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의 이름 [추천시글]

 

 

만년필의 이름

2021.05.11

 

초창기 만년필의 이름은 숫자였습니다. 예를 들면 최초의 실용적인 만년필이면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워터맨의 초반 모델들은 1, 2, 3, 4, 5, 6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잘 팔리기 시작하자 기본형은 2, 3, 4, 5, 6으로 뚜껑이 살짝 커진 cone cap은 앞에 1이 붙어 12, 13, 14, 15, 16,  뾰족한 뚜껑인 Taper cap은 22, 23, 24, 25, 26이 되었습니다. 당시 경쟁사였던 파커나 Writ 역시 의미가 다를 뿐 숫자를 붙인 이름은  별로 다르지 않아 파커 몇 호, 워트의 몇 호가 그 만년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새로운 세기인 1900년대에도, 10년 더 흐른 1910년대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920년에 셰퍼는 바닥에 떨어져도 구부러지지 않을 만큼 두꺼운 펜촉을 장착한 새로운 모델인 라이프 타임(Life time)을 발표했는데, 이 만년필은 만년필 세상을 뒤흔들 만큼 성공했습니다.

 

 

사실 번호가 아닌 이름을 달고 등장했던 만년필은 몇 번 있었습니다. 파커의 럭키 커브(Lucky Curve)와 조인트리스(Jointless), 마비 토드의 스완(Swan), 월의 템포인트(TEMPOINT)  등이  있었지만, 이런 것들은 워터맨의 숫자 모델에 모두 묻혔습니다.

 

​하지만 셰퍼 라이프 타임은 달랐습니다. 이제껏 이만큼 강력한 이름의 만년필은 없었습니다. 판이 흔들렸고 파커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1921년에 라이프타임과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듀오폴드(Duofold)를 내놓습니다. 사전에도 없는 이 이름의 유래는 꽤 수수께끼입니다. 당시 유행하던 속옷의 이름에서 왔다는 설, 또 듀오는 슈퍼(super)를 뜻하고, 폴드는 먹지를 대고 복사를 할 수 있는 매니폴드(manifold) 펜촉을 의미해  이것을 합쳐  슈퍼매니폴드라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컬러를 가진 매니폴드라는 설이 맞다고 봅니다.  어찌 됐든 이 이름들은 1920년대 만년필 세계를 강력하게 이끌었고, 58 같은 숫자로 된 이름은 촌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셀프 필러로 한 시대를 풍미한 콘클린의 인듀라(ENDURA) 등은 이런 유행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공황이 터진 1929년 워터맨은 58의 후속으로 귀족이라는 의미의 퍼트리션(Patrician)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유행의 막차를 탔습니다. 좀 더 일찍 플라스틱 재질의 유행이 시작될 때 출시되었다면 퍼트리션은 아주 크게 성공했을 겁니다. 워터맨은 1927년 하드러버 만년필 넘버 세븐(Number Seven)을 내놓지 말고 플라스틱 퍼트리션을 내놓았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플라스틱 넘버 세븐을 내놓든가요. 불경기 였지만 1930년대에도 신제품은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1931년에 콘클린은 새로운 필러인 노잭(NOZAC)을, 에버샵은 12각형 몸통의 도릭(DORIC)을 출시했지만, 사람들의 선택은 화살 클립을 가진 1933년에 나온 이상한 이름의 파커의 버큐매틱(VACUMATIC)이었습니다.

 

위기를 느낀 워터맨은 1939년, 위아래가 뾰족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헌드레드 이어(Hundred year)를 내놓습니다. 새로운 재질인 루사이트로 만든 이 제품은 문자 그대로  보증기간이  무려 100년입니다.

 

하지만 이 만년필 역시 성공하지 못합니다. 2년 뒤인 1941년 등장한 파커51에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유행이 돌고 돌아서 다시 숫자가 대세가 된 것일까요? 51이란 이름은 당시 파커의 사장이었던 케네스 파커가 집무실에서 창밖으로  파커공장을 지나는 고속도로 표지판을 보게 되었는데, U.S 51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광고 회사에 51이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광고회사로부터 시대를 앞선 만년필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왼쪽 워터맨 헌드레드 이어 포레스트 그린 (1939~1940년 first year),  오른쪽 워터맨 58(1920년대)>  

 

 

 그리고 뉴욕 출장 중 식사한 식당의 주소가 51번가 서부 51번지. 이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밖에 만년필의 개발이 회사 설립 51주년인 1939년에 끝났고, 명사  대신 숫자를 넣어 파커에 주목하게 하고, 어느 언어로든 쉽게 번역되길 원했습니다.

 

​결국 뭘까요? 품질입니다. 소비자는 현명하여 아무리 이름을 잘 지어도 품질이 떨어지면 선택하지 않습니다. 1920년대까지 워터맨의 숫자 만년필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좋은 품질 덕분이었습니다. 1920년대 셰퍼의 라이프 타임과 파커 듀오폴드, 파커51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이나 만년필이나 이름이 세상에  남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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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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