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 한국이 미국보다 낫다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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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한국이 미국보다 낫다

2021.03.02

사상 최악의 폭설과 한파로 정전과 단수 피해를 입은 미국 텍사스 주민들이 ‘전기료 폭탄’을 맞았다고 합니다. 전력 시장의 70%가 민영화되어 있는 텍사스 주의 경우 상당수 전력 공급 업체가 비용 절감을 하느라 악천후에 대비하지 못했고, 결국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오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운 좋게 정전 사태를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전기료 폭탄을 맞았는데, 전기 수급 상황에 따라 전기료가 달라지는 ‘변동 요금제’에 가입한 경우입니다. 20일치 전기 요금으로 6,757달러, 우리 돈으로 760만 원의 고지서를 받은 주민이 있는가 하면, 무려 1,880만 원의 고지서를 받은 주민도 있었습니다. 1메가와트당 50달러였던 전기 요금이 9,000달러까지 폭등한 결과였습니다.

​이 뉴스를 보고 십여 년 전에 미국에서 겪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집을 구한 후, 유선 방송과 인터넷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컴캐스트(Comcast)라는 업체에 가입을 했었는데, 인터넷 속도도 느리고 종종 끊기기도 해서 불편이 많았습니다. 더욱 답답했던 것은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하면 십여 분은 수화기를 들고 기다려야 했는데, 간신히 연결이 되면 상담 직원이 “Hold on(기다려).”이라고 한마디를 하고는 또 십여 분을 기다리게 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도중 갑자기 통화가 끊기고 처음부터 다시 하기를 반복해서 간신히 통화가 이뤄져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면 미안하다는 얘기는 없고, 퉁명스럽게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 되물었습니다. “어제부터 서비스 센터에 통화를 시도해서 중간에 몇 번이나 통화가 끊기고 오늘에야 통화가 가능했는데, 고객의 시간을 너무 뺏는 것 아니냐?”하고 다시 물었더니, “그래서 서비스를 받겠다는 거냐? 서비스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면 통화를 끊겠다.”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오는 거였습니다. 전화를 끊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기다림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삭인 후, 용건을 이야기하고 서비스 신청을 했습니다.

​며칠 후, 대학원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미국 동료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곧바로, “Evil Comcast(사악한 컴캐스트같으니)!”라고 얘기하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미국은 케이블 업체가 컴캐스트와 스펙트럼이라는 두 업체만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땅이 워낙 넓다 보니, 큰 도시가 아닌 경우, 한 업체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점 구조가 되기 때문에 요금은 비싸지고 서비스는 엉망이 됐다는 겁니다.

​필자는 당시에 케이블 TV는 기본 채널만 가입하고 인터넷 속도는 비교적 빠른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한 달에 무려 100달러가 넘는 요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는 늘 서비스 플랜이 보장하는 속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심지어 종종 끊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 봤자 내 시간만 낭비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약관에 인터넷이 끊길 수 있고, 보상의 의무는 없다고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전화를 받는 서비스 센터가 인도에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내에서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인도에 서비스센터를 만들어서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영어가 짧은 필자와 인도 억양으로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얘기하는 상담 직원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될 리가 없으니 점점 더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거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번 돈으로 컴캐스트는 공룡처럼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만, 2010년에 컨슈머리스트(Consumerist)가 선정한 미국 최악의 기업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컴캐스트는 2010년도에 가장 주요 산업인 케이블과 인터넷, 전화 관련 부문의 상표를 Xfinity(엑스피니티)로 개명했는데, 욕을 하도 먹어서 나빠진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상호를 개명했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그래도 제 버릇 남 주기 어려웠는지, 2014년에 다시 미국 최악의 기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기업은 이윤을 좇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그 이윤을 좇는 방식이 점점 더 과감하고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법망을 피해 과점 또는 독점 체제를 구축한 기업은 대놓고 고객을 수탈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기술적으로 데이터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잔재주를 부려 고객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만듭니다. 휴대 전화의 배터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우버(Uber)를 부르면 요금이 조금 더 비싸진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휴대 전화의 배터리가 방전이 되면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지니 배터리가 부족할수록 요금이 조금 비싸도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돈을 벌기 위해 고객의 휴대폰 배터리 잔량까지 체크를 한다는 건데, 이 문제가 뜨거운 논쟁이 되자, 우버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만, 고객의 이용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고객 휴대폰의 배터리 상태를 체크하기는 한다고 했답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나라는 이 정도까지 사악한 기업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사욕을 채우려 할 경우, 정부와 NGO, 그리고 언론이 감시를 통해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놀라워 하는 우리의 빠르고 저렴한 인터넷 요금과 휴대전화 요금은 국민의 눈치를 보며 해마다 통신사들을 압박해 온 정치의 덕이 큽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 빛나던 우리의 의료체계 역시 의료 서비스의 민영화를 거부한 산물입니다. 전기 요금 역시, 2016년 폭염으로 전기료 폭탄 논란이 일자, 정부가 누진제를 개편해서 국민의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잘하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기, 통신, 의료, 수도, 교통 서비스는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이런 서비스가 완전한 민영화가 되면 독점 또는 과점의 형태로 변질될 우려가 큽니다. 또한, 이들은 국민의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주는 산업이기 때문에 공공선(公共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논리에 매몰돼 국가의 기간 산업을 기업이 돈을 버는 수단으로 방치하게 되면, 우리도 단전, 단수에, 요금 폭탄을 언제 맞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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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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