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나! 중대재해처벌법 반대 목소리 건설업계, 광주 붕괴사고로 명분 잃어

   9명이 사망한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장 붕괴사고로 인해 안전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내년 1월로 예정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사고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처벌 규정을 담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늦추려던 건설업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와 경찰 등 합동 감식반이 사고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2021.6.10/연합뉴스

 

 

그간 건설업계에서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고가 더 잦다고 주장했지만, 대기업인 HDC현대산업개발이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됐다.

 

11일 광주시와 HDC현대산업개발 측 발표에 따르면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는 건물 철거 과정에 5층짜리 건물이 인근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철거사업은 원청에서 하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인 ‘한솔기업'이 진행하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원청업체도 철거사업을 관리할 의무가 있어 시공사인 HDC현산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HDC현산은 입찰과정에 참여한 한솔기업과 계약을 맺고 철거사업을 진행했다. 철거 작업은 굴착기가 철거 건물 꼭대기에 닿을 수 있는 높이까지 흙을 쌓아서 굴착기를 올려놓은 다음 위에서부터 아래로 철거하는 공법으로 실시됐다. 조합에서 감리회사를 선정했지만 감리감독관이 상주하지 않는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업 현장에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솔기업 측에서도 당시 현장 외부에 신호수 2명을 배치했으나, 사고 직전 대피 신호를 제대로 주지 않아 건물 붕괴 직후 시내버스가 매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사고로 함몰된 버스 안에 갇힌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철거 작업에 투입됐던 인부들은 붕괴 직전 이상 징후를 알아채고 미리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시와 HDC현산 측은 사고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피해자와 유족들을 대상으로 피해보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규모 시공사가 관리하는 사업에서 이 같은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건설업계는 이번 사건의 불똥이 어느쪽으로 튈지 몰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장 내년 1월에 도입될 예정인 중대재해법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졌다. 안전사고가 발생한 기업의 총수에게 징역1년 이상·10억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이 법을 두고 업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총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분위기는 바뀔 수 밖에 없게 됐다. 그간 시공사들은 내년 1월 도입될 예정인 중대재해특별법의 도입 시점을 늦추자고 주장하면서 ‘소규모 시공사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더 많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런데 대기업인 HDC현산이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면서 반대 논리가 약해졌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기업들이 기존에 주장했던 부분들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사실 이번 사고가 일어나면서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게됐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로 책임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줄줄이 처벌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 권한을 위임한 만큼 현장소장과 안전담당 임원 등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중대재해법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만큼 정 회장과 권 대표는 형사책임을 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 회장과 권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 회장은 “사고 희생자와 유족, 부상자, 시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0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 현장에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이 김부겸 국무총리와 대화를 나눈 뒤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1.6.10/연합뉴스

 

업계에서는 건설사업장에서 안전을 위협할만한 요인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전반적인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4월까지 건설업과 제조업의 중소 사업장 2만4026곳을 점검한 결과 1만1888곳(49.5%)의 사업장이 사망사고 위험 요인을 지적받았다. 건설·제조업 사업장 2곳 가운데 1곳에서 위험요인이 발생한 셈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서 전체적인 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이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대응방향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업에서도 안전관리사를 고용해 사고현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협력업체와 진행하는 사업의 경우 안전관리가 누락되거나 등한시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온정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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