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인 듯 욕 아닌 ‘지랄’ [추천시글]

 

 

욕인 듯 욕 아닌 ‘지랄’

2021.06.03

 

“지랄.”

욕인가요? 예사말인가요?

충청도가 고향이고 강원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에게는 예사말입니다. 나이 쉰이 넘은 지금도 충청도 친구들과 만나면 “뭔 지랄이여~ 지랄 마~”가 대화 도중 여기저기에서 막 들립니다, 강원도 친구들과 만나도 누군가의 실없는 말끝엔 합창이라도 하듯 “지랄한다, 지랄해~” 하며 깔깔댑니다. 강원도와 충청도에선 ‘지랄’이 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라도 출신의 모 기업 홍보담당자는 “지랄”을 입에 달고 삽니다. 기분 좋은 말에도, 속 불편한 대화에도, 민망한 상황에서도 “지랄을 까세요”라고 받아넘깁니다. 물론 억양과 표정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지랄이 욕이냐는 내 질문에 그는 말합니다. “‘지랄’이 뭔 욕이당가? 지랄을 빼면 대화 자체가 안 되는디.”

 

 

경남 진주가 고향인 지인은 ‘지랄’에 옆구리를 붙여 꼭 ‘지랄옆구리’라고 말합니다. 몇 달 전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몇몇이 모였는데, 음식이 기대에 못 미쳤는지, “맛이 지랄옆구리 같네”라고 하더군요. 그날 이후 그가 낀 자리에선 누구나 지랄을 말할 땐 옆구리를 붙이는 게 ‘상식’입니다. 때론 옆구리가 생각나지 않아 ‘지랄옆차기’, ‘지랄갈비뼈’, ‘지랄등짝’ 등 전혀 다른 부위를 갖다 붙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는 자칭 ‘지랄 전문가’답게 대화 중 지랄을 잘 활용합니다. “하던 지랄도 멍석 펴 놓으면 안 한다” “지랄 발광 네굽질” 같은 속담은 목소리에 힘을 잔뜩 넣고 말합니다. 지랄 발광 네굽질은 미친 듯이 야단 떠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속담에 등장할 정도로 지랄은 오랜 세월 우리 삶과 함께해 왔습니다. “지랄도 하면 는다” “지랄도 풍년이라” 역시 그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지랄은 우스개에도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게 혈액형으로 평가한 성격 유형입니다. A형은 '소세지'(소심·세심·지랄), B형은 '오이지'(오만·이기적·지랄), O형은 '단무지'(단순·무식·지랄), AB형은 '지지지'(지랄·지랄·지랄)로 분류됩니다.

 

지랄은 모든 혈액형에 들어가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지랄’을 품고 있다는, 재미있는 분석입니다. 공감이 간다고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요? 그저 우스개이니 한번 웃고 넘어가면 좋을 듯합니다. 고백하자면 내 경우엔 너무나도 정확한 결과라 움찔했습니다.

 

참 알 수 없는 것이 말입니다. ‘지랄’이 서울에선 어마무시한(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욕입니다. 간질(癇疾) 혹은 정신질환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지랄 염병하네” “지랄 발광하네”는 욕 중에서도 최상급입니다. 몹쓸 병이라고 생각하는 지랄에다 염병(장티푸스)까지 겹친 게 ‘지랄 염병’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어쩌자고 서울 사람 앞에서까지 ‘지랄’이 툭툭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랄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간질을 속되게 이르는 말”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시간이 흐르면서 지랄의 의미가 바뀐 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전엔 간질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분별없이 하는 행동’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으니까요.

 

 

'지랄용천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꼴사납게 소란을 떨거나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천(湧泉)은 발바닥의 움푹 들어간 곳입니다. 이 부위는 엄청나게 예민해 침을 놓으면 죽은 이도 천장까지 튀어 오른다고 합니다. 지랄용천하는 모습, 상상이 되나요? 선조들의 해학과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손에 꼽히는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계는 물론 군대, 심지어 IT·게임업계에도 지랄용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잘못된 행동에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책을 출간하고, 성추행에 사내 갑질까지. 이 지랄 같은 세상을 깰 정의는 어디에 있나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 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 담당 연구원, 이투데이 교열팀장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