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5· 끝> [함인희]

 

목차

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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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2) [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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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3) [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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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4) [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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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5· 끝>

2021.10.09

 

다음 해를 준비하며

 

닷새에 한 번씩 서는 조치원 재래시장에 가보니 복숭아도 끝물이요 포도도 끝물인 듯합니다. 블루베리도 끝물이 있습지요. 끝물이 가까워오면 블루베리 열매는 특유의 매력적인 보랏빛 대신 흐리멍덩한 연보랏빛에 얼룩이 지기 시작하고, 새콤달콤함 대신 시큼털털함이 강해집니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생명의 절절함을 노래했던 시인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말년의 블루베리를 볼 때마다 ‘초라하고 추레한 모습이 사람 나이 드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싶어 괜스레 우울해지곤 한답니다.

 

주인장(이모님)에겐 성환에서 꽤 넓은 규모의 배 농장을 운영 중인 절친이 한 분 있습니다. 두 분이 “이 나이에 웬 고생인지 모르겠다”시며 낄낄깔깔 수다를 떨곤 하시는데요. 언젠가 전화기 너머로 “수확이 끝나면 블루베리에게 상을 줘야 해. 사람으로 치면 출산을 한 셈이니까”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라구요. 그 넉넉한 마음 앞에서, 한여름 내내 열매 달고 있느라 고생했을 블루베리를 향해 끝물 어쩌고저쩌고 타박하던 마음이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한데 생물을 다루다 보면 죽음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인 듯합니다. 블루베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해 수확을 마치고 나면 나무들이 죽어갑니다. 블루베리 수확하고 첫 3년 동안은 매해 100주는 족히 죽은 것 같습니다. 과습(過濕)이 원인일 수도 있구요, 거꾸로 점적관수(點滴灌水) 호스가 빠져 말라 죽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응애나 진딧물 등 각종 벌레의 공격도 무섭긴 한데요, 가장 공포스러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의 침입입니다. 잎마름병이나 탄저병 등에 감염되면 시름시름 앓다가 영락없이 죽고 마니까요.

 

혹시 무농약 인증 받은 농산물을 보면서 정말 농약 한 방울도 치지 않았으려니 생각하는 순진한 분은 안 계시겠지요? 무농약 인증 기준은 검사 시점에 검출되는 잔류 농약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 상식으로 알아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개의 농약은 2주일 정도 지나면 검출되지 않는답니다. 다만 제초제는 오래도록 남아 있기에 비닐 대신 부직포를 덮거나 멀칭(mulching)해서 풀의 침입을 막으라고 전문가들이 조언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늘 그러하듯 일정한 거리가 있습지요.

 

저희 농장에서도 무농약과 유기농을 표방하는 만큼 저독성(값이 비싸지만 효력은 떨어지는) 농약을 선택하고 가능하면 농약 치는 횟수를 줄이는 정도에서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여름 수확철이면 저는 한 달 내내 쐐기에 물려 고생을 한답니다. 물론 장갑을 끼면 쐐기 물림을 방지할 수 있지만, 블루베리의 생명이라 할 하얀 분이 장갑에 묻어나오기에 저는 맨손을 고집하고 있습지요. 큰 쐐기에 물리면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쿡쿡 쑤시는 데다 신경이 온통 곤두섭니다. "나 오늘 쐐기 물린 여자야" 하면 주인장도 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한답니다.

 

 

“고객님들 덕분에 올해도 블루베리 출하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감사 메시지 보내고 나면, 미처 따지 못한 블루베리 열매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상품성이 떨어져 출하하지 못한 열매와, 끝물 훑은 것을 모아 냉동고에 저장해두고 이듬해 생블루베리 나올 때까지 아침마다 블루베리 주스를 만들어 먹습니다. 냉동 생블루베리 1컵 + 바나나 약간 + 우유와 물 각각 2분의 1컵, 여기에 직접 담근 감식초 10mg을 섞어 마신답니다. 

 

매년 가을에 만나는 블루베리 단풍. 월동이 시작되는 무렵의 모습이다.

 

장마철에 쑥쑥 올라온 잡초 제거하고 병든 가지 잘라서 불태우고 나면 어느새 블루베리 농장에도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새빨갛게 물든 블루베리 잎사귀는 랑콤 루즈색보다 더 매혹적입니다. 물을 참으로 좋아하는 블루베리를 위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물을 흠뻑+물씬 준 다음 물탱크를 잠그면 블루베리의 월동이 시작되지요.

 

이제 주인장과 저에게 남은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식구들 위해 쟁여놓은 블루베리 일부를 잘 닦아 말린 후 술을 담그는 일이지요. 2019년 담근 블루베리주를 올 추석 차례상에 올려드렸는데요, 조상님들께서 내년에도 블루베리주를 찾으실 것 같습니다요.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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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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