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의 허상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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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의 허상

2021.01.12

강화도를 떠나 김포 한강로를 거쳐서 서울 88도로로 들어오는데 함박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그림이라도 떠올리며 풍성한 공상에 잠겼겠지만 그건 이제 사치였습니다. “이 눈은 뭐지?”, 난세에 어울리지 않는 눈이라고 빈정댔죠. 눈은 최악의 교통대란으로 이어져 서울시 과도체제의 무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내가 “저녁에 퇴근했더니 다음 날 출근할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보며 “박원순 시장이라면 달랐을까”라고 중얼댔습니다.

새해 들어 덕담을 전하고 싶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연초 연일 1,000명대를 기록하던 코로나19 감염자 폭증에다가 경제 불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중산층을 해체하려고 작심한 듯한 세금 폭탄을 맞아 국민 생활은 숨이 막힙니다. 지난해 나도 약소한 금액의 예금을 이곳저곳에서 줄줄이 깼습니다.

강화도에서 아주 큰 식당을 경영하는 사장님은 코로나19 불황이 너무나 심각해서 종업원의 월급조차 밀리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단체 관광객이 끊긴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합니다. 어느 강남 사람이 식사하면서 영화촬영 세트장 같다던, 인사동 14길 한식당 골목의 1월 4일 저녁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100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식당에는 연극의 무대처럼 주변은 어둑컴컴한 채, 주인과 종업원 같은 3명만이 조명을 받는 식탁에 마주 앉아 턱을 괴고 있는 수심에 찬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습니다. 폐업한 것 같은 집도 있었습니다. 같은 날 걸어 본 광장상가, 중부상가, 종로3가 대로변에도 공실이 많았습니다. 다만 종로에 주로 중국산 생필품으로 채우는 독채 건물인 다이소는 손님이 제법 있어 잘 나가는 것 같았죠.

종합주가지수는 3,000을 돌파했지만, 지난해 2분기에만 10만 3,943곳의 자영업자 상가 점포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교 졸업 후에 취직을 못 한 미취업자가 17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땜질이 불가능하죠. 세계 최고 수준을 찍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1,100명 이상의 코로나19 사망자와 실업자 100만 명이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와 방역의 성공인가요? 코로나는 극소수 사망자를 낸 타이완(7명)이나 싱가포르(29명) 등 아시아 국가에 비하면 결코 선방이 아니고 그것이 선방이라면 그 공은 여러 자유를 빼앗긴 국민과 의료·방역진의 몫이죠.

“재소자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서는 민주화를 말할 수 없다”던 문재인 변호사의 치세에 구치소, 교도소에서 1,2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하여 인권의 바닥이 어디냐를 묻고 있습니다. 의사협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찾아오는 환자를 기다리더니 결국 하루 발생자가 1,000명을 돌파하자 숨은 감염자를 찾는다며 곳곳에 선별 무료 검사소를 설치하여 수백 명의 숨은 감염자를 찾아냈으니 뒤늦게나마 다행입니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무증상자가 주변을 오염시킬 것입니다.

지금 정부 여당과 방역 당국의 메시지는 ‘만나면 옮는다’는 경고입니다. ‘마음은 가까이 몸은 멀리’. ‘귀성은 효도가 아니다’는 강변이 지배했습니다. 하기야 새해 첫날 조상을 모시는 제사도 동생들은 못 오고 아들 가족만 와서 지냈습니다. 이렇게 감염자가 늘어나는 것은 초기의 방역을 소홀히 한 채, 대로에서 차량 10대의 시위조차 ‘재인산성’으로 차단한 충성스러운 경호 방역 탓이 크다고 봅니다. 어느 미국 영화를 보니 “나라를 지키는 데 누구 허가가 필요해?”라는 대사가 나왔습니다. 차량 시위를 무슨 전염병학적인 이유로 막았는지 꼭 진상 조사를 하여 가려야 할 것입니다. 약 40만 명이 사망한 가공할 미국의 코로나는 지난 7일 의사당으로 향했던 논란 속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강조한 대로 코로나를 옮기는 것은 밀폐, 밀집, 밀접의 3밀로 인한 침방울과 기침, 재채기인데 우리는 광장의 시위는 막으면서 밀집 수용 시설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외면했죠. 정부가 감독해야 할 요양원과 구치소의 공동생활 위험이 현실화했습니다. 구식 건물이 좁으면 분산시켜야 했고 마스크 살 돈이 없으면 법무부 장관 특활비라도 썼어야죠. 마스크 한 장은 몇 백 원이면 삽니다. “사람이 먼저다”, “마스크가 백신이다”는 누가 한 말입니까? 그런 발생을 줄이지 못한 대가가 오늘의 2.5단계도, 3단계도 아닌 국민 숨통 조르기의 혼란상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환자가 느는 것은 한국과 달리, 다른 유럽 선진국처럼 시민의 자유를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경 등 수도권에서 감염자가 하루 3,000명을 돌파하자 급기야 수도권 1도 3현에 한 달 간의 긴급사태를 선포했죠. 오후 8시 이후의 음식점 영업 자숙, 외출 자제 요청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를 거부하겠다는 식당 주인의 NHK 인터뷰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5명 이상 함께 식사하지 말라는 규제도 없고 초중고 휴교를 강제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5인 이상 식사 금지는 지나친 간섭이죠. 같은 식당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특정 팀의 손님 수를 제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경제와 방역이 공존하려면 치밀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참여하는 외국어 소설연구 모임은 코로나 방역단계가 격상과 완화를 거듭하는 통에 모임과 휴강을 반복했습니다. 요즘은 zoom 화상회의로 공부합니다. 컴퓨터에 능숙하지 않은 회원들이 외국 사이트의 아이디. 링크, 비밀번호, 새 회의 참가, 예약 등의 생소한 개념에 고전했지만 어쨌든 zoom과 카톡 그룹콜로 연결합니다.

비대면을 강조하는 정부는 지원금을 뿌리기에 바빴지만, 국민의 비대면 접촉 환경을 활성화하기 위해 무슨 교육을 하고 무슨 지원을 했는지 한심했습니다. 나라 빚을 계속 늘리고 예산을 겁도 없이 5백조 원을 넘게 퍼부으면서 말이죠. 식당에는 천정에서 내려오는 투명한 비닐 스크린이라도 권장해 방역을 강화하고 자영업자를 보호했어야 합니다. 코로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릅니다. 작년 2월에 영국의 가디언 지는 가브리엘 륭 홍콩대 공중보건의학과 과장의 말을 인용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인류의 60퍼센트를 감염시켜 5,0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절멸되지 않고 계절병으로 정착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눈 내린 빙판 거리에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날씨조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북극 한파로 우리를 공격하여 100원도 아끼는, 없는 사람들을 더 고통받게 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면 거친 바다에 난파선의 널조각을 잡고 표류하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줄 게 없으면 서로가 따뜻한 마음이라도 전해야 한다고 느끼는 정초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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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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