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은 세종을 사숙하라[신현덕]



 

www.freecolumn.co.kr

법무장관은 세종을 사숙하라

2021.01.15

사상 초유로 교정시설인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 수감자의 반 이상이 역병에 걸렸고, 사망자도 있습니다. 감염자를 전국의 교정시설로 분산 배치하고, 몇 차례의 전수검사를 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만 언제 다 해결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글에선가 “최신식 교정시설로 주변의 주거지들과의 위화감이 없도록 오피스텔, 빌딩형으로 디자인되었으며, 새로 지은 건물인 만큼 시설도 최고 수준”이라고 동부구치소를 홍보했습니다. “오래되고 낙후된 교정시설에 비해 수용거실, 화장실이 훨씬 크고, 덜 덥고 덜 춥다”는 시설 소개 내용도 있었습니다. "작은 면적에 신축되어 운동장은 실내에 설치되었고, 공휴일을 제외한 날에는 30분 이내에서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은근히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도 뽐냈습니다. 바로 3년 전의 일입니다.

서울 동부구치소가-수감자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랑 끝에 결국 쉬슬고 말았습니다. 수감자의 인권은 깡그리 무시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수감자들이 “살려 주세요”라는 손 글씨로 외부에 구호를 요청했을까 생각하면 아뜩합니다.

교정 업무를 맡고 있는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애초에 방역 당국이 피하라고 강조하는, 역병이 좋아하는 3밀(밀폐, 밀집, 밀접) 시설로 잘못 지어졌다고 답변했습니다. 장관으로서 방역에 소홀했다거나, 판단이 미흡했다거나, 대처를 제때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역병이 구치소를 초토화한 것을 전직 대통령의 탓인 것처럼 질문의 핵심을 비켜갔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장관의 답변이 그곳에 수감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이 건축을 잘못했다고 힐난하는 것처럼 들었을 정도로 비겁했습니다.

만약 그가 지적한 것처럼 이미 역병에 취약한 시설로 파악했었다면 개선을 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현 정부의 실책입니다.

늦게나마 구치소의 밀집도를 줄이기 위해 사면을 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입니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교도소는 법의 돌로 지어졌다고 했습니다.(Prisons are built with the stones of law) 법이 원칙대로, 돌처럼 변함없이, 일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장관은 ‘법에 충실하라’는 기본을 몰랐을까요, 아니면 무시했나요.

동부구치소의 수감자 인권은 600년 전의 조선 시대 인권보다도 크게 후퇴했습니다. 세종은 “옥이란 죄 있는 자를 징계하자는 것이요, 본의가 죽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관원의 불찰로 “심한 추위와 찌는 더위에 사람을 가두어 두어 질병에 걸리게 하고, 혹은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형조 관리를 질책했습니다. 형조의 실책을 두고는 곧바로 나라가 잘못했음을 백성들에게 들춰 보이면서 “진실로 가련하고 민망한 일”이라고 사죄했습니다. 관리들에게는 임금의 지극한 뜻을 받들어 옥을 항상 수리하고 쓸어서 늘 정결하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나아가 “질병 있는 죄수는 약을 주어 구호하고 치료할 것이며, 옥바라지할 사람이 없는 자에게는 관에서 옷과 먹을 것을 주어 구호하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는가를 확인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즉 관리자의 중요한 자세 중 하나인 명령과 결과 확인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세종은 나아가 죄인의 인권을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내가 전에는 더위를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연전(年前)부터 더위가 들기 시작하여 손으로 물을 희롱하였더니 더위 기운이 저절로 풀렸다. 이로 생각하건대, 죄수가 옥에 있으면, 더위가 들기 쉬워서 혹은 생명을 잃는 수가 있으니,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더운 때를 당하거든 동이에 물을 담아 옥중에 놓고 자주 물을 갈아서, 죄수로 하여금 혹 손을 씻게 하여, 더위가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고 시행 방법까지도 제시했습니다.** 더위가 아주 극심할 때는 옥의 수용 인원을 줄이기 위해 형량이 가벼운 사람들은 형(刑)을 면제하고 석방했습니다.*** 또 “만일 병든 죄수가 있게 되면 즉시 약재를 싸 가지고 가서 구호해 치료하게 한 뒤에 수효를 갖추어 공문을 보내라”고 보고와 결재 절차보다도 죄인의 목숨을 중하게 여기라고 관리들을 다그쳤습니다.****

코로나 예방 백신 주사를 놓고 벌써부터 부처 간의 힘겨루기가 물밑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수감자들에게 차별 없이 접종되기를 기대합니다.

*세종 7년(1425년) 5월 1일.
**세종 30년(1448년) 7월 2일.
***세종 14년(1432년) 7월 7일.
****세종 21년(1439년) 3월 9일.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