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패러다임] 건설사 떼어내기 그리고 건설 없애기

 

 

  ‘건설’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일을 하던 회사들이 있다. 분명 건설사지만 ‘건설’이 아닌 다른 사업까지 시도했던 기업들이다. 건설은 경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다. 보유 토지를 이용해 부동산을 만드는 자체 개발이 아니라면 건설사들은 ‘발주’가 나와야 사업을 맡아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주문’을 넣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일을 할 수 없다는 거다. 이 때문에 경기가 침체하는 기미가 보이면 건설사는 다른 사업에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 건설과 연관 없어 보이는 사업들이 ‘건설사’ 안에 들어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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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짐 떼기

 

❶ 건설만 남기기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숙명이든 필연이든 다른 사업부를 끌고 가던 건설사들이 최근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방식은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건설사에 건설만 남기는 거다. 그러면 건설사로서 정체성이 강해진다. 건설업에 맞는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서다. 다른 사업부의 부진으로 건설사가 저평가를 받을 위험도 사라진다.

 

그럼 실례를 찾아보자. 대림산업은 올해 3월 ‘DL이앤씨’와 ‘DL케미칼’로 갈라졌다. 매출의 10.6%(2020년 기준)를 차지하며 석유화학제품을 만들던 대림산업 석유화학 사업 부문이 ‘DL케미칼’이란 이름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다. 대림산업 건설부문 내에 있었던 토목ㆍ주택ㆍ플랜트 사업은 ‘DL이앤씨’란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건설사에 ‘건설’만 남긴 셈인데, 실적은 기대치를 밑돈다. DL이앤씨가 대림산업 건설 부문으로 있었던 2019년 2분기 당시 해당 사업부의 매출은 3조9257억원이었다. 1년 뒤인 2020년 2분기에는 같은 부문 매출이 4조2955억원으로 늘었고 DL로 지주회사 전환이 이뤄진 후에는 다소 주춤했다. 2021년 6월 DL이앤씨의 매출은 3조6232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5.7% 감소했다. 

 

하지만 건설사라는 ‘정체성’은 뚜렷해졌다. 2021년 6월 DL이앤씨는 전년과 비교해 8조906억원 규모의 사업을 새롭게 계약했다. 그중 10.6%인 8542억원은 교통 인프라, 산업단지, 물류센터 등을 포함한 비주택 시장에서 나왔다. 1년간 새롭게 따낸 주택 사업만 7조2364억원에 이른다. 89.4%다. 도시정비사업 등 민간사업과 공공이 발주한 공공주택 도급공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언뜻 봐도 ‘주택’ 부문의 실적이 가득하다. 

 

비슷한 길을 간 태영건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영건설은 2020년 9월 ‘태영건설’ 안에 있던 환경, 방송, 레저 사업 부문을 떼어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태영건설의 사업 부문은 ▲건설 ▲레저 ▲방송 ▲환경으로 나뉘어 있었다.[※참고: 건설사업 부문에는 토목환경, 플랜트, 건설, 주택이 포함된다.] 

 

 

태영건설이 가지고 있던 SBS 등의 지분은 지주사인 ‘TY홀딩스’에 넘어갔다. 수처리ㆍ폐기물ㆍ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던 TSK코퍼레이션, 레저사업을 맡고 있던 블루원 등도 마찬가지였다. 태영건설의 사업 부문은 건설사업 부문과 기타사업 부문으로 간단하게 남았다. 건설사로서 정체성을 다시 찾은 거다.

 

군살을 덜어낸 효과는 있었을까. 지주회사 전환이 이뤄지기 전인 2020년 6월 태영건설의 건설 부문 매출은 1조1073억원이었고 1년 만인 2021년 6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6% 감소한 1조88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제자리걸음 수준이었지만 신규 사업 계약은 꾸준히 이뤄졌다. 2021년 6월 기준 태영건설은 5조8000억원이 추가된 신규 공사를 시작했다. 2020년 4월 수주한 제주 음식물폐기물처리시설 조성사업을 포함해 비주택 분야에서도 4428억원 규모의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신규 계약 중 주택이 차지한 비중은 92.5%로 신규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건설사’ 정체성을 강조한 지 약 1년이 안 되는 기간 태영건설의 새 계약이 주택에서 발생한 셈이다. DL이앤씨처럼 말이다. 

 

불필요한 짐 떼기

 

❷ 건설 없애기 

‘불필요한 짐’을 떼내는 또 다른 방식도 있다. ‘건설’이 아닌 미래 매출을 책임질 만한 새로운 사업을 키우거나 비전을 제시하는 거다. 앞서 언급한 건설 집중 방식과는 정반대다.

 

대표적인 회사는 SK의 자회사 SK에코플랜트다.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5월 말 SK건설에서 ‘건설’을 완전히 떼낸 뒤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건설사라는 정체성 대신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에 발맞춰 친환경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일부 건설사는 비건설 사업부문을 정리하거나 아예 건설 대신 다른 산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사진=뉴시스]

 

안재현 SK에코플랜트 사장은 사명 변경과 관련해 “아시아 대표 환경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임팩트 있는 솔루션을 찾아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SK에코플랜트는 사명 변경 직후인 2021년 6월까지만 해도 매출의 55.1%가 정유ㆍ석유화학ㆍLNG 등을 다루는 플랜트 부문에서 발생했다. 

 

건축주택사업은 29.2%, 인프라사업의 매출은 15.0%로 플랜트의 뒤를 이었다. 애초 사명 변경 목적대로라면 3R(소각, 매립ㆍ수처리ㆍ재활용)로 대표되는 에코비즈니스 사업을 키우겠다는 건데, SK에코플랜트는 폐기물 처리업체들을 인수하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최종 형태는 다르지만 건설사들은 유불리를 따져가며 사업 부문 재구성에 나섰다. 각기 다른 선택들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출처 : 더스쿠프(http://ww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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