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슬 컬처···창고로 간 영국 여왕 초상화 [추천시글]
캔슬 컬처···창고로 간 영국 여왕 초상화
2021.07.01
영국 옥스퍼드대학 산하 모들린(Magdalen) 칼리지가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를 떼어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의 군주제가 식민 역사를 상징한다’는 게 이유입니다.
칼리지 측은 초상화를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고, 이 사실을 보도한 텔레그라프는 “여왕이 캔슬 컬처(Cancel Culture)의 피해자가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학생 투표 결과 제거된 여왕의 초상화는 ‘창고로 간 영국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옥스퍼드의 총 39개 칼리지 중 1458년 설립된 모들린 칼리지에서 1948년 명예 학위를 받았습니다. 여왕의 초상화는 1952년 즉위식과 함께 걸렸고, 2009년 대학 설립 5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옥스퍼드대의 칼리지 오리엘(Oriel) 캠퍼스는 19세기 식민주의자인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동상 철거 결정을 번복해 적지 않은 분노를 사고 있다고 합니다.
# 점점 과격해지는 캔슬 컬처
캔슬 컬처란 온라인 문화현상의 하나로,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팔로우(follow)에서 제외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SNS에서 인종이나 젠더(gender) 등의 문제로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이들을 왕따시키는 행동방식이 대표적 예입니다.
그러나 캔슬 컬처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대신 재빠르게 절교 또는 공개 저격하는 온라인 징벌 행위나 사이버 린치로 점차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 미국 젊은이들이 트위터에서 유행시킨 이 말은 ‘철회’ ‘무시’ 정도의 소극적 거부 문화였으나 정치 경제 사회 분야로 확산되면서 그 의미가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불매운동, 정적이나 동료 의원의 출당(黜黨) 출욕(黜辱), 노인을 폄하하는 꼰대 취급, 친구나 동료를 마지널맨(marginal man)으로 몰아붙이거나 학대하는 ‘이지매’ 같은 현상입니다. 공존·상생이 아닌 단절·배척의 문화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 상생·공존 아닌 단절·배척 문화로
캔슬 컬처는 인터넷 세상에서 태어난 문화현상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집단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생겨난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오스트라키즘(ostracism 도편추방제), 생명창조와 천동설을 절대 진리로 신봉하던 기독교의 진화론자와 지동설 주장자 탄압, 로마의 기록말살형 등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부자간의 의절, 파문(破門), 정적의 유배에서 적폐 청산으로 살벌한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특히 정치판에선 패륜, 악마, 망나니, 배신자, 반역자, 매국노 같은 막말로 상대방을 공박합니다. 나아가 사상과 이념이 결부되면서 초상화뿐만 아니라 흉상, 동상, 치적, 사람 이름을 딴 도로명까지 훼손하거나 지워버리는 일도 허다합니다.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집합금지 등 코로나 팬데믹으로 쪼그라든 사람들의 ‘마음근육’이 더 위축되면 또 어떤 배척문화가 성행할지 걱정스럽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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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