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를 앞둔 주식을 사는 사람들

 

상장 폐지되는 주식을 사는 투자자들이 있다? 왜?

 

상장폐지 그리고 정리매매

 

[편집자주] 실록(實錄)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입니다. 하지만 '사실에 공상을 섞어서 그럴듯하게 꾸민 이야기나 소설'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택기자의 투자썰록'은 '사실과 공상(썰)을 적절히 섞은' 꽤 유익한 주식투자 이야기입니다. 매일매일 주식시장을 취재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에는 영 소질이 없는 주식 담당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이 기사가 투자자분들의 성공적인 투자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동학개미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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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폐지 전 정리매매를 진행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당장 상폐를 앞둔 주식을 사는 사람이 있나요?"

 

주식투자자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는 바로 '상장폐지'입니다. 증시에 상장된 주식이 매매대상으로서 자격을 상실해 상장이 취소되는 것을 상장폐지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보유한 주식을 더 이상 주식시장에서 사고팔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만약 내가 보유한 주식이 상장폐지된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아주 아찔합니다.

 

어쨌든 상장폐지가 결정된 종목은 투자자에게 마지막으로 매매기회를 주기 위해 일정 기간 정리매매를 진행한 후 증시에서 퇴출됩니다. 그런데 정리매매 또한 매매이므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여기서 "상장폐지가 확정된 주식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나?"라는 의문을 가지신다면 여러분들은 주식시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답은 "있다"이죠.

 

정리매매란 무엇인가요

먼저 정리매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리매매는 상장폐지가 결정된 기업을 대상으로 7거래일간 주식 거래를 진행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정리매매를 두는 이유는 상장폐지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들에게 환금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식이 상장폐지돼 비상장주식으로 바뀔 경우 사고파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손해를 보고서라도 팔고 나오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리매매에 돌입한 기업의 주가는 급락하게 마련입니다. 특히 정리매매가 끝나갈수록 주식 가격은 100원 단위, 혹은 10원 단위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리매매가 시작되면 하루라도 빨리 보유 주식을 파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궁금증은 여기서 생겨납니다. 상장폐지가 확정된 주식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곧 상장폐지되는 주식을 누가 사기에 매매거래가 이뤄지는 걸까요. 주식시장에서 매매가 체결되기 위해서는 매수 주문과 매도 주문이 만나야 하는 건데 참 이상합니다.

 

매도 주문은 당연히 기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이 내는 걸 겁니다. 주식을 하루빨리 청산해 조금이라도 투자금을 회수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매수 주문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증시 퇴출을 앞둔 종목을 누가 사들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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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매매 하이에나…단타로 고수익 노리는 '정매꾼'

곧 상장폐지될 주식을 살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때론 일반 주식 못지않게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고 주가가 크게 움직이는 때가 바로 정리매매 기간입니다. 놀라운 것은 정리매매 기간 주가가 오히려 급등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정리매매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주식은 하루 가격제한폭이 30%로 제한돼 있지만 정리매매는 가격제한폭이 없습니다. 주가가 위든 아래든 무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30분 단위로 체결되는 단일가매매방식이 적용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주가가 크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과 단일가 방식으로 거래된다는 점을 악용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죠. 주식을 매입한 뒤 임의로 주가를 부양하는 사람들입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들을 '정리매매꾼(정매꾼)'이라고 부릅니다.

 

정매꾼들의 투자 방식은 이렇습니다. 주식투자 게시판 등에 정리매매를 앞둔 기업에 대해 호재성 소문을 퍼뜨립니다. 상장폐지 이후 회사 청산가치가 높다거나 재상장 가능성이 있다는 식이죠. 물론 이런 소문은 대부분 거짓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정리매매가 개시되면 정매꾼들은 매수 호가를 높여 시장에 주가가 오를 것이란 신호를 줍니다. 30분마다 한 번씩 거래가 체결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은 시세 변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호가창만 보고 주가를 짐작할 수밖에 없죠

 

높은 가격에 호가가 몰리면 주가도 실제 급등합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추격매매에 나서죠. 정매꾼은 이때 바로 팔고 빠집니다. 본인들은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넘기는 방식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주가는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칩니다.

 

실제 최근 정리매매를 진행한 A사는 첫날 85%, 둘째날 40% 넘게 급락했지만 셋째날에는 70% 넘게 폭등하며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2013년 상장폐지된 B사는 정리매매 시 주가가 얼마나 큰 폭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B사는 정리매매 첫날 주가가 811만9900% 폭등한 바 있습니다. 상장폐지 전 유상감자를 거치면서 1원으로 떨어진 주가가 하루 만에 8만원대까지 치솟은 것이죠. 당시 시장에선 회사의 주당 가치가 수십만 원대에 달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이들 기업에 정매꾼이 개입했다고 확정해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일시적 가격 급변동에 따른 시세차익을 기대한 투기성 자금이 몰린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재상장 기대감에 매수세 이어지기도…"가능성 낮아"

또 다른 이유로는 '회생 기대감'이 있습니다. 당장은 상장폐지되지만 기업이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여기는 투자자들이 정리매매 중 매수에 나서는 것이죠.

 

실제 상장폐지가 된다고 해서 기업이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 존속해 영업이 정상화된다거나, 우량기업과의 인수·합병(M&A)할 경우 증시에 재상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일부 투자자들의 경우 정리매매 기간 주식을 매입해 차익을 노린 투자에 나서기도 합니다. 재상장 시 보유하고 있는 지분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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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런 투자법에 대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전례를 보면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신중하게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실제 우리나라 증시 역사상 상장폐지 이후 재상장에 성공한 기업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고 그 기간도 무척 깁니다.

 

2005년 경영악화로 상장폐지를 겪은 C사는 재상장하는 데 14년이나 걸렸습니다. 현대리바트, 하이트진로도 각각 6년, 7년이란 시간을 감내해야 했고, 만도도 재상장하는 데 10년이 소요됐습니다. 비상장주식을 들고 있는 주주들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기약없는 기다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주식시장 전문가는 "상장폐지 이후 재상장에 성공한 기업이 있긴 하지만 그 사례가 매우 드물다"면서 "재상장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애초 상장폐지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누군가 판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사야 합니다. 산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주식을 넘겨야 하죠. 그러나 정리매매에 주어진 거래기간은 단 7영업일, 이 기간이 지나면 주식은 자칫 휴지 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매매를 흔히 '폭탄 돌리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폭탄을 떠안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애초 정리매매 종목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김경택 매경닷컴 기자 kissmaycr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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