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는 ‘환희의 송가(頌歌)’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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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환희의 송가(頌歌)’

2020.12.24

연말이 되면 성탄절 노래와 더불어 가장 많이 들려오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의 멜로디는 단연 베토벤의 <교향곡 9번>, 그중에서도 합창곡 부분인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가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탄생 25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고, 저물어가는 요즘 더 자주 그리고 더 감성적으로 감상하게 되는 선율(旋律)입니다.

거기에다 올해 12월 24일은 70년 전인 1950년 한국동란이 발발한 그해 말 미 해군의 수송선에 피란민을 가득 태우고 흥남 부두를 떠난 날, 이름하여 ‘흥남 철수 작전’의 마지막 선박이 항구를 뒤로하고 떠난 날입니다. 10만여 명이란 엄청난 피란민을 대형 군 수송선(LST) 및 전함에 분산·승선시켜 수송한 민족 대이동입니다. 세계사에 기록된 이 역사의 중심에 젊은 의사 현봉학(玄鳳學, 1922~2007) 박사가 있었기에 더욱 빛납니다. (자세한 사항은 자유칼럼 2014.12.29. 참조 요망)

10년 전, ‘흥남 철수 작전’에 미 해군 함대에서 근무했던 젊은 해군 장교가 제독으로 퇴역해 예비역 장성으로 우리 국가보훈처의 초청을 받아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필자는 현추모(현봉학 박사를 추모하는 모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보훈처가 마련한 환영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는 제독과 더불어 ‘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해군 사병 출신과 그 가족도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자연스레 당시 흥남 부두에서 승선만을 기다리던 엄청난 수의 피란민에 얽힌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순간, 필자는 긴장했습니다. 승선 과정에 떼로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되는 현장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 의외였습니다.

함선 내 미군 요원은 피란민이 승선하면서 몰아닥칠 비상사태를 예상하고 모두 무장을 마쳤다고 합니다. 피란민이 승선할 때 큰 혼란이 발생하리라 예측하고 예방 차원에서 여차하면 공포탄을 발포할 준비를 단단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윽고 LST 수송선의 문이 열리고 승선해도 좋겠다는 신호를 하자 그 많은 피란민은 어떤 서두름도 없이 질서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막상 놀란 것은 함선의 해군 요원들이었습니다. 그 질서정연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입니다. 한 사병 출신 참석자는 자기 집 응접실에는 그때 이후 지금까지 한국 태극기가 자리 잡고 있다고까지 ‘진술’했습니다. 동행한 부인이 증거물인 양 태극기로 장식한 거실 사진을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필자는 놀라기도 했지만, 그런 증거와 증언을 들려준 그들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매우 자랑스럽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 지역에 강한 지진과 함께 쓰나미가 발생하고, 원자력발전소에 가공할 대형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때 국내 언론 매체는 후쿠시마 지역의 엄청난 참상을 보도하면서, 그곳 주민들이 얼마나 침착하게 대응하는지를 크게 부각하곤 했습니다. 긴 줄서기를 마다하지 아니하며 질서를 지키는 일본인의 모습을 칭송하는 보도가 일색이었습니다. 보도의 배경에는 그런 자세를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분명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인간(新人間)’이라는 찬사도 곁들였습니다.

필자는 당시 그 보도를 보면서 ‘흥남 철수’에 참여한 미 해군 장교와 병사의 일관된 ‘증언’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피란 군중이 승선을 기다리며 12월의 그 추운 허허벌판 부두에서 4~5일을 동안이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던 모습에 감탄했다고 했습니다. 필자가 그 상황을 상상해보아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2014년 영화 <국제시장>이 크게 히트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우리 피란민들이 서로 앞다투며 승선하는 ‘흥남 철수’ 장면이 부각되었습니다. 수송선인 LST 이외에 전투함에도 피란민이 승선하다가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아마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혼란스러운 승선 장면은 영화의 생태적인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해 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Bauhaus 100년 특별전>을 관람하던 중 우연히 귀중한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자료사진 참고) 바로 독일 사진작가가 포착한 1950년 흥남 부두 장면이었습니다. 그것도 미군용 수송선 LST에 승선하기 위해 기다리는 피란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기다림의 길고 긴 대열’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미군 수송선 요원들의 ‘증언’이 사진으로 입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흥남 철수의 모습 (1950.12.23.)

‘흥남 철수 작전’ 70주년과 악성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생각하니 절로 ‘환희의 송가’가 떠올라 다시 CD를 찾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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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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