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태양은 떠오른다 [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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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태양은 떠오른다

2020.02.24

얼마 전 절친에게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냈더니 너무 놀랐노라는 답을 보내왔습니다. 긴 생머리를 묶고 다니던 모습만 기억하는 그녀는 댕강 잘라버린 내 머리 모습이 서운했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만에 단발을 하게 된 것은 내 몸 관리가 힘들어진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귀밑까지 자른 모습은 초등학교 시절에도 해 본 적이 없으니 나도 내 얼굴이 낯설었고 28년 동안 우정을 유지해온 그녀 또한 생소했을 것입니다.

작년 4월부터 시작된 두 발의 통증이 내게서 보행의 자유를 빼앗아 원인도 모른 채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날이었습니다. 지체장애인들의 고난이 남의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나의 차에도 그들처럼 장애인 표식이 붙어 있게 된 것과 휠체어와 목발을 사용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내게 코로나 바이러스 재앙까지 겹친 것은 극한의 인내를 요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나마 누워서 소식을 띄우고 세상사를 읽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어 다행이었고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지요.

​특히 한국에서 보내온 책 한 권이 나를 깊은 우울과 슬픔의 심연에서 빠져나오게 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벨상 작가의 충격적인 개인사와 대면하면서입니다. 그의 자전적 소설을 읽는 동안, 그가 유년 시절부터 살아온 치열한 삶의 흔적과 고통, 그리고 아픔이 처절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책을 손에서 놓은 후에도 쉽게 떨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오래오래 내 안에 머물렀지요. 가난과 병약함을 이겨내고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그 기쁨도 오래 누리지 못하고 비통하게 생을 마감해서 더욱 그러한데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는 인터뷰에서 그가 표현한 충격적인 문장은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함축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문호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입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 '페스트', 우리가 제목만 들어도 알고 있고 한 번쯤 읽었을 책들의 저자, 위대한 이 작가의 인생사가 매우 충격적이었던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노벨상을 수상한 3년 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7년간 메모해왔던 작가노트를 토대로 부인이 출간한 마지막 저서, 자전적 소설이 '최초의 인간'입니다. 다른 저서들과는 달리 뉴욕의 할렘 같은 북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의 열악한 환경에서 그가 대면했던 가난과 열등감, 병약함을 극복하는 과정이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어 눈물이 났습니다.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노동자) 아버지를 한 살에 여읜 그는 귀가 들리지 않고 문맹인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하층민들이 사는 빈민 구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냅니다만 그런 그를 어둠의 세계로부터 탈출하게 해준 것은 알제리 지중해와 햇빛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초등학교 스승의 사랑으로 노벨상 작가로 향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꿈도 꿀 수 없었던 그에게 특별강습을 시키고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던 스승, 그가 지치고 아플 때마다 뛰어놀 수 있었던 지중해의 해변과 태양은 그에게 생명의 빛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참담합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 계속 파리 문단에서 소외당하고 공격당하고 있던 카뮈는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산동네 루르마랭 시골집에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고 있던 중 휴가를 맞아 시골집에 함께 내려와 있던 가족(부인과 아이들)과 개학에 맞춰 파리행 기차표를 구입했습니다. 모두 함께 파리로 떠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마침 그때 카뮈의 시골집을 방문했던 절친 부부가 그들이 몰고 온 자동차를 타고 파리로 같이 돌아가길 권유하자, 카뮈는 부인과 아이들만 기차로 떠나보내고 자신은 미리 사 둔 기차표를 주머니에 넣은 채 친구 부부와 함께 자동차로 시골집을 나섭니다. 그것이 그의 고단했던 삶의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파리 도착 한 시간을 남기고 친구가 운전하던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아 세 사람 모두 바로 절명한 것입니다.

친구의 차에 동승할 때 지니고 있었던 그의 가방 안에서 발견된 마지막 육필 원고가 '최초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혼불이 떠나가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전적 소설인 '최초의 인간'을 마지막으로 쓰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카뮈를 동승시켰던 친구 부부와의 그 기묘하고 애통스런 우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나는 카뮈와 친구 부부의 숙명적 관계, 그리고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전율하였습니다.

COVID-19으로 세계는 100년에 한 번 있을지도 모를 대재앙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고 운신의 폭이 좁아져 맘대로 다닐 수 없는 어둠의 시대입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더 하기만 할 뿐 모두가 활기를 잃은 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카뮈의 '페스트'를 완독했습니다. 지금이 그와 같지 않은가 합니다. 그러나 재앙 앞에서 내가 배운 것과 카뮈의 운명에서 깨친 것은 현실이 아무리 무섭고 잔인하더라도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편안히 마주보고 밥을 먹고,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즐겁게 손을 잡고 걸으며, 누구도 경계하지 않고 포옹할 수 있었던 자유롭고 평범한 일상들이 이렇게 절절하게 그리울 수가 있는지요. 그런 일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이제야 배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날들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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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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