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한국? 별로 한국 같지 않다[고영회]




여기가 한국? 별로 한국 같지 않다
2021.09.17

닥친 문제를 풀려고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뭘 찾을 때가 많습니다. 찾기창에서 실컷 입력했더니 영자로 잔뜩 채워져 있는 경험했습니까? 저는 자주 겪습니다. 정말 짜증납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국어기본법이 있고, 우리말 우리글이 기본 글자인 한국에서 뭘 찾으려는데, 바탕화면 찾기창이 영자로 시작하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고, 국민은 국가가 하는 일을 쉽게 알고 찾아서 잘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입법부 행정부처 사법부 각 누리집(홈페이지)을 찾아서 살펴봤습니다. 국회의안정보(입법 진행 법령 찾기), 인터넷우체국(우편번호 찾기), 대법원인터넷등기소(증명 서류 떼기), 법제처 법령정보(현행 법령 찾기), 경찰청(민원), 행정안전부(재난지원금) 어디를 둘러봐도 찾기창에서 한글로 시작되는 곳이 없습니다.

 



상상해 봅니다. 조선시대에 요즘처럼 코로나가 설쳐서 방역단계를 백성에게 알리려면 방(榜)을 써 붙여야 했을 겁니다. 그때 방에는 무엇을 어떻게 적었을까요? 아마 한자로 4단계를 공포한다. 6시 이후에는 2명까지만 허용한다. 이것을 어긴다면 개인과 사자에게 과태료를 때린다. 그런데 이 내용이 한자로 적혔겠죠? 한자를 제대로 아는 백성은 별로 없으니, 다행히 서당이 있는 동네라면 훈장선생에게 뜻을 물어 알아봤겠죠. 그것을 물어볼 수 없었던 백성은 저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른 채 단속에 걸리고, 처벌을 받아야 했겠습니다. 나는 방을 붙여 알려줬다. 그런데도 몰랐으니 너는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식입니다. 국민이 주인이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현대 한국에서 국민알든 모른든 상관없이 내 좋을 대로 내 편한 대로 알리는 듯합니다.


국가 기관 누리집의 찾기창

 


주요 인터넷 검색서비스를 제공하는 곳(포털)의 찾기창(검색창)은 어떤지 찾아봤습니다. 국내 기업이 만들었고 한국사람이 이용하는 네이버와 다음 찾기창에 가봤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시작하는 글자가 영자입니다. 국산이 이런데 외산인 구글 찾기창은 해보나 마나겠다 싶습니다. 역시 짐작대로 영자로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상대로 사업하는 우리 기업이 그런 판이니, 외국에서 온 업체야 말할 필요도 없겠군요. 집안에서 대접 받지 못하는데, 바깥에 간들 제대로 대접받겠습니까?

네이버, 다음, 그리고 구글


글자를 잘못 입력했을 때 지우고 다시 넣으려면 참 짜증납니다. 우리 시간과 얼을 빼앗아갑니다. 온 국민이 입력했다가 지우고 다시 입력하면서 생긴 빼앗긴 시간과 그 가치를 환산해 보면 엄청나게 큰 숫자가 될 것입니다. 이게 국력을 내다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초월세상(메타버스, '너머세상'이라 쓰자는 사람도 있더군요. 괜찮죠?)을 기반으로 4차산업 세상으로 갑니다. 정보 입력량과 사용량이 더욱 많아질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쓸 프로그램을 만들 때, 바탕 글자를 한글로 설정해야 합니다. 당연한 요구입니다. 더구나 국민을 모신다고 떠드는 국가기관들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말글을 쓰자는 게 국수주의가 아닙니다. 우리 정체성, 그리고 효율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라고 자랑하는데, 그렇게 우수한 글자를 쓰려고 국민 손발이 고생합니다. 우리다운 모습을 보길 기대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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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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