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꽃 탐방길에서 만난 금새우난초 [추천시글]

 

코로나19와 꽃 탐방길에서 만난 금새우난초.

2021.05.24

 

금새우난초 (난초과) 학명 Calanthe sieboldii Decne. ex Regel

코로나19의 시국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끔 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게 미세한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증 확산으로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변화와 영향을 보면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합니다. 정치, 경제, 교육, 종교, 문화 등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지구의 생물사에서 가장 막내에 불과한 인간이 마치 지구의 주인이고 으뜸인 양 행세해 오더니만 인제 보니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종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 또한 별난 세계가 아니라 자연 속에 하나의 인간생태계일 뿐이며 수많은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상호 보완과 의존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 배웁니다. 인간은 단지 지구생태계 구성 요소의 한 종에 불과하지 지구의 주인이 아님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지난 일 년여 세월은 무엇인가 나의 뜻이 아닌 다른 이유로 평소에 오가던 곳을 오고 갈 수 없는, 참으로 불편한 시간이었습니다. 세계적, 국가적, 사회적 영향과 같은 거시적 변화는 차치하고 우선 개인 일상의 변화도 어마무시합니다. 코로나19 범유행에 따른 격리 및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사회적 및 대면 활동의 제한으로 실업과 수입 감소, 사회적 고립 등 불안과 염려 속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했었던 것인가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인간사 세상은 엄청난 격변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지만, 그래도 자연은 예전 그대로 변함없이 철 따라 돌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곳곳에 신록이 우거지고 꽃들이 좍좍 피어나는 이 좋은 계절에 눈에 삼삼거리는 꽃들을 외면하고 집에만 있자니 너무 아쉬워 모처럼 꽃 친구 넷이서 제주 꽃 탐방길에 나섰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첫날부터 이틀간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사흘 동안 날이 좋더니만 다시 비가 와서 꽃 탐방 일주일을 아쉽게 마무리해야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계절에 맞게 피어나는 제주도의 곱고 귀한 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이번에 만나 본 많은 야생화 중에서 금새우난초 군락지를 만난 것이 무엇보다 기억에 남습니다. 우의를 입고 벗고, 우산을 펴고 접기를 반복하며 어두운 곶자왈 숲길에서 군데군데 한두 개체의 금새우난초를 만났을 때, 마치 빗속의 어두운 숲길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하여 불을 밝힌 등불처럼 여겨져 힘이 솟고,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날 꽃 탐방길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금새우난초 대군락을 만나 그 속에 푹 잠길 수 있었습니다. 그 기쁨의 감동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어두운 숲속에서 불을 켠 듯 다가서는 황금 불빛의 고운 꽃, 금새우난초

금새우난초는 주로 계곡 근처나 습기가 많은 상록수림 아래서 드물게 자생하는 야생란으로서 꽃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매우 아름다운 꽃입니다. 상록성 여러해살이풀로서 국내에서는 제주도, 울릉도, 안면도, 전남 지방 등 주로 바닷가에 분포하며, 대만과 일본에도 분포합니다.

 

잎은 아래쪽에서 2~3장이 나오며 주름살이 많고 넓은 타원형입니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차가운 눈과 바람에 버티다가 다음해 봄이 되면 묵은 잎은 새잎에 자리를 양보하고 사라집니다. 바통을 이어받은 새잎은 자라면서 동시에 꽃대를 올려 아름답고 밝은 황금빛 꽃을 피웁니다. 꽃이 진 후에도 잎은 더욱더 자라서 열매와 뿌리에 양분을 공급하며 겨울을 이겨내 이듬해 다음 세대에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지기를 되풀이합니다.

 

뿌리줄기에는 새우 등처럼 생긴 마디가 있고 꽃이 밝은 황금색이어서 금새우난초라 부릅니다. 비슷한 종으로는 새우난초, 섬새우난초, 신안새우난초, 여름새우난초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꽃 색깔에 따라 종을 세분하다 보니 앞으로도 더 많은 종이 생겨날 수도 있는 종입니다.

 

새우난초는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근육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어 편도선염, 타박상, 뭉친 것을 치료하는 데 이용하며 강장제로도 이용한다고 합니다. 꽃이 크고 아름다우며 관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재배가 쉬워 무분별한 남획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종의 하나입니다.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어두운 곶자왈 숲길에서 한두 개체씩 만날 때에는 어두운 길의 등불처럼 반갑고 주변이 환하게 밝은 듯했습니다. 다음날 무더기 군락을 만난 곳은 곶자왈이 아닌 해발 500m의 오름이었습니다. 한두 개의 새우난초를 보며 헉헉거리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별로 볼거리가 없어 약간은 실망한 채로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갑자기 한쪽 숲이 환히 밝아진 듯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숲 그늘에 금새우난초가 무더기로 피어 있었습니다. 약간은 힘들고 지루했지만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맛에 무거운 카메라와 배낭을 메고서 높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가 싶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비가 내리는 중이라서 꽃이 활짝 핀 환한 미소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채 있는 모습만을 볼 수밖에 없는 점이었습니다. 하기야 비가 오는 동안에는 벌·나비 손님도 오지 않는데 활짝 펴서 비를 맞게 하여 꽃을 상하게 하거나 꽃술을 빗물에 젖게 할 이유가 없지요. 손님도 없는데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놓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곱고 아름다운 황금빛 금새우난초 군락, 코로나19의 암울한 나날을 벗어나 모처럼 용기를 내서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사람 사는 세상살이가 격변하는데도 철 따라 순리대로 돌아가는 자연의 세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새잎에 꽃 피울 영광을 물려주고 사라지는 금새우난초의 후대 사랑, 찾아올 벌·나비를 위해 꽃술이 빗물에 젖지 않도록 하는 고객에 대한 배려가 있어 보입니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변함없이 피고 지고, 할 일을 다 하고서는 스스럼없이 물러서며, 고객을 위한 자상한 서비스 정신까지 갖춘 식물 세계가 보였습니다. 이러한 식물 세계를 보며 세상에서 제일이라 뽐내는 인간의 무력함과 질서도, 상식도, 상대편에 대한 배려도 없이 내 편 한쪽만을 생각하는 정치 세계의 기고만장한 잘못된 풍토, 나아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대하여 감사에 앞서 불평과 불만으로만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잘못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2021. 5월 코로나19에 떠난 꽃 탐방길에서 금새우난초를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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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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