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명언 패러디 -하늘에는 별, 내 마음엔 도덕률 [추천시글]

 

칸트 명언 패러디 -하늘에는 별, 내 마음엔 도덕률

2021.04.13

 

지난 3월 16일자 칼럼 ‘패러디는 나의 힘’에서 필자가 직접 만든 패러디를 소개한다고 약속했었죠. 이번 글에서는 독일 관념철학의 백두대간이자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통합한 퓨전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명언을 다룹니다.

 

‘하늘에는 별, 내 마음엔 도덕률’이라는 멋들어진 어구를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이었습니다. 철학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Die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에서 따온 말로 묘비명에도 쓰였다는 그 말이 그럴듯해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지요. 별이야 본디 있기 마련이니 신경 쓸 것 없고, 사람의 마음속에야 당연히 양심, 뭐 그딴 거가 있지 않겠나 정도로 이해하며 그러려니 했답니다.

 

 

대학에 들어와 독일어 원문을 접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표기가 ‘하늘에는 별’이 아니라 ‘별이 빛나는 하늘’로 되어 있지 않겠어요. 원문을 옮기면 ‘(놀라움과 경외로 마음을 사로잡고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으니) 내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 내 마음속엔 도덕률(Der bestrinte Himmel ueber mir und das moralische Prinzip in mir)’입니다. ‘내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 일본 서적을 중역(重譯)하는 과정에서 ‘하늘에는 별’로 바뀐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어요. 하지만 ‘별’과 ‘하늘’은 뉘앙스가 사뭇 다릅니다.

 

이 잠언은 '하늘에는 별'이 아니라 '별이 빛나는 하늘’로 직역했을 경우 훨씬 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의미를 획득합니다. ‘별이 빛나는 하늘’은 자연과학(경험)에 대한, ‘마음속의 도덕률’은 윤리학(이성)에 대한 환유이니, 도덕률인 양심은 곧 ‘내 마음속 우주’에 다름 아니어서요. 그렇다 해도 ‘하늘에는 별’이라는 정겹고 살가운 표현이 마냥 잘못된 번역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별’이야 원래부터 시적 상징물이어서 영감을 주는 터에 미학적 관점에서 간결함이 돋보여 점수를 줄 만합니다. ‘하늘에는 별’이든, ‘별이 빛나는 하늘’이든 간에 대구(對句)로 이루어진 아포리즘이어서 ‘하이쿠(俳句)’나 ‘한시(漢詩)’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또 외우기도 쉽고 처한 입장과 관점에 따라 여러 형태로 패러디하기도 편합니다. 이를테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교인

“유리창엔 비, 내 마음엔 강물”- 가수

“농촌엔 허수아비, 도시엔 좀비인간”- NZ세대

“거리에는 여자, 거실에는 아내”- 아파트 거주자

시성 두보(杜甫)도 점잖게 끼어듭니다.

“걷어 올린 발에는 석양, 냇가에는 가득한 봄기운”

 

​이쯤해서 칸트의 말을 한마디로 간추려 봅니다.

‘별아 내 가슴에!’

 

같은 제목의 오래된 우리 영화(1958)가 있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주증녀, 김동원, 김지미, 이민 등 왕년의 명 배우들이 나오는, ‘눈물 없이는 차마 볼 수 없는’ 로맨스 멜로물 말이에요. 근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칸트 어록에 웬 우리 신파 영화가 나오냐고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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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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