어우러진 길과 코스모스 꽃길에 이어 억새 길로 연결되어 열려 있는 산책길의 추억이 가슴에 깊게 담겨지며 기분이 많이많이 상쾌해집니다.

 

 

며칠 전 억새밭 길을 산책할 때 발견했던 네잎 클로버의 추억도 떠오릅니다. 산책 중 억새밭의 풍광 사진을 찍는데 먼발치에 어렴풋이 네잎 클로버가 눈에 띄었습니다.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네잎 클로버가 나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느껴져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상큼한 감정에 젖어든 추억입니다. 사진을 찍고 클로버 잎을 따서 지갑 속의 지폐를 접어 담은 다음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해 책갈피에 넣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영동2교에 이르니 평소 무심하게 지나쳤던 '잆어요(No where Now here)'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잆어요’는 ‘있어요’와 ‘없어요’를 합쳐 ‘있지만 없는, 없지만 있는’의 의미를 담아 만든 합성어라는 재미있는 풀이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잆어요 No where now here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낯설고도 익숙한 공간을 경험하며 한 템포 쉬어가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으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함께지만 혼자이고, 혼자지만 모두가 연결된 낯설지만 익숙한 격변의 세상’이란 말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귀가 후 샤워를 마치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고 산책길에서 내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 야외조각전 전시 작품들과 꽃길 사진들에 담긴 천변 길 ‘가을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감에 젖어들어 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오늘이란 충실한 하루에 담겨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하루가 시작되는 오늘 아침 왠지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삶의 길목에서 누구나 가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지만, 그런 문제들에 대해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문제가 잘 풀리면서 좀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작은 습관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그 습관이 성공의 열쇠 역할을 해준다고 합니다. 천변 길 가을 산책을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일상에서 긍정적이고 배려하는 습관을 길들여가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지내고픈 마음입니다. 그리고 산책 중 코로나19 ‘집콕’에서 벗어나 가다듬어본 그동안 지내온 일들과 함께 코로나19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삶의 선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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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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