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난장판에서 춤을 춘 庚子年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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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난장판에서 춤을 춘 庚子年

2020.12.29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잃어버린 1년’이 되어버린 경자년 한 해는 법(法)이 난장판에서 춤판을 벌인 또 다른 한 해이기도 합니다. 권력기관 개혁 3법이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경찰법 개정안이 줄줄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5·18왜곡 처벌법과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도 처리됐습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 건수가 1,080건(발의안의 18%)에 달한 입법 또는 개정 법안이 무엇들인지는 다 알 수도 없지만, 거대 여당이 우격다짐으로 만든 ‘입법개혁의 완결판’이라고 합니다.

그 난리통에 1년 넘어 여야가 치고받으며 파문을 일으킨 조국 서울대 교수의 부인 정경심 씨가 1심 판결(징역 4년, 벌금 5억 원, 추징금 1억4,000만 원)과 함께 23일 밤 법정구속됐습니다. 15개 중 11개 혐의점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 쿠데타’라 공박했던 여권은 “감정이 섞인 판결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우상호 민주당 의원)”고 비난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사필귀정”이라고 응수했습니다. 법가와 논객들의 온갖 법리 해석과 추론들로 법도 모르는 우맹(愚氓)들에게는 법인지(法認知) 학습효과가 컸습니다.

# 엄격한 법은 그 법을 만든 사람을 죽일 수도

하루 만인 24일 밤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직무정지(정직 2개월)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 재판부가 받아들여, 윤 총장은 징계처분 9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습니다. ‘장관의 명(命)을 받아들이면 좋게 넘어갈 일을 총장이랍시고 거역한…’ 윤 총장의 되받아친 돌이 추 장관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간 꼴입니다. 정직처분을 재가한 문재인 대통령은 토를 단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진(秦)나라 상앙(商鞅)이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죽게 된 고사가 떠오릅니다.(2019년 10월 7일 자유칼럼 참조)

“나는 공화당의 판사가 아니다. 법에 따라 판결한다.”
‘미국이 왜 이래?’ 싶던 차에 지난 21일 위스콘신 주 브라이언 헤이지던 대법관(42)이 던진 한마디가 머릿속을 크게 울렸습니다.
지난해 보수 성향의 공화당 지지로 임기 10년의 주대법관 선거에서 승리한 브라이언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소송에서 선거 결과 취소 요청을 기각했습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지지자가 싫어할 결정을 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적 압박에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 미국의 힘”이라고 말한 그는 ‘배신자’ ‘거짓말쟁이’ ‘중국 공산당에 매수된 사람’이란 욕설·비난과 함께 아내와 다섯 자녀에 대한 안전 우려도 커지고 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힘은 다른 주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조지아 주 브래드 래펜스퍼거 국무장관과 펜실베이니아 주 선거관리위원 앨 슈밋 등도 선거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는 트럼프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살해 협박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 다 공화당원이라고 합니다.

# 범법자를 만드는 법률은 많아도 그들을 벌하는 법률은 적다

법이란 무엇인가?
아테네의 법률을 만든 솔론(BC 630~BC 560추정)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만든 법이 가장 좋은 법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습니까?” 솔론이 대답했습니다. “천만에 말씀, 아테네 사람에게 꼭 맞게 만들었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AD 56~117)는 “나라가 부패하면 부패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법률이 늘어난다. 옛날엔 범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지금은 법률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법의 폐해를 지적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법은 필요악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한(漢) 원년, 유방은 진(秦)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여러 제후국 명사들을 모아 놓고 법삼장(法三章)을 발표했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 △물건을 훔친 자는 정도에 따라 벌주고, △그 밖의 진나라 악법은 모두 폐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총신 번쾌· 장량의 간언을 토대로 한 왕조 400년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세에 이르러서도 ‘법률이 많을수록 공정이 적어진다’(영국 격언), ‘법이 너무 많아 한 가지라도 어기지 않고는 숨을 쉴 수가 없다’(스타인벡)고까지 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원천적으로 법에 대한 부정적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영국의 시인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1730~1774)는 일찍이 “법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부자는 법을 지배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지성인들이 법의 적폐를 지적했습니다. “우리들은 범죄자를 만드는 많은 법률을 제정할 뿐이다. 그들을 벌하는 법률은 적다”, “가장 엄격한 법률은 가장 나쁜 해악이다”(키케로), “잘못된 법률을 개정하는 법률만큼 잘못된 것은 없다”(파스칼)는 주장들입니다.

200여 년 전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법학자들은 아직도 법의 개념에 관한 정의를 찾고 있다”고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정의(定義)는 오리무중입니다. 법이 인간이 만든 허구(虛構)이기 때문일까요? 국민의(국민이 원하는), 국민에 의한(국민의 진정한 대변자에 의한), 국민을 위한(국민의 행복을 위한) 법을 찾지 못해 그럴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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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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