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자 교체하려는 조합들...별 문제 없나?

시공자에 특별한 잘못 없어도

조합은 계약해지 가능하지만

건축심의·사업계획 변경 불가피

공사기간 길어져 사업성 떨어져

 

    얼마 전 인천의 모 재개발 구역에서 열린 시공자 교체 관련 설명회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방금 전 휴대전화를 통해서는 부산 모 구역의 시공자 교체를 위한 설명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밖에도 총회나 설명회 등 구체적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목하 시공자 교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구역도 적지 않다. 해당 구역 모두 도급 순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공자가 선정돼 있기에 교체 논의 자체가 다소 의외로 느껴졌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에서 열린 조합총회. [매경DB]

 

기존 건축물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어 올리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위해서는 수많은 협력업체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업체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시공자다. 전체 정비사업비에서 시공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기도 하지만, 시공자의 역할이 단순히 `시공`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설계 방향이나 사업 시행을 위한 인허가 과정에서의 직간접적 조력, 정비사업비 조달을 위한 신용 제공, 시공 이후 새로운 아파트 단지의 명칭과 전체적인 이미지 등 사실상 공동 시행자로서 전방위적 역할이 기대되고 또 시공자 역시 그 후견적 역할을 자임하기도 한다.

 

 

시공자가 정비사업에서 점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도시정비법도 시공자 선정에 관해 타 협력업체 선정과 달리 유독 까다롭고 자세하게 규율한다. 우선 시공자 선정 시기에 관해서는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못 박았다. 공공관리를 시행 중인 서울시는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선정 시기를 더 늦췄다. 선정 방법에 있어서도 전자시스템을 이용한 일반경쟁입찰을 거쳐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선정 총회에서는 전체 조합원 과반수의 직접 참석까지 요구된다.

 

이렇듯 까다로운 절차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엄선된 시공자들이 교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비사업의 빙하기로도 불리는 201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수년간은 시공자가 선정돼 있다는 것 자체가 해당 구역 사업성의 보증수표이자 분양 흥행의 결정적 지표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거의 모든 구역의 집행부가 시공자 선정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고, 심지어 시공자 선정 자체를 별도의 용역으로 간주해 시공자 유치를 위한 대외적 홍보활동을 건설사업관리업체(이른바 PM업체)의 계약 내용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반면 시공자들은 주택 시장의 침체를 우려해 신규 수주를 극도로 자제했고 이미 수주한 구역에 대해서도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주택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때까지 사실상 동면 상태로 빠져들었다. 도급 순위 상위에 이름을 올린 시공자들 행보가 전면 중단되자 조합들의 발길은 도급 순위에서는 밀리더라도 사업 의지를 갖고 있는 중소 시공자들로 향했고, 과감하게 기회를 잡은 중소 시공자들이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서도 소위 흥행 신화를 일궜다는 소식이 이따금 들려오기도 했다. 주택 시장이 정상화를 넘어 활황기에 다다른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업성이 있는 구역은 예전같이 많지 않고 이를 둘러싼 시공자들의 수주 다툼은 어느 때보다도 치열해졌다. 아직 시공자가 선정되지 않은 곳에서는 수주전쟁이 벌어지고 시공자가 이미 선정된 곳이더라도 조금만 빌미가 보이면 시공자 교체를 공공연히 거론한다. 불황을 틈타 입성했던 중소 시공자는 물론이고 도급 순위 최상위의 시공자라 할지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만큼 시공자 교체의 계기와 이유는 다양해졌다.

 

 

시공자 교체의 법률적 근거는 민법이 인정하는 도급인의 해지권이다. 민법상 도급인에 해당하는 조합은 수급인인 시공자가 일을 완성하기 전이기만 하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시공자가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조합은 사실상 자유롭게 시공자와의 계약 관계를 끝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응해 시공자가 취할 수 있는 법률적 대응은 매우 제한적이다. 조합 운영을 위해 지원했던 각종 대여금의 반환과 부당한 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가 거의 전부다. 우리 대법원은 시공자가 부당하게 계약을 해지당하면 도급인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그때의 손해는 계약 이행을 통해 얻었을 이른바 `이행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시공자가 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이행이익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시공원가를 공개해야 하고, 시공원가가 공개되면 향후 참여할 입찰은 물론 시공권을 확보한 기존 현장에서 시공단가의 적정성을 두고 홍역을 치러야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asclep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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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자 교체가 부담스러운 것은 법적인 부분보다는 오히려 사실상의 영향력 때문이다. 조합의 배후에서 사실상의 공동 시행자로서 다양한 후견 역할을 담당했던 시공자라면 상당한 비율의 조합원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게 마련이고, 어떤 이유로든 조합 집행부가 시공자 교체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 집행부 해임과 시공자 교체의 안건이 경쟁하듯 진행되기 일쑤다.

 

 

기존 시공자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면 집행부로서는 시공자 교체를 추진하다 오히려 해임의 역풍을 맞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공자가 설계의 기본 방향을 정한다는 점에서 기존 설계의 재검토 즉, 건축심의나 사업계획의 변경이 불가피해질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시공자 재선정이나 설계변경, 임원 해임 그리고 이를 둘러싼 분쟁을 정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든다. 정비사업에서 시간의 소요는 곧 `금융비용 증가`를 의미하고 결국 사업성과 직결되는 만큼 시공자 교체를 바라보는 일반 투자자들의 심경도 그만큼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1/03/2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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