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野黨)의 아들 [추천시글]
야당(野黨)의 아들
2021.07.20
농촌에서는 1년 중 7월이 가장 한가한 달입니다. 모내기도 끝내고, 고추며 참깨, 콩도 새파랗게 줄기를 세우고 있을 때이기도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햇볕이 바람을 동반하는 시간을 이용해서 고추를 따다 마당 멍석에 말리기도 하고, 반찬으로 먹을 애호박이며 깻잎 등을 따기도 합니다.
어느 동네나 있기 마련인 정자나무 밑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한가롭게 부채질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비교적 나이가 드신 분들은 그늘이 짙은 곳을 차지하시고, 젊은 층은 가장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어른들이 주고받는 옛이야기를 바람에 섞어 듣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살던 동네는 산골이라 그런지 소금이 귀했습니다. 요즈음처럼 마트나 슈퍼에서 팔지 않고 소금만 전문으로 파는 집이 따로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소금집 주인을 ‘야당’이라 불렀습니다. 저는 ‘야당’이라는 말이 소금집 주인의 또 다른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야당은 아무리 더운 날에도 정자나무 밑으로 마실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늘 가족들하고만 지냈습니다. 옷도 또래의 다른 어른들처럼 알몸에 잠방이를 걸치거나 염색한 군복 따위를 입지 않았습니다. 면장이나 학교 선생님들처럼 항상 노타이에 양복 차림으로 소금을 팔았습니다.
연탄 가게 사장은 연탄을 실은 트럭이 오면 아이들에게 몇백 원씩 주며 하차를 시키거나 배달을 시켰습니다. 야당은 소금을 실은 트럭이 와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서 가게로 옮겼습니다.
야당의 아들 형제 중에 저하고 나이가 비슷한 또래가 있었습니다. 야당이 늘 혼자 있어서 그런지 자식들도 또래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서는 항상 개를 길렀는데, 제 또래는 개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놀거나, 저물녘에는 냇가 둑방을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하루는 우연히 야당의 아들과 어울렸습니다. 어른들은 정자나무 밑에서 가물가물 졸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앞뒷문 다 열어 놓은 안방에서 큰대자로 누워 낮잠을 자고 있을 시간입니다.
어른들이 한가하니까 아이들도 여름 해가 고래 심줄처럼 질깁니다. 오후에 냇가에서 물놀이했습니다. 입술이 새파랗도록 물놀이를 하다 지친 우리들은 여름 햇살에 뜨겁게 달궈진 납작한 돌로 양쪽 귀를 덮어, 귓속에 들어간 물을 빼냈습니다. 서로의 고추를 바라보며 깔깔거리다가 아까시나무 그늘 밑으로 갔습니다.
“우리 참외 서리 할까?”
아까시 밑은 시원했습니다. 매미는 악을 쓰며 울어댔고 냇가 자갈밭에는 아지랑이가 아물아물거리는 오후는 고요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습니다. 야당 아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습니다. 몇 시간 동안이나 물놀이를 하느라 허기에 지쳐 있던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냇가 둑으로 올라갔습니다. 냇가 건너 참외밭이 보였습니다. 원두막에서는 누군가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야당 아들은 우리 다섯 명들에게 임무를 주었습니다. 세 명에게는 각자 다른 방향을 망보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야당의 아들과 다른 친구가 응용 포복으로 참외밭을 향했습니다. 저는 원두막을 지켜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작전은 실수 없이 성공했고, 우리는 아까시나무 밑으로 다시 갔습니다. 이빨로 참외 껍질을 벗겨서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참외밭 주인이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너무 놀라서 도망칠 힘도 없었습니다. 입 안 가득 참외를 물고 있는 녀석, 막 참외 껍질을 벗겨서 뱉으려던 친구, 누군가 뀐 방귀 냄새에 코를 막고 있던 녀석도 얼어붙은 얼굴로 주인을 바라봤습니다.
오십 대의 참외밭 주인에게 알밤을 몇 대씩 맞은 우리들은 땡볕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팔이 끊어져 버릴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손을 들고 있다가 옷이 땀으로 모두 젖을 무렵 해방이 됐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참외 서리한 점에 대해서는 별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야당의 아들과 다시는 어울리지 말라는 말씀만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저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참외서리 한 죄가 있어서 무조건 용서를 빌었습니다.
소금이 흔해지기 시작할 무렵 야당은 소금집을 팔고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산골의 외딴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며칠 후에야 소금집 주인의 또 다른 이름이 ‘야당’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야당’을 제외하고는 민주공화당에 투표를 하는데, 소금집 주인만 야당인 신민당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소금집 주인을 비웃느라 ‘야당’이라고 했다는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의 정치관으로는 부모님들 덕분에 야당이 된 자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둥 마는 둥 일찍 객지로 나갔습니다. 야당네 가족이 살던 집은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객지에서 이사 온 사람이 험상궂게 생긴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도베르만, 도사 같은 투견을 사육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투견이 짖어대는 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그 집 앞으로 지나다니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가끔은 투견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객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링을 둘러싸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개를 구경하며 환호를 지르거나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외딴집이 있던 자리는 아스팔트 도로로 변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그 길을 지나갈 때면 가끔 참외 서리를 하다 들킨 야당 아들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그 친구도 야당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