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양극화 심화..."'벼락거지' 탄생시켰다"
'벼락거지' 탄생시켰다, 文정부가 확 벌려놓은 인생격차
경기도 일산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대기업 직장인 문모(37)씨는 친한 직장 동기를 보면 자신이 초라해진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고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해 5~6년 전 결혼한 점은 둘이 비슷하다. 다만 문씨는 신혼집을 전세로 구한 반면, 동기는 양가 부모님의 지원과 대출을 끌어모아 ‘내 집’으로 신혼을 시작한 게 차이다. 문씨는 “동기는 단지 일찍 부동산에 뛰어든 덕에 수억원을 벌었다”며 “폭등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생 격차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상·하위 20% 순자산 양극화 심화
2017년 100배서 작년엔 167배로
집값·주식 폭등에 박탈감 커져
“계층 이동 사다리 끊겨 사회문제”
유주택·무주택, 수도권·지방 양극화
상위 20% 평균 자산 11억2481만원
하위 20%는 평균 675만원 그쳐
자산보다 근로소득 증가 정책펴야
부동산·주식 같은 자산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주식 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계층 간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시스템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 보유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11억2481만원으로 하위 20%(675만원)보다 11억1000만원 이상 많았다. 이에 따라 ‘순자산 5분위 배율’은 166.64배로 2019년(125.60배)보다 41.04배포인트나 뛰었다. 통계청이 조사 방식을 바꾼 2017년 이래 최고치다.
순자산 5분위 배율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99.65배에서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위 20%(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을 하위 20%(1분위)의 평균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계층 간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심화하는자산양극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2017년 9억4670만원에서 계속 올라 3년 새 18.8% 늘어난 반면, 하위 20%는 같은 기간 950만원에서 줄어든 때문이다. 서민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되레 자산 양극화를 키워 서민을 상대적으로 더 빈곤하게 만든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다.
상위 20%의 자산(부채 제외) 분포를 뜯어보면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이다. 자산(평균 13억1482만원) 가운데 부동산(10억1320만원)이 77.1%를 차지한다. 금융자산(2억5542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9.4%다. 자산 대비 부동산 비중은 ▶4분위 71.1% ▶3분위 63% ▶2분위 50.3% ▶1분위 29.6% 등으로 가구의 소유 자산이 적을수록 수치가 함께 내려갔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수록 상하위 계층 간 자산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집 신혼 vs 전세 신혼…30대 친구사이 인생 격차
결국 이런 자산 양극화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과 비교해 4.5배 크다.
경기도 아파트값도 문재인 정부에선 3년간 42% 올랐는데 역시 이명박 정부(-9%), 박근혜 정부(14%)의 상승률을 압도한다. 중간 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중간 가격대 집 한 채를 사려면 2019년 1월에는 12.9년간 저축해야 했는데, 지난해 9월에는 이 수치가 15.6년으로 2년도 안 돼 2.7년이나 늘었다(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수도권·대도시의 ‘똘똘한 한 채’ 값은 더 오르고 있다. 이 지역에 먼저 부동산을 장만하지 못한 이들은 주변부로 밀려나 다시 진입하기 어렵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24차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결국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간 자산 격차 심화, 수도권과 지방 간의 자산 가격 양극화를 초래한 결과”라며 “사실 한국의 자산 양극화 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양호한 편인데, 결국 현 정부가 이를 악화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더해 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넘는 등 그간 증시도 많이 오른 만큼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근로의욕을 꺾고, 상대적 박탈감에 우울증을 초래하며, 계층 이동 사다리를 끊는 등의 사회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목동에선 부동산 매입 시기를 놓쳐 잦은 부부싸움을 하던 남편이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뒤 본인도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동산 블루’(치솟는 집값에 따른 우울증), ‘벼락거지’(한순간에 부자가 된 벼락부자의 반대 개념으로, 자신도 모르는 새 자산 격차가 벌어진 사람을 일컫는 말) 같은 신조어도 일상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포모(Fearing Of Missing Out·FOMO) 증후군’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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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투자 개미’와 달리 일에만 전념했던 이른바 ‘일개미’들이 상실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송모(46)씨는 직장생활 20년 가까이 주식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학생 때 아버지가 무리한 주식 투자로 가산을 탕진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송씨는 “빚을 내서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에 나선 친구는 며칠 만에 내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며 “최근 증시 상승장에서 나만 돈을 못 벌어 소외된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포모(Fearing Of Missing Out·FOMO) 증후군’의 사례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자산 가격 상승이 근로소득 증가 속도보다 훨씬 커지는 현상이 계속되면 근로자가 땀 흘려 번 ‘월급의 가치’는 갈수록 낮아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대로 둔다면 양극화와 불균형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되고, 실물경제와 자산시장 간의 괴리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시중의 풀린 유동성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려 자산가격 상승이 아닌 근로소득 증가로 이어지도록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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