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유럽, 이젠 독자적 소리 낼까? ㅣ 미국 각 주별 유입 숫자 Approved number of Afghan refugees by state

 

유럽, NATO 국제안보군 주도하고 2002년 이후 5조원 원조

미군 철수 후 난민 우려… ‘전략적 자율성’ 높이자는 주장 커져

미국의 지원자로 남을지, 더 큰 목소리를 낼지 시험대에 올라

 

이재승고려대 국제대학원장·장 모네 석좌교수

 

   2001년 9월 12일.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전면에 가장 큰 활자로 9·11 테러를 보도하며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 간의 집단 방위를 맡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처음으로 동맹국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헌장 제5조를 발효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명명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라크전과는 다른 결을 지녔다. 유엔 및 유럽의 전적인 지원을 받은 미국은 파죽지세로 전쟁을 마무리하며 환호성 속에 카불에 입성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워 보였다. 20년이 지나 긴장 속에서 필사적인 카불 공항에서의 탈출을 예상하는 이들은 없었다.

 

Vox edited by kcontents

 

아프간 지원의 핵심 주체였던 EU

미국이 이라크전으로 관심을 옮겨가면서 NATO는 2003년 말부터 2014년까지 유엔이 위임한 국제안보원조군(ISAF)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카불과 주변 지역의 평화 유지와 국가 건설이 느슨하게 연계되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보안군과 정부기관이 테러와 싸우고 국가를 보호하도록 훈련시키는 “확고한 지원 임무(RSM)”를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2007년부터 공동안보방위정책의 일환으로 민간 경찰 구축을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 경찰 임무(EUPOL Afghanistan)’를 2016년까지 수행했고, 2002년 이후 40억유로(약 5조원)의 개발 원조를 제공해 왔다.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해외에 군대를 파병했다. 미국을 제외하고 유럽은 아프가니스탄 지원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체였고, 미국과 NATO 철수의 충격도 컸다.

 

독일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기민당의 아미르 라세트는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NATO의 창설 이후 겪은 가장 큰 재앙이라고 언급했고,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미국의 배신이라고 비판했다. 호셉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아프간 국민, 서구의 가치와 신뢰성, 국제 관계 발전에 재앙이었음을 선언했다.

 

 

유럽, 아프간 철수 후폭풍 경계

하지만 유럽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과연 진지해 본 적이 있었을까? 중앙아시아의 관문이고, 영국과 러시아가 맞붙은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현장이기도 했지만, 험준한 지형과 분절화된 부족 연합체의 성격을 지닌 아프가니스탄 자체가 가지는 전략적 가치는 불명확했고, 절대적으로 손에 넣어야 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되는 마약과 난민의 유입이 유럽에는 더 민감한 의제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아편의 80% 이상을 생산한다. 유럽과 NATO가 특히 공을 들인 지역은 “아편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주요 재배 지역이었다. 아프간 난민은 시리아에 이어 유럽 내에서 가장 많은 유입원 중 하나였다.

 

20년이 지난 시점에 막대한 자금과 파병을 통해 유럽이 달성한 결과는 의문시된다. 해외 군사 개입의 효과와 정당성에 대한 내부적 불신은 더 커져가고 있고, 유럽의 지정학적 행동 능력과 의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 경찰이 아니고, 멀리 떨어진 주변부의 안정이라는 애매한 목표를 위해 권력과 자원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자국의 안보를 미국이라는 거대 동맹국에 보험처럼 맡겨둘 수 있는 순수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력, 결정력, 행동력을 제공할 유럽의 군사적 역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NATO의 동맹국 중 국내총생산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할 계획인 유럽 국가는 불과 9국에 불과하다. 뇌사 상태의 NATO를 비판하고 유럽의 군대를 주창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목소리는 여전히 공허하다.

 

그래픽=백형선

 

유럽은 아프가니스탄 철수의 후폭풍을 경계하고 있다. 2015년과 같은 난민 유입에 대한 반사적 두려움이 커지면서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미 유럽은 상당수의 아프간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한 바 있고, 새로이 난민을 떠안게 될 터키와 주변국들에 대한 지원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탈레반 치하로 다시 돌아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소수민족 문제에서 유엔과 미국 뒤에서 조용한 지원자로 남을 것인지,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인지, 인권의 수호자로서의 유럽의 역할은 다시금 시험대 위에 올랐다.

 

전략적 인내가 변화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은 시간과의 전쟁을 인식하지 못했다. 다른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종종 세대를 거쳐야 한다. 시계를 보는 사람은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20년은 긴 시간일 수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이 태생적으로 지닌 균열과 관습을 바꾸어놓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중앙정부가 그 역할을 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설 만큼 미국과 유럽이 깊이 개입할 전략적 가치는 불분명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시간의 늪으로 다시 빠져들고 있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시계를 보고 조급히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시간을 가진 상대방을 돌려놓을 수 없다. 20년으로도 충분치 않았을진대 2년으로, 5년으로 충분할 리 없다. 물론 상황과 맥락은 다르다. 하지만 상대방의 변화를 전제로 한 외교는 시계의 덫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전략적 인내와 정치적 공고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과 나토의 철수가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아프간 난민 미국 각 주별 유입 숫자

 

 

kcontent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