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수 수목 터널 길’을 걸으며... [추천시글]

 

 

‘헌수 수목 터널 길’을 걸으며...

2021.05.28

 

코로나19 사태로 ‘집콕’하는 시간이 늘며 답답해지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지난 1월 1일부터 주 5일 이상 하루에 50분 이상 걷는 것을 목표로 정해 실행해오던 ‘550 걷기’를 매일 만보 이상 걷는 ‘만보 걷기’로 변경해 거의 매일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산책을 하다보면 머릿속에 답답하게 들어차 있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일부 정리가 될 뿐만 아니라 즐거운 추억들도 만들어집니다.

 

만보 걷기의 주 산책길은 집을 나서 15분 정도 걸으면 마주하는 양재천변길입니다. 천변 길을 걸을 때 산책길과 자전거 통행로가 함께 있는 천변 갓길을 따라 걷다가 천변 옆 둔덕에 상단 길과 하단 길로 조성되어 있는 산책길을 걷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며 상단 길과 하단 길이 일방통행으로 통제되고 있어 좀 불편하기도 하지만 산책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생태하천’으로 표기된 상단 산책로에는 강남구에서 ‘범구민 헌수운동’으로 심은 기념식수로 조성된 ‘양재천 헌수 수목 터널 길’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아침 만보 걷기를 하며 평소 산책 위주로만 걷던 터널 길의 유래에 대한 관심으로 자세히 살펴보며 걸은 터널 길의 환경을 일상 이야기로 정리해봅니다.

 

양재천과 탄천의 연계 지점에 위치한 탄천2교에서 시작되는 터널 길을 걷기 시작해 350m 정도에 이르면 길가에 터널 길의 유래를 적은 안내 표지판과 함께 ‘봄’이라는 시가 담긴 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내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길은 양재천을 사랑하는 우리 구민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손수 나무를 심어 이룬 헌수 수목 터널 길입니다.

봄에는 왕벚나무와 가을에는 단풍든 느티나무가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고 속삭여오는 사랑의 말을 들으며 걸어보세요.

 

우리의 사랑만큼 저들도 사랑을 보내오는 게 보이지 않나요?

우리가 심은 우리의 나무들, 향기로 색깔로 말을 걸어오는 나무들과 온정 깊은 우리의 사랑도 나무처럼 가꾸어보면 좋겠습니다.”

 

 

​2013년 3월 ~ 2014년 4월 조성된 터널 길에는 왕벚나무, 느티나무, 복자기 등 7종의 헌수 수목 1,013그루가 심겨져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왕벚나무가 가장 많이 눈에 띕니다.

 

기념식수에 걸린 표찰들에는 ■ 나무 이름 : 왕벚나무, ■ 심은 사람 : 유OO, 김OO, ■ 심은 날짜 : 2013년 11월 14일 등과 함께 아래쪽에는 헌수한 사람이나 기관 또는 단체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헌수 수목의 표찰에 담긴 ‘푸르게, 맑게, 곱게’, ‘산책하는 모든 삶의 건강과 행복을’,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그날을 꿈꾸며’, ‘우리의 소원은 환경보호’, ‘결혼 1주년 기념식수’ 등의 다양한 메시지를 보며 걸으면 기부문화 실현이 마음에 와 닿으며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수목 터널 길을 걷다보면 ‘사색의 쉼터’라는 입간판에 ‘양재천의 쉼표’로 게재되어 있는 시(詩)도 눈에 들어옵니다. 시는 문학에서 가장 수준 높은 장르로 우리 마음에 만족감을 주며, 삶의 지혜를 일깨워줍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을 핑계로 시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산책 중 자주 읽고 있는 ‘산책 길’이란 시 한 편을 적어봅니다.

 

 

​산책 길

매미소리 자지러지고 / 개천의 갈대 잎이 사그락 거리는 날 /

물오른 갯버들 잎 사이 / 은피라미 떼로 반짝이는 희망 하나가 보인다.

물 위에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 / 파문을 일으키다 떠내려간다. /

저 이파리처럼 이곳에 내가 없어도 / 사람들은 오가며 풀잎 소리를 내겠지.

나도 너도 / 잔잔히 흘러갈 냇물 / 아직은 버릴 수 있는 의미가 있기에 /

하루해가 저무는 것을 모르고 산다. <시인 구양근>

 

탄천2교를 출발해 대치교에 이르면 산책 길 벽면에 ‘걷기 운동의 효과’로 ‘수명연장’과 ‘치매 예방’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미국국립암연구소 자료로 제시한 걷기의 수명연장 효과로는 일주일에 75분 이상 걸으면 수명이 1.8년 연장되고, 2시간 반 ~ 5시간 걸으면 3.4년 그리고 5시간 이상 걸으면 7.2년이 연장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걷기의 치매 예방 효과로는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보고로 걷지 않을 때는 치매율이 44% 이상 나타나지만, 일주일에 10Km 이상 걸으면 기억력·사고력 등의 고등행동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16% 증가해 치매율이 25%로 낮아진다는 내용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뇌를 자극해 건망증을 극복해주며 의욕도 북돋아주는 하루하루 걷기는 늘 우리 곁에 상존하는 ‘위기‘와 '기회’ 사이에서 자신을 바르게 가다듬는 ‘기회’를 찾게 해줍니다.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며 산책길에서 본 기부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헌수 수목 터널 길’의 풍광과 함께 마음을 평온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 시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려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오늘이란 충실한 하루에 있다고 합니다. ‘수목 터널 길’ 산책의 즐거운 추억들을 떠올리며 일상에서 좋은 일들을 만들어가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지내보고자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집콕’하는 시간에 산책 중 가다듬어본 그동안 지내온 일들과 함께 코로나19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삶의 선택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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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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