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극단과 쌍출이 [한만수]

 

계몽극단과 쌍출이

2021.03.25

 

노인들을 대상으로 싸구려 물품을 고가로 속여 파는 ‘떳다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명 ‘떳다방’은 ‘경로잔치’라든지 ‘노인 의문공연’이라는 명분으로 노인들을 부릅니다.

 

노인들이 모이는 경로당이나, 공원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화장지 한 롤에 100원’, ‘떡 한 말에 1,000원씩’ 판매를 한다고 하거나, 유명 가수가 와서 공연한다는 거짓 소문을 냅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노인들에게 간단한 공연을 보여주고 환심을 산 뒤에 값비싼 녹즙기나, 건강에 필수라는 옥매트 등을 판매합니다.

 

예전 제가 살던 농촌에 ‘계몽극단’이라는 단체가 들어왔습니다. 계몽극단은 약을 파는 사회자와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즘 축제 때 흔히 볼 수 있는 엿장수들보다 전문화된 단체라 볼 수 있습니다.

 

 

계몽극단은 장터 마당에 무대를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는 가마니를 깔아 놓습니다. 앰프를 설치한 트럭을 몰고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홍도야 울지 마라'라는 연극을 무료 공연한다"는 홍보를 하고 다닙니다.

 

초가을이라서 맑은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게 떠 있습니다. 가마니 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무대의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입니다. 이윽고 막이 양쪽으로 열리고 한복을 입은 여자 주인공이 창가(唱歌)를 구성지게 부르며 등장합니다. 관객들은 하늘의 별들이 깜짝 놀라 떨어질 정도로 요란한 박수로 환영을 해 줍니다.

 

대사보다는 주로 창가로 진행을 하는 연극의 1막이 끝나면 양복을 입은 사회자가 나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합니다. 배우들의 창가에 홀려 앉아 있는 관객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전에 약을 팔기 시작합니다.

 

  “저희는 여름 동안 농사짓느라 고생하신 농촌 주민들에게 연극으로 봉사를 하는 단체올시다. 2막에는 드디어 김중배가 심순애를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2막을 보시기 전에 여기 오신 분들 모두 만수무강하시라고 특허 받은 약을 잠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회자가 약을 파는 동안 공연을 했던 배우들은 무대복 차림으로 광주리에 약을 담아 다니며 팔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동창의 동생인 ‘쌍출이’라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쌍출이는 덩치에 비해 얼굴은 비대칭으로 컸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탓에 옷은 한 번 갈아입으면 상거지가 될 때쯤에 갈아입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갑내기들보다 한두 살 많은 형들과 자주 어울리는 성격입니다. 형들과 어울려 다니며 심부름을 해 주고 무언가 얻어먹거나, 동갑내기들 앞에서는 은근히 힘자랑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형 또래들과 어울리지 않을 때는 혼자 장터를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어느 때는 밤이 이슥해졌는데 혼자 장터에서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며 서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쌍출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튿날 서울에 있는 공장에 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두 살 터울 형인 용출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습니다.

그 시절 농촌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농사를 짓든지, 객지로 떠나 기술이나 장사를 배우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게 된 아이들은 제 키에 맞는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갔습니다.

 

​객지로 가는 아이들은 친척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객지에 이웃사촌의 먼 친척이라도 없으면 무작정 밤 기차를 타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낯 기차를 타면 한밤중에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이제 겨우 열네 살인 어린 소년들이 첫날 밤을 보내기에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너무 무서운 곳입니다. 밤 기차를 타는 이유는 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네 살의 아이들이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는 서울에 스스로 뛰어드는 꼴입니다.

 

​계몽극단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러 마지막 공연을 하루 앞둔 날입니다. 쌍출이가 좋은 것 구경시켜 준다는 말에 따라나섰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저와 집에서 장사를 돕고 있는 두 살 터울의 친구 형과 세 명이 무대 뒤로 갔습니다.

 

 

​무대 뒤에는 짙은 어둠이 고여 있습니다. 찢어진 천막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발소리를 죽이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까 분장실이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소주잔 비우며 두런두런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쌍출이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무대 밑이었습니다. 드럼통 몇 개를 세워 만든 컴컴한 무대 안으로 가느다란 불빛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야 쌍출이가 말하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눈치를 챘습니다.

 

​우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불빛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를 공연하고 있었는데 심순애가 불빛을 가렸습니다. 무대는 환한 불빛이 쏟아지고 있어서 한복 속치마를 입지 않은 짧은 속곳이 보였습니다.

 

​   “형, 나도 학교를 졸업하면 계몽극단 따라다닐 거야.”

 

​쌍출이가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저는 난생처음 보는 구경에 쌍출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공장에 갈 것이라는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이 아프도록 치마 속을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속곳 꿰맨 자리가 보였습니다. 아이 손바닥 크기의 천을 잇대어 꿰맨 속곳을 보는데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한참 만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무대 앞으로 가서 공연을 지켜봤습니다. 꿰맨 속곳을 입은 배우가 심순애 역할이었습니다. 문득 저 여자는 배우 심순애가 아니고, 진짜 심순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네 형은 입이 싼 쌍출이에게 무대 밑 구경은 절대 누설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내일도 우리 세 명만 오자는 거였습니다. 저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이튿날은 동네 형이 그렇게 입단속을 시켰는데도 무대 밑 입장객이 다섯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쌍출이가 다른 애들에게 과자를 얻어먹은 대가로 무대 밑 구경을 추천했다는 겁니다.

 

​계몽극단을 따라가겠다는 쌍출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습니다. 그 이후로는 쌍출이를 특별히 만날 일이 없어서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쌍출이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진출한 아이들은 고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뭅니다.

 

​어느 해인가 명절 귀성 기차 안에서 용출이를 만났습니다. 통로를 가득 메운 승객들 틈에 용출이가 보였습니다. 반가워서 큰 소리로 부르려고 하는데 옆에 젊은 여자가 딱 붙어 있었습니다. 저놈이 바람을 피우나? 하는 생각에 곁눈질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용출이가 저를 불렀습니다.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자는 놀랍게도 딸이라는 겁니다.

 

​용출이가 스무 살에 낳았다는 딸이 젊은 애인인 줄 알았다는 말에 용출이는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 젖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쌍출이 안부를 물었습니다. 공장에 다니다 트럭 조수로 취직해 운전을 배웠다는 겁니다. 군대서 자동차 면허를 따서 택시 운전을 하는데 잘살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의 택시 운전이면 괜찮은 직업인데 용출이 목소리가 시원치 않았습니다. 귀성 기차에 동행하지 않은 점도 이상했지만 더는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승객들 틈을 비집고 나오는 홍익회 판매원에게서 맥주와 땅콩을 사서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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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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