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의 대형 풀꽃, 도깨비부채 [추천시글]




깊은 산속의 대형 풀꽃, 도깨비부채
2021.06.23

 

도깨비부채 (범의귀과) 학명 Rodgersia podophylla A. Gray


짙은 초록빛으로 뒤덮인 산능선 너머로 펼쳐진 파란 하늘이 곱습니다. 하얀 새털구름이 얇게 펼쳐진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푸른 산을 오릅니다. 숲길에 피어나는 절로 자란 야생화, 크건 작건 나름대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황량한 이른 봄 산길에서 언제쯤이면 고운 꽃들이 피어날까? 기다리던 때가 바로 얼마 전 같은데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갑니다.

 



날도 차고 들판에 풀꽃도 없는 겨울철의 집콕은 답답했지만, 지금은 집 밖에만 나서면 보고 싶은 풀꽃을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선뜻 집을 나서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이웃을 만날 때에서야 비로소 마스크가 생각나 후다닥 집으로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산과 들의 꽃을 찾아 언제든 시간이 나면 집을 나섭니다.

이번에 간 곳은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이름만 들었던 강원도 홍천군의 대학산(876m)이었습니다. 이곳은 최근 한계령풀 군락지가 발견되었고 이른 봄 야생화가 좋아 찾는 이가 많다고 전해 들은 바 있어 많은 기대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봄꽃이 지고 여름꽃이 피려고 하는 간절기(間節氣)라서 많은 꽃과 특별한 꽃을 보지 못했으나 인상 깊게 만난 꽃이 있으니 바로 도깨비부채 군락지입니다.

등산객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길이 아닌 듯 덤불에 가려진 길을 헤쳐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덤불을 헤치며 계곡에서 능선으로 힘들게 올라가니 능선 북쪽 사면에 초록 바다가 펼쳐진 것처럼 잎 넓은 대형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군데군데 흩어져 자란 신갈나무 그늘에 사방이 탁 트인 개활지였습니다. 잎이 넓고 키도 큰 대형 초본식물이 군락을 지어 꽃대를 높이 올려 하얀 꽃을 수북이 달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한 모습이었습니다. 높은 산을 오를 때 몇 포기씩 자라고 있는 도깨비부채를 만난 적은 있지만, 이토록 너른 곳에 펼쳐진 군락지는 처음 봅니다.

 



작지도 않은 대형의 풀꽃이 커다란 군락지를 이루어 자라고 있으니, 마치 일부러 심어 놓은 재배단지 같기도 했습니다. 보통 작은 식물은 종에 따라 군락을 이루며 자랍니다. 그러나 큰 식물은 서로의 간섭과 햇볕 방해를 피하려는 생존전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군락을 이룬다 해도 작은 군락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너른 군락지를 이루고 있으니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손바닥처럼 갈라진 도깨비부채의 커다란 잎은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합니다. 큼직한 초록 이파리 위에 1m 정도 높이의 꽃차례에는 솜사탕처럼 하얀 꽃이 다닥다닥 매달려, 한여름의 더위를 말끔히 씻어줄 만큼 상쾌한 청량감을 줍니다. 한여름 숲속의 청량제와 같았습니다.

높은 산에서 자라는, 시원시원한 모습의 도깨비부채 군락지

 


높고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도깨비부채는 산우, 작합산, 수레부채라고도 합니다. 곧게 선 줄기는 높이가 1m 정도이며 뿌리에서 난 잎은 손바닥 모양의 겹잎으로 큰 것은 지름이 50cm에 이릅니다. 뿌리잎과 줄기에 어긋나기로 달리는 잎 가장자리에는 날카롭게 갈라진 불규칙한 톱니가 있습니다. 도깨비부채라는 이름도 돌려난 커다란 잎 모양이 부채를 닮았으며, 날카롭게 갈라져 삐죽삐죽하게 나온 모습이 마치 도깨비가 들고 다님 직한 부채일 것이라는 상상에서 비롯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꽃은 6월에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피는데, 길이 20~40cm 정도의 꽃차례에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순차적으로 핍니다. 열매는 삭과로 길이 5mm이고 넓은 달걀 모양이며 8월 이후에 흑갈색으로 익습니다. 번식은 씨보다는 주로 땅속줄기로 합니다.

분포지는 주로 중부 이북과 강원도의 깊은 산중이라서 남부지방에서는 만날 수 없으며 중부 이북에서도 1,000m 정도의 높은 산이라야 만날 수 있는 식물입니다. 깊은 산속의 산골짜기, 특히 울창하지 않은 나무 그늘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 자생합니다.

 



도깨비부채처럼 잎이 커다란, 비슷한 모양의 종(種)으로 개병풍과 병풍쌈이 있습니다. 두 종 모두 높은 산에 자라는 식물로 중부 이북, 강원도에서 자라는 식물이며 잎이 매우 크고 모양도 비슷합니다. 개병풍은 국내 자생 육상식물 중 잎이 가장 커서 지름이 50~60cm이며 큰 것은 1m에 이릅니다. 병풍쌈은 잎 지름이 30cm 정도입니다. 개병풍, 병풍취 모두 잎이 커다랗고 잎몸이 갈라지지만, 도깨비부채와 다른 점은 잎몸이 하나라는 점입니다. 개병풍은 잎끝에서 약간 갈라진 모습이며 병풍쌈은 중간 정도까지만 갈라진 하나의 잎입니다. 이와 비교해서 도깨비부채는 잎이 끝까지 완전히 갈라져 5~6개의 작은 잎이 모여 있는 점이 서로 다릅니다.

도깨비부채는 열을 내리고 새살이 돋아나게 하며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어서 한약재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름은 어쩐지 으스스하고 오싹해 보입니다. 하지만 한여름 높고 깊은 숲속 으슥한 곳에서 만나도 시원시원한 넓은 잎이 오히려 반가움과 즐거움을 더해 주는 고산성 자생식물입니다. 그래서 이름과 달리 꽃말도 '행복, 즐거움'이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스크 없으면 외출도 하지 못하는 답답한 이 시기에 힘들게 산에 오르다가 으슥한 깊은 숲속에서 만나도 시원시원한, 푸르고 넓은 잎에 기분이 상쾌한 도깨비부채입니다. 답답하고 짜증스럽기조차 한 팬더믹 현상과 얄궂게 꼬여가는 듯한 우리 사회도 청량감 넘치는 도깨비부채를 만나듯 시원하고 행복과 즐거움이 살아나는 상큼한 날이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2021. 6월. 깊은 산속에서 만난 도깨비부채)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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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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