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이 고발되지 않은 이유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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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이 고발되지 않은 이유

2021.01.11

최진석은 이름난 철학자로 서강대 명예교수입니다. 그는 꼭 한 달 전인 작년 12월 11일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이틀 전 국회를 통과한 ‘5·18 역사왜곡금지법’을 반대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법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최진석이 언제 처벌될 것인가가 궁금했습니다. 그가 이 시에서 이 법을 만든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잡아가려면 잡아가라고 소리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첫 연을 옮겨보겠습니다.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그의 5·18 왜곡과 폄훼는 뒤에서도 계속됩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 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속았다.”가 가운데쯤 나오고, 이어서 “5·18아 배불리 먹고/최소 20년은 권세를 누리거라/부귀영화에 빠지거라/기념탑도 세계 최고 높이로 더 크게 세우고/유공자도 더 많이 만들어라/민주고 자유고 다 헛소리가 되었다./5·18 너만 홀로 더욱 빛나거라./나는 떠난다.”라고 썼습니다.

그의 SNS나 이 시를 다룬 기사에는 그의 학문적 성과까지 폄훼, 무시하며 호되게 욕하는 댓글이 많이 붙었지만 아직 그를 고발한 사람이나 기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5·18을 왜곡한다고 목청껏 부르짖은 그를 법정에 세우면 일벌백계의 효과를 거둘 텐데, 그를 욕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심히 침해하기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을 누를 만한 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한 이틀 뒤 발표한 <‘나는 5·18을 왜곡한다’를 발표하고 나서>라는 글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역사 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심히 침해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와 자유의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아무리 이해가 안 되고 꼴 보기 싫어도 ‘역사의 정신’으로 힘들게 제압하면서 가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꿀 때의 주장도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좌지우지 말라는 것이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하여 북한 어뢰 공격으로 결론지어 공식 발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함 왜곡 처벌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의 소지가 있어서 법안 소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6·25보다 더 큰 일이 있을까?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왜곡처벌법을 만들지 않는다. 민주와 자유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민주와 자유는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독재의 첫걸음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표현 내용을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것으로 출발한다. 모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왜곡처벌법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나는 5·18을 왜곡한다’가 발표된 후 이 법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겨났습니다.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김재호가 지난달 22일 전남대 교직원 온라인 게시판에 “민주주의와 5·18을 모욕하는 악법을 폐지하라”라는 성명서를 올린 데 이어 폐지를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도 시작됐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한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들도 이 법이 폐지되어야 할 이유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를 정면에서 제한하는 법이며, 5·18이 1987년 이룩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됐는데, 이 특별법은 5·18의 기본 정신과 모순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5·18이 민주화운동만은 아니었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5·18로 민주화가 되었지만 5공 군사정권이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도 5·18로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5·18이 가져온 이 자유가 5·18로 다시 죽게 됐다는 게 이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가르침과 경구는 많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가말리엘의 가르침일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수제자인 베드로가 그리스도 추종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며 ‘소요’를 일으키자 그리스도 박해에 앞장섰던 바리새인들은 이들마저 탄압하려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지도자 가말리엘은 내버려두라고 지시합니다. “(베드로 등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면 너희가 무너뜨릴 수 없지 않겠느냐?”고 물으면서 말입니다.

“옳은 것은 누구도 못 무너뜨리지만 틀린 것은 스스로 드러나 허물어진다”는 이 가르침은, 지난 몇 달 사이에 보셨다시피, 수시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나는 5·18을 왜곡한 최진석이 고발되지 않은 것은 ‘5·18 역사왜곡금지법’을 만든 사람들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믿음과 그것을 지키려는 용기를 폄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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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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