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우울한 단상 [추천시글]



팬데믹 시대의 우울한 단상
2021.06.09

누구나 미래는 궁금합니다. 소설이나 영화의 미래는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만화방창하는 유토피아보다는 그 반대(디스토피아)가 더 흔한 것 같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용감한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릅니다. 다수의 공상 과학(SF) 영화가 보여주는 미래도 살고 싶지 않은 세상입니다. 핵전쟁, 바이러스 등으로 현재의 인류 문명이 사라지고, 생존자 후대 사람들은 기괴한 모양으로 존재하는 디스토피아가 흔합니다. 영화 ‘혹성 탈출’, ‘블레이드 러너’, ‘제5원소’, ‘인터스텔라’ 등이 떠오릅니다.

상업적 성공을 노려 충격적 내용에 집중한 탓만은 아닌 듯합니다.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더딘 사회상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10대 환경 운동가 툰베리가 어린 세대가 물려받을 세상을 망치고 있다며 기성세대를 육두문자로 비판한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2년째로 접어든 코로나 위기는 SF영화가 보여주는 미래상이 악몽이 아닐 개연성을 높였지요.

 


사람이 적은 농촌지역에 사는 덕에 필자는 마스크 없이 지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황사 철에는 마스크를 자주 썼습니다. 하지만 지하철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껌뻑이며 앉아 있는 요즘 모습을 볼 때 SF영화 장면이 연상됩니다. 지난주 위안을 얻으러 갔던 음악회에서 비슷한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음악회(J.S.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 보았던 단체(서울모테트합창단)의 가브리엘 포레 레퀴엠 공연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연주회에 가지 못한 것을 보상이나 하듯 월요일에는 바이올린 독주회, 금요일에는 포레의 성악곡 공연을 연이어 관람했습니다. 공연 시작과 함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이어 허리를 묶은 정갈한 흰색 드레스와 연미복 차림의 합창단이 줄줄이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합창단 전원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공연 시작 후 점차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마치 부조리극, 또는 SF영화의 한 장면 같아 숨이 턱 막히는 듯했습니다.

월요일에는 바이올린 독주자만 무대에 서는 공연이라 마스크를 쓰지 않았습니다. 아름답지만 때로는 슬픈 곡들을 들으며 현장에서 듣는 바이올린 소리의 깊이와 풍부함, 그리고 섬세한 울림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자주 듣는 음악이어서 차이를 새삼 느꼈습니다. 포레의 레퀴엠 공연에서 독창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지요. 마스크에도 불구하고 합창단이 들려주는 포레의 레퀴엠은 성악만이 줄 수 있는 부드러움으로 위안을 주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우울한 미래상 이미지의 판도라 상자가 열린 형국입니다. 2017년 개봉되었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특별히 암울합니다. 황폐한 미래는 인간과 다름없이 만들어진 인조인간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다른 인조인간을 찾아 죽이고, 인공지능 홀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세상입니다. 필자가 좋아하는 1982년 원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핵전쟁 이후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SF소설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아카데미 촬영상과 시각효과상을 받았던 속편의 영상은 충격적입니다.

미래의 캘리포니아는 거대한 태양광 발전소, 합성식량을 만드는 그린하우스, 폐허가 된 도시, 먼지 날리는 마른 땅의 황폐한 세상입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초록색 산천이 익숙한 캘리포니아의 황폐한 모습을 보며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핵폭발로 식물이 사라져 오래전 죽은 나무는 사라진 식물의 기념비처럼 보입니다(그림 상).

(그림,상) 블레이드 러너 2049, 황폐한 미래 풍경과 고사목. (그림,하) 안진의 ‘꽃의 시간’, 2021 (자료화면 캡처).


뇌리에 이런 이미지가 명멸하던 지난달 찾은 대규모 전시회(안진의 교수, ‘꽃의 시간’)에서 해독제와도 같은 이미지들을 보았습니다. 특히 파란 톤의 대작은 생명력이 가득했습니다(그림 하). 그 외에도 추상화된 형형색색의 꽃과 초목들, 바다와 태양을 상징하는 그림, 발화를 멈추지 않는 각종 꽃들은 생명, 희망과 같은 밝은 에너지를 내뿜었습니다. 큰 전시실을 꽉 채운 작품들이 잠시나마 바이러스에 쫓기는 바깥세상을 잊게 해주는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습니다.

자연 생태계 파괴로 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 옮겨 퍼지는 일이 이어지고 있으니 언젠가 우리가 아는 문명이 끝날지 모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예술품들이라도 남아 후대 인류가 디스토피아에 살던 선조들이 어떤 유토피아를 갈망했는지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1977년 미국에서 발사된 우주탐사선 보이저 1, 2호는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 먼 우주공간을 날고 있습니다. 미지의 외계 존재들에게 인류를 소개하는 정보를 담은 황금 레코드판이 실려 있는데, 천체 과학자 칼 세이건이 주관해 무엇을 수록할지 정했다고 합니다. 자연과학의 수준을 보여주는 내용과 더불어 바흐의 음악, 여러 동식물 및 풍경 사진과 소리 등 자연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연이 계속 손상되면 지구는 언젠가 푸른색을 잃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별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전에 이 아름다운 푸른 별에서 인류가 먼저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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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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