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화행(間接話行)'을 삼가라

'간접화행(間接話行)'을 삼가라

2021.03.23

 

직・간접화법이란 말에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정치인들의 언어 농단이 겹쳐집니다. 말한 사람조차도 자기 말을 다르게(자기에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우를 보면서 참담함을 느낄 때가 많아졌습니다.

 

화법이란 말을 중학교 때 배웠습니다. 직·간접화법을 제법 이해하는 축에 든다고 자부했습니다만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서는 간접화법이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1. "위기를 대하는 공직자들의 마음가짐부터 더욱 가다듬어야 할 때입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로 인한 파장 속에서도 침묵을 이어왔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0일(註 2020.11.30)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입을 뗐다.

다만, 메시지 앞뒤로 추 장관과 윤 총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저 올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면서 '공직자의 기본 정신'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화자의 의도를 감추고 듣는 사람에 따라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간접화법'을 택한 것이다.(노컷뉴스)

 

 

2.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국민께 약속드린다." '제7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 중 눈에 띈 부분은 이 대목이다.

북한군이 남측 실종 공무원에게 총격을 가한 뒤 시신을 훼손한 사건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간접화법'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아시아경제)

 

3. “피치 못할 난관”…김정은 간접화법으로 ‘협상’ 의지(한겨레)

`간접화법` 사과에… "관계개선 계기 삼는 것은 위험한 생각"(디지털 타임스)

이성이 마음에 들 때 여성이 쓰는 ‘간접화법’ 1위는?(경향신문)

 

4. 29일(註 2018.6.29.) 한국 경제의 추락 징후를 보여주는 경제지표가 또 나왔다. 5월 중 설비투자가 전달 대비 -3.2%, 소매 판매가 -1.0%를 기록했다. 설비투자는 3개월 연속, 소매 판매는 두 달 연속 마이너스(-)다. 1분기 중 저소득층 소득 감소, 5월 일자리 쇼크에 이어 우리 경제가 뒷걸음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지표에 민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국내 증시에서 투자금 1조5870억 원을 회수해 갔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8일 더불어민주당과 간담회를 하며 "반도체와 상위 몇 기업을 제외하면 기업들 수익성이 좋지 않다"면서 "우리 경제가 구조적 하향 추세인 현실을 직시하고, 처방을 내놔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간접화법으로 문재인 정부에 경제 노선의 궤도 수정을 요청한 셈이다.(조선일보)

 

 

5.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이 한중 협력을 강조해 미국의 중국 압박에 동참하지 말라는 간접화법을 쓴 것”이라고 했다.(동아일보)

 

위의 기사 중 간접화법은 학교에서 배운 “남의 말을 인용할 때, 현재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인칭이나 시제 따위를 고쳐서 말하는 화법.”(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이란 설명과는 판이합니다. 쌍따옴표(“”)로 직접 인용해 놓고도 간접화법이라고 하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말(發話라고 함)이 외부로 나타내는 뜻과 글 속의 뜻이 다름을 간접화법이라 표현한 것인데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간접화법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말은 하나의 행동을 하게 하나 어떤 말은 다른 행위를 하게도 합니다. 다른 행위를 하게 하는 표현을 학계에서는 '간접화행'(이준희 저 '간접화행') 혹은 '비직접화행'이라고 말합니다. 놀이터에서 놀다 와 옷과 얼굴이 더러워진 아이에게 어머니가 "이게 무슨 꼴이니? 목욕탕으로 가"라고 했지요. 아이는 목욕탕에 가서 깨끗이 씻고 나왔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더럽다. 씻어라'라고 알아들었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간접화행입니다.

 

간접화행을 권력기관이나 뉴스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했을 때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6.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이냐?” “친구의 당선을 보는 게 소원” “마음의 빚이 있다” (대통령 문재인)

7. 보좌관에게 전화번호를 준 것. 통역병 선발 절차를 물은 것.(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

8. 은행에 '대출 문의' 공문(경기도 지사 이재명)

9. “너 죽을래?”(전 산자부 장관 백운규)

이 말을 들은 아랫사람들은 입안의 혀처럼 움직였지요. 특히 복심이라는 사람들은 명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 곧장 처리했습니다. 윗사람의 간접화행을 잘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윗사람의 말은 질문이나 진술 등이었으나 실제로는 명령이습니다. 이처럼 간접화행이 특이한 점은 말의 흐름에 따라 행동이 나타남으로써 말 그대로는 해석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 점을 정치인과 법조인 등은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활용하기도 합니다.

 

 

​유능한 정치인은 간접화행보다는 간결하고 분명한 직접화행으로 진실되게 말합니다. 좋은 지도자는 모든 명령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하여 명령을 받는 자가 달리 해석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두루뭉술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표현(간접화행)은 삼가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