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강국 맞아?...선진국 감소 심근경색 환자 한국만 급증세
美·英서 환자 25년간 50% 감소, OECD 중 한국만 43% 급증세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한국은 말로만 떠들어
(편집자주)
경상남도 남해 연안에 사는 최모(65)씨는 낮에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을 느꼈다. 근방 보건지소에서 심근경색증이 의심된다는 말에 따라, 통영의 중소 병원을 찾았다. 증상이 생긴 지 두 시간이 흘렀다. 거기서 심근경색증으로 진단받았으나, 그 병원에서는 막힌 심장 관상동맥을 뚫어주는 시술이 불가능했다. 최씨는 진주 경상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결국 증상 발생 4시간 45분 만에 혈관 조영술을 받고 좁아진 관상동맥을 넓히는 시술에 들어갔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체돼 환자 심장은 이미 정상으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애초 심근경색증이 의심됐을 때 중앙이송센터 같은 곳에서 바로 심장 시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환자를 옮겨야 했다고 심장내과 의료진은 아쉬워한다.
국내 심근경색증, OECD 중 유일하게 급증
심근경색증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져 발생한다. 화산처럼 예고 없이 터져서 심장 근육을 못 쓰게 만드는 초응급 질환이다. 그런 심근경색증이 우리나라서 최근 10년간 2배로 급증하고 있다. 2010년 6만6000여 명이던 환자가 2020년에는 12만1000여 명으로 늘었다. 남자는 60대에게 가장 많고, 5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까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돌연사한 ‘방랑 식객’ 임지호(65) 셰프, 영화 여고괴담 제작자 이춘연(71) 대표도 심근경색증 사망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자는 심장을 보호하는 여성호르몬이 사라진 폐경기 이후 70대와 80대 때 대거 발생한다.
특이한 것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심근경색증 환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년간의 발생률 변화를 보면 한국은 43%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나머지 국가는 모두 줄었다(2019년 OECD 헬스 통계). 미국, 영국 등 대표적 서양 국가에서 50% 이상 감소세를 보였다. 대한심장학회는 우리나라에서 고령 인구 증가와 서구 음식 문화가 만나 심근경색증이 폭발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분석한다. 심근경색증은 비만, 흡연,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고령 등 요소가 많을수록 발생 위험이 크다.
의료 강국이라더니, 사망률은 높아
우리나라는 해외 환자도 유치하며 안팎으로 의료 강국임을 자처하지만, 심근경색증 사망률을 국제적으로 따지고 보면 의료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심근경색증 입원 30일 내 사망률이 OECD 평균은 6.9%인데, 한국은 9.6%다. 칠레(8.2%)보다 높다. 이탈리아(5.4%), 미국(5.0%), 스웨덴(3.9%) 등은 낮게 유지되고 있다.
높은 사망률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 우선 심근경색증에 대한 인식도가 낮다. 이 병은 통증 발생 후 관상동맥 조영술까지 시간을 최대한 짧게 하는 게 목숨을 건지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설마 하는 생각에 병원 방문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심근경색증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평균치(중앙값)는 5시간에 가깝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3시간이다. 응급실에 실려온 심근경색증 환자의 40% 정도는 심근경색증이 처음 발견된 환자다.
초응급이라는 인식이 약하다 보니 119구급대를 요청해서 응급실에 오는 심근경색증 환자 비율이 30%대에 머물러 있다. 나머지는 이송 도중 응급 처치가 전혀 없는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온다는 얘기다. 광주·전남 지역은 119 이용률이 20%도 안 된다.
심근경색증을 제대로 진단 치료하려면, 병원에 혈관 조영술 장비가 있어야 하고, 24시간 대기하는 심장내과 전문의가 여럿 포진하고, 상황에 따라 응급 수술을 할 흉부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심근경색증 발생 초기부터 거리가 멀더라도 이런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데,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엉뚱한 병원으로 가서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많다. 그나마 대형 종합병원이 밀집한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응급 이송이 잘되나, 지방에서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경북, 경남, 충남, 충북, 전남 등의 심근경색증 사망률이 대체로 높다. 암은 국립암센터, 응급 의료는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며 이송체계나 진료 지침을 짜는데, 심근경색증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권역 심뇌혈관센터와 지역 센터만 있을 뿐, 전체를 아우르는 국립 또는 중앙 센터는 없다.
최근에는 심장내과 전문의를 하겠다는 의사들의 지원도 크게 줄고 있다. 응급 시술이 많아 힘들다는 이유다. 5~6년 전만 해도 심장내과 지원자(전임의)가 한 해 60~70여 명이었으나 지금은 30명대로 반 토막 난 상황이다.
선진국은 국가 관리 체계 가동
선진국들은 암 환자 국가 등록 시스템처럼 심근경색증 환자도 나라에서 관여하여 등록, 관리한다. 스웨덴은 매년 스위드하트(SWEDEHEART)라는 보고서를 국민과 언론에 발표하는데, 심근경색증 환자가 언제 어떻게 병원에 갔고, 무슨 치료를 받았고, 치료 결과가 어땠는지를 공개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도 치료 성적을 발표한다. 점수 낮은 병원과 지자체에는 정부가 원인 분석팀을 보내 인프라를 개선토록 지원한다.
119 구급대는 심근경색증 환자로 판단되면, 이동 거리가 멀어도 심혈관 조영술과 심장내과 전문의가 24시간 대기하는 병원으로 이송토록 하고 있다. 먼 거리 이송했다고 구급대를 추궁하지 않는다. 그게 환자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심혈관센터 퇴원 후에도 동네 병원과 연계된 의무 기록으로 후유증이나 지속적 약물 치료 여부도 파악된다.
대한심장학회 배장환(충북대 심장내과) 보험이사는 “급성 심근경색증 같은 분야는 일개 병원이 인프라 개선에 투자하기 어렵다”며 “선진국처럼 국가와 지자체 책임제로 가서 이송 방식 개선, 인력 지원, 질병 인식 홍보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 서존(순천향대 심장내과) 보험위원은 “심근경색증은 암과 달리 발생 순간 잘 치료하면 멀쩡히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기에 부실 지체 치료로 목숨을 잃는 상황이 더 안타깝다”면서 “전국 어느 곳에서든 증상 발생 후 골든타임(최소 3시간 이내)에 혈관 조영술 및 막힌 관상동맥 재개통 시술을 제대로 하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인프라가 갖춰지면 고령 사회를 맞아 급증하는 심근경색증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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