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내 삶의 키워드 [추천시글]

 


부끄러움, 내 삶의 키워드
2021.07.15

4월이 가고, 5월이 가고, 6월이 가고, 7월도 중순이네요. 길다면 긴 세월을(앞으로 더 살아야겠지만) 돌이키며 나의 삶 전반을 관통한 키워드가 일정 부분 부끄러움이었고, 지금도 그러함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 믿고 추구했던 순수, 참됨, 의로움, 연민, 공감 같은 근원적 가치들을 떠나 효율, 요령, 핑계, 이득, 현실감각 같은 방편들을 중시하고, 또 그런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삶을 지금도 살고 있으니 그런 내가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에 대하여 몇 발짝 더 나아가볼까요?

동양에서는 사람이 가진 7가지 감정(七情)으로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듭니다. '기쁨(喜)'과 '즐거움(樂)'은 엇비슷한 감정으로 뚜렷이 구별되지 않으니 둘 중 하나를 빼고 빈자리에 '부끄러움(恥‧愧)'을 포함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부족함을 알고 온당치 못함을 느끼는 심리작용이니 옛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도(道)의 시초가 된다고 말합니다.

 



부끄러움을 형용하는 말에는 여러 표현이 있지요. '수치(羞恥)'는 다른 사람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일컫습니다. 분수‧주제라는 뜻으로 쓰는 '염치(廉恥)'는 자기 처지에 걸맞은 행동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아는 마음입니다. 심장을 베일만큼 괴로워한다는 '참괴(慙愧)'는 부끄러움의 최종단계라 할 만합니다. 부끄러움은 양심이 촉발하는 내면의 신호니, 소크라테스가 들은 '다이몬(Daimon)'의 소리요, 칸트의 마음속에 자리한 '도덕률(Moralgesetz)'에 비할 수도 있겠지요.

부끄러움은 '내면을 들여다봄'과 맥이 닿아 있으니 깨달음의 통로나 선행감정이 되기도 합니다. 깨달으려면 전심전력을 다해 그 무엇을 구하여 사물의 이치와 핵심에 닿아야 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을 갖고 언저리를 끈질기게 탐사하여 시추공(孔)을 내려뜨려야 합니다. 대저 '깨달음'이야말로 뭇 현인과 성인, 구도자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무상의 경지가 아니던가요. 부끄러움의 성찰은 깨달음을 낳고 깨달음은 분발의 계기로 작용해 새로운 지혜의 발견과 용기 있는 실천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아우구스티누스‧루소‧톨스토이...) 중에는 나약한 내면을 지녀 보통사람 이상으로 부끄러움을 느낀 이들도 많지만 통렬한 반성과 부끄러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류의 정신사에 찬연한 빛을 던지는 스승이 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위인‧선각자와 보통사람의 차이는 과연 이 지점에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은 자기성찰을 통해 실존적 의미에서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내던져 존재에 대한 긍정을 실천한 사람들일 것이에요. 시간에 갇힌 인간존재의 불완전성과 허무함을 극복하여 시대정신의 실현, 인간성의 고양, 공동선의 지향, 보편적 인류애의 달성으로 시간의 향도(嚮導, 군대용어 아님!)가 된 것이지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에 의하면 '무한한 계속'인 시간 앞에 선 인간은 초라합니다. 인간은 고유한 어떤 곳에 '던져진 존재(Geworfenes Dasein)'고, 시간은 존재를 이해하는 실행의 지평으로 드러나며, 시간성은 '현존재(現存在‧Dasein)'의 근본 구조를 이룹니다. 인간은 죽음을 '선취(先取)'하는 '선구적 결의'를 통해 시간 속에서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본래적인 삶에 자유와 책임, 능동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역사에 참여한다고도 하네요. 현존재는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이고 존재를 앞질러 존재합니다. 이것이 인간 실존의 참모습이어야 하지만, 시간의 풍화작용[無化]인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일상인은 소시민적 군상에 머물 것이에요.

4월이 가고, 5월이 가고, 6월이 가고, 7월도 중순이네요. 내면에 오래도록 똬리를 튼 부끄러움은 외부의 요인으로 촉발된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긋고 나라 발전에 이바지한 사건들을 떠올립니다. 4월 4‧19혁명, 5월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그때 나의 형편과 처지, 입장은 어떠했던가? 4‧19 때는 중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이었고, 5‧18 때는 진급을 앞둔 회사원이었으며, 6‧10 때는 해외주재 근무 중이었습니다. 그처럼 중요한 변곡점 때마다 나는 항상 역사의 현장에 없었답니다. 그 기억이 또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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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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