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시글] "사람이 먼저다. 쿠팡"
사람이 먼저다. 쿠팡
2021.03.31
위메프, 티켓몬스터, 쿠팡 같은 소셜커머스들이 등장했던 초기, 그러니까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구입한 상품에 문제가 있어서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필자의 기억에 전화는 하루 종일 먹통이었고, 온라인으로만 접수를 했는데,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환불 및 교환이 많이 편리해졌지만, 당시는 전화로 상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때라, 온라인으로 반품 요구를 하는 과정이 생소해서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환불하고 빨리 같은 물건을 사야 하는데 환불을 해 줄지, 교환만 된다고 할지 알 길이 없어서 시간만 낭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홈쇼핑이나 대형 마트의 신속한 고객 응대에 익숙했던 제겐, 당시 소셜커머스 업체의 느려터진 대응에 매우 답답했습니다. 동기 기자와 밥을 먹다가 소셜커머스의 소비자 응대에 대해 얘기했더니, “그쪽은 대언론 창구가 없어, 보통 다른 기업들은 홍보팀에서 언론과 소통하는데 소셜커머스 업체는 아예 소통이 안 돼.”라고 얘기를 하면서 손사래를 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불통이던 이들 업체가 한국 시장에 조금은 적응을 했는지 이제는 소비자 센터에 전화를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받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 주는 법이라 매뉴얼대로 답답하게 대응을 하는 건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제 아이디로 딸아이가 쿠팡에서 향초를 샀는데, 배송 기사의 잘못인지 업체의 포장에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향초를 담은 유리병이 왕창 깨져서 왔습니다. 그걸 모르고 아내가 박스에서 향초를 꺼내다 손을 심하게 베었습니다. 어렵게 상담원과 통화를 했는데 주문자와 수취인이 제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본인에게 확인을 해야 한다며, 다친 아내와 실랑이를 하며 이 사람 저 사람과 통화를 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오전에 다쳤는데 저녁에 제가 퇴근하고 나서야 본사의 최종 책임자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 최종 책임자라는 사람은 아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네 번째 직원이었습니다.
본사 책임자라는 사람은 아내의 설명을 듣고, “저희 회사의 매뉴얼에 따르면 상해를 입으신 분이 수취인으로 등록된 분이 아니어서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주문을 하신 분에게 위임을 받아야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라는 사무적인 얘기를 반복했습니다. 당신이 주문한 게 아닌데 왜 열어봐서 다치고 나서 항의를 하느냐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듯 했습니다. 딸아이가 쓰려고 제게 허락을 받고 제 계정으로 주문을 했고 로켓배송으로 도착한 택배를 아내가 열어본 것이 이상한 일인가요? 정확한 주소로 배송됐고, 아내가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모든 정황상 가족임이 확인됐음에도 본인 확인이 반드시 필요한 거라면, 다친 제 아내와 반나절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 한 번만 제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신용카드회사나 홈쇼핑, 국내 대형마트라면 절대로 이렇게 응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쿠팡의 내부 규정을 왜 소비자가 따라야 합니까?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전화를 바꾼 후 제가 쿠팡 본사의 최종 책임자라는 사람에게 질문을 했더니, “그래야 자기들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결국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이 소비자의 안전보다 우선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본인 확인이라는 것도 뭐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으면 안면 인식이라든지 동공 인식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고작,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 이메일 주소는? 결제는 무슨 카드로 했냐?만 물어봤습니다. 웃기는 것은 이 모든 걸 이미 아내가 다 말해줬다는 겁니다.
결국 아내는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책임자라는 젊은 직원도 개인적인 견해라면서, “이렇게 상해를 입은 경우, 첫 응대 시점부터 본인 확인 절차보다 일단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며 답답해 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답답한 일처리를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며칠 전 언론단체는 공동 회견에서, 자본금 30억 원으로 시작해 10여 년 만에 시가총액 72조원 회사로 미국 뉴욕증시에 진출한 아시아계 기업 중 최고 평가가치를 받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에 대해 ‘노동인권 보도’ 봉쇄소송을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습니다. 쿠팡의 빠른 배송의 이면에는 물류 및 배송 노동자들의 숨 돌릴 틈 없는 강도 높은 노동환경이 있었고, 쿠팡 노동자들은 이런 노동환경 속에 지난 1년 동안 7명이 사망했습니다. 또한 사업장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피해를 입은 노동자에 대해 사과는커녕 열악한 노동조건을 은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거대 기업의 노동문제에 대한 취재와 보도는 언론의 역할이자 의무인데 쿠팡은 이러한 보도를 한 언론사 및 기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지는 않지만 더러우니 피하게 됩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소송에 휘말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보통의 경우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이는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송이 난무하는 세상은 결국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돈 많은 사람과 기업에게 유리한 세상이 됩니다. 쿠팡의 거침없는 소송들은 언론의 공정한 비판을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어디 한번 해봐!”라는 식인 겁니다.
회사의 이익 창출을 위해 직원은 고강도 업무에 내몰리고, 물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납품대금은 몇 달이 지나도 주지 않고(다행히 이번에 60일 안에 납품대금을 지급하라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판매한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 대해서는 늦장 대응을 하고, 비판하는 언론은 소송으로 재갈을 물리는 기업. 참으로 골고루 악행을 저지르면서 엄청난 성장과 성과를 올린 이 기업이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크기에 맞는 사명감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꿈같은 일일까요? 갈수록 기업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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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BECA 석사
현재 SBS아나운서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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