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이야기 [김수종]

 


www.freecolumn.co.kr

 산삼 이야기

2021.01.20

산삼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흥미롭습니다. 구경 한 번 못해본 사람도 산삼 이야기를 들으면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 같은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산삼은 한국 사람만 아니라 서양인들도 관심을 갖는 약초가 되었습니다. 구글에서 산삼(wild ginseng)을 검색하면 정보가 우르르 쏟아집니다.

작년 12월 말에 산삼을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중턱 마을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산삼술과 산삼차를 한 잔씩 마셨습니다. 예전에 산삼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 맛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술을 한 모금 마시자 향이 입안을 감돌았습니다.
제주도는 산삼이 자생하는 곳도 아니고 인삼을 재배하는 지역도 아닙니다. 그날 먹은 산삼은 산에서 야생으로 자란 게 아니라, 산삼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키워낸 배양근(培養根)으로 만든 술과 차였습니다.
“그게 무슨 산삼이냐, 장뇌삼만도 못하겠다.”고 반박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마신 산삼 술과 차는 산삼 전문가가 120년 자란 산삼의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키운 뿌리이니 효능은 어떤지 몰라도 족보로 따지면 산삼입니다.

산삼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곳은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라는 곳입니다. 해발 약 450m 한라산 기슭에 위치한 이 마을은 50년 전만 해도 소나 말을 키우거나 메밀을 재배해서 입에 풀칠을 하던 제주도에서도 가장 척박한 벽촌이었습니다. 4·3사건 때는 한라산과 가깝다는 이유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고 집들이 불타버리자 해안가의 친척이나  친지를 찾아 피난살이를 했던 한 많은 마을입니다.

지금 이곳은 부유한  서울 사람들이 좋아하는 특이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전망이 빼어난 ‘핀크스’ 골프장에 이어 재일교포 2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1939~2011)이 설계한 ‘포도호텔’과 200여 세대 고급주택 단지 ‘비오토피아’가 들어섰습니다. 모두 SK그룹의 관리 아래 있는 시설들입니다. 이에 질세라 현대그룹 계열 가족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본태박물관’을 지었습니다. 또 물에 떠 있는 형상의 ‘방주교회’가 교인보다 관광객들을 더 많이 불러 모읍니다.

이들 시설물들과 이웃한 농로 옆에 촌티 나는 콘크리트 건물 두 채가 서 있습니다. 입구에 투박한 화산 암석에 한자로 '山蔘硏究所'(산삼연구소)라고 새긴 입간판이 있습니다. 겉보기에 창고 같은 허술한 시설이지만 그 안에서는 생명과학, 정확히는 산삼줄기세포 연구가 조용하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제주 출신 토종 연구자 김철균 농학 박사입니다. 

100평이 훨씬 넘어 보이는 산삼 줄기세포 배양실에 들어서자 향긋한 실내 공기가 코끝에 느껴졌습니다. 이곳엔 20리터 용량의 투명한 배양기 1000개가 꽉 차 있습니다. 조그만 뿌리 조직 몇 개가 배양액 속에 떠다니는 것이 보일 듯 말 듯한 배양기도 있고, 뿌리가 가득 찬 배양기도 있습니다. 모든 배양기에는 배양을 시작한 날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잎은 없지만 시간에 따라 뿌리가 자라는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산삼 배양실의 김철균 박사

연구소 대표 김철균 박사가 설명해줬습니다. “배양접시에서 만들어진 줄기세포를 이들 배양기에 옮겨 50~60일 키운 후 건조시켜 분말, 홍삼, 농축액으로 정제합니다. "줄기세포조직 20g을 배양하면 60일 후 약 1㎏의 산삼뿌리로 자란다니 굉장히 빠른 속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산삼은 오래돼야 좋다는데 왜 더 키우지 않죠?"라고 물었더니 김 박사가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혈당을 낮춰주고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산삼 성분의 핵심은 '사포닌'이란 물질인데 배양기에서 55일 전후 자란 뿌리의 사포닌 함유량이 제일 많고 60일 이상 배양하면 오히려 줄어듭니다. 또 줄기세포로 키운 산삼뿌리는 처음 채취한 산삼의 유전 정보와 동일합니다. 이곳서 키우는 산삼 배양근은 120년 된 겁니다."
"그게 무슨 얘기죠? 120년 된 산삼의 줄기세포를 추출해서 키운다는 얘긴가요?"
"맞습니다. 2006년 심마니한테 9천7백만 원 주고 구입했습니다. 당시 작은 아파트 한 채 값이었습니다. 연구를 위한 출혈 투자였습니다. 120년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심마니 세계에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내 식물 지식을 토대로 그들의 말을 믿어야 했지요."

김 박사로부터 17년간 산삼줄기세포 배양을 연구하게 된 내력을 들었습니다.

그는 제주대학교 축산학과를 나와 제주농업기술원 연구원으로 동물 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가 동물보다 식물 줄기세포가 더 다양하고 재미있다고 보고 감자줄기세포 연구에 정진했습니다. 감자줄기세포 제조 방법 등 5개의 특허를 획득해서 신지식인으로 뽑혀 1999년 대통령 표창도 받았습니다. 감자줄기 세포 연구로는 세계적으로 꽤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김 박사는 2003년 감자줄기세포 기술협력을 위해 러시아의 초청을 받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습니다. 연일 열린 긴 세미나와 발표에 지쳐하는 김 박사를 본 러시아 연구원이 식물 뿌리가 가득 찬 보드카 병을 주며 한번 마셔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술을 마셨더니 피곤했던 몸이 씻은 듯 개운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술은 보드카에 산삼을 담가 만든 산삼주였습니다. 산삼은 구경도 해 본 적도 없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는 줄기세포 연구자로서 산삼 줄기세포를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감자 박사’가 ‘산삼 박사’로 바뀌게 된 계기였습니다.
김 박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는 동안 연구원들로부터 산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었습니다. 러시아의 산삼 연구 실적에 놀랐습니다. 러시아 학자들이 1936년 이미 산삼에 대한 성분분석을 해서 놀라울 정도의 연구 실적이 쌓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그의 머리는 산삼 줄기세포연구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키우면 많은 사람들이 산삼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줄기세포 기술이면 충분하다고 자신했습니다.

김 박사는 연구소를 세울 요량으로 산삼배양에 좋은 물을 찾아 제주도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그는 해발 450m의 상천리를 적지로 찍었습니다. 지하 450m에서 뽑아낸 지하수를 분석해서 배양액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직장으로 다니던 농업기술연구원에서 퇴직하고 영농법인 ‘조이바이오’를 설립해서 본격적인 산삼 줄기세포 배양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김 박사는 연구비 조달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친가 처가 형제들과 친지들의 푼돈을 끌어 모아 영농조합을 만들었지만 줄기세포배양 연구는 규모에 비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는 최근 6억 원을 들여 은(Ag)나노 배양액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연구비 조달을 위해 산삼 제품을 생산한지 꽤 됐지만 그는 아직 별로 장사 수완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산삼 줄기세포 배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배양액입니다. 야생 산삼은 산속에서 흙과 비와 이슬을 먹고 자라지만 배양산삼은 자연산 산삼의 성분을 갖도록 배양액을 만들어 먹여줘야 합니다. 배양액 제조가 노하우 중의 노하우로 특허출원도 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 및 영업 비밀 보호가 치열하다고 합니다. 김 박사는 작년 연말 은(Ag)나노를 가미한 배양액에 산삼줄기세포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은나노를 먹은 산삼뿌리가 처음 나오는 3월을 기다리는 김 박사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답니다.

산삼의 효험에 대해 묻자, 그는 “배양실에 들어가면 말하기 힘든 기운이 느껴집니다. 배양하면서 느끼는 게 많지만 우리 영농조합의 제품은 약재가 아니라 식품으로 등록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사포닌 등 산삼의 성분 분석에는 많은 연구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산삼은 몸에 좋은 것이 분명하므로 산삼 연구가 많은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며 내가 못하면 후배들이 이 연구를 계속하게 토대를 마련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철균 박사는 줄기세포 배양과 관련해서 두 가지 시사점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줄기세포 연구가 농업문제 해결에 줄 긍정적 영향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100평의 우리 연구소가 배양하는 분량의 산삼을 야생에서 생산하려면 제주도 열 개의 땅도 모자랄 겁니다. 앞으로 식량이든 약초든 줄기세포 배양은 식량의 질과 양에서 굉장히 중요한 산업적 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두 번째, 미국에서 산삼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입니다. “산삼은 미국과 캐나다 동부에 많이 자랍니다. 동양의 산삼 유통은 미국 산삼 유통에 비하면 아주 적습니다. 하지만 미국 산삼은 사포닌 함유량으로 볼 때 한국의 더덕만도 못합니다. 산삼은 한국과 만주 연해주의 것이 성분 분석에서 사포닌 함유가 많이 나옵니다. 앞으로 30년 후엔 미국 연구팀이 생명공학을 이용하여 한국산보다 더 좋은 산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미국에 산삼이 많이 난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여름 미국 동부의 메인 주에 여행하여 한국 교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교포들이 산삼 캐는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글을 검색하면 산삼의 채취 시기 및 허가와 인체에 주는 산삼의 효험에 대한 정보를 담은 웹사이트가 지역별로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김철균 박사가 원하는 대로 산삼 줄기세포 배양 연구가 잘 되어 많은 사람이 배양 산삼을 싼값에 먹을 수 있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