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태가 된 기가막힌 임대차 3법...도대체 누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구경비·위로금·월세 대신 연세···임대차 3법은 ‘귀태’?


[아무튼, 주말] 집주인·세입자 꼼수 점입가경


#1.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 대치동 아파트에 전세 사는 A씨는 최근 계약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집주인은 “종부세 등 세금 부담이 너무 크다. 기존 보증금에서 시세가 올라간 금액만큼 월세로 바꾸고, 일부는 현금 일시불로 달라”며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본인이 실거주를 하겠다고 했다. 아이 교육을 마칠 때까지 대치동을 떠날 생각이 없는 A씨는 편법인 걸 알지만 집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사이 대치동 전세가 너무 뛴 데다 매물도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2. 서울 강동구의 30평대 아파트를 5억원에 세주고 있는 B씨는 세입자 때문에 골머리 앓고 있다. 몇 달 전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위로금 1000만원을 받는 내용에 합의했지만 말을 바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준 게 이슈가 되면서 1000만원을 더 달라고 버티고 있다.


일러스트= 안병현




지난 7월 말 ‘임대차 3법(전월세 신고제·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요구권제, 이중 전월세 신고제는 아직 미시행)’이 시행된 지 다섯 달째, 집주인·세입자 간 꼼수는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어떻게든 버티려는 세입자,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집주인의 치열한 기 싸움을 살펴봤다.


퇴거위로금? 구경비?

임대차법 시행으로 등장한 새로운 용어 중 하나가 ‘퇴거위로금’이다. 계약갱신요구권(2+2년)을 쓰지 않고 나가는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이사비 명목으로 주는 위로금. 사실상 꼼수다.


송파구에 사는 C씨는 요즘 세입자 때문에 고민이 많다. 전세 계약 만기는 내년 3월. 몇 달 전 세입자가 먼저 이사 비용 등 위로금을 받는 조건으로 만기가 되면 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이후 연락이 잘 안 된다. C씨는 “새 세입자를 구해야 할 시기인데 혹시나 막판에 계약갱신요구권 써 안 나가겠다고 하거나, 터무니없이 많은 위로금을 요구할까 봐 두렵다”며 “내 집인데 세입자 손안에서 놀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대치동 공인중개사 D씨는 “대치동에선 교육 때문에 어떻게라도 붙어 있으려는 사람이 많으니, 주인이 위로금을 5000만원 정도 준다고 해도 꿈쩍 않는다”고 했다.


‘구경비’도 새로 등장한 편법.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요즘은 세입자가 웬만하면 집을 안 보여줘 일정 금액을 주고 집을 보여달라고 한다”고 했다. 이른바 ‘구경비’다. 고 원장은 “보통 한 번에 5만원 정도 주는데 ‘세입자 갑질’인 셈”이라며 “주택은 세입자의 주거권과 집주인의 소유권(재산권)이 대립하는 것인데 권리와 권리의 충돌이다. 그동안은 집주인 갑질이 많았다면 이젠 세입자 권리가 커져 세입자도 갑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 몇 달 거주하고 매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집주인 본인이나 직계존속, 직계비속이 실거주할 경우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 서울 강동구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실거주한다고 말해 세입자를 내보낸 뒤 며칠 살펴보다가 매매하거나 임대하는 경우도 있다”며 “법에 집주인의 일정 기간 거주 요건이 명시돼 있지 않아 편법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임대인이 실거주한 게 아니라고 임차인이 손해배상청구를 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세입자를 내보내고 보자는 집주인들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창섭 우대빵부동산중개법인 대표는 “집주인이 실거주할 예정이라며 세입자에게 나가라고 통보한 다음 은행에서 전세 퇴거 자금 대출(전세 보증금 반환자금 대출)을 받고, 잠깐 실거주하는 것처럼 했다가 매수인을 찾아 팔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이 거짓으로 갱신 요구를 거절하고 다른 ‘임차인’에게 세를 놓는 경우 명백한 위반이지만 실거주 목적의 ‘매수인’이 들어오는 경우는 위반이라는 규정이 없다. 매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정 일자가 없어 세입자가 확정일자 열람을 통해 집주인이 실제로 거주하는지도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정태우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이 실거주 사유로 임차인의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데, ‘의무 거주 기간'은 명시돼 있지 않아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임대인의 의무 거주 기간을 법령으로 정하면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사회적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 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직장인 김정은(27)씨는 최근 서울 마포구에 반전세로 오피스텔을 구하면서 “월세 1년 치를 한꺼번에 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일명 ‘연세(年貰)’ ‘선세(先貰)’. 지난 9월 29일부터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전·월세 전환율이 4%에서 2.5%로 낮춰진 데서 온 집주인의 꼼수였다.


예컨대 3억원짜리 전세를 보증금 2억원짜리 반전세로 전환할 경우, 나머지 1억원을 기준으로 산정한 월세는 (1억원X0.025)/12=20만8000원. 집주인 입장에서는 이전 4%(33만3000원) 때보다 매달 12만5000원씩 월세를 적게 받는 셈이다. 일반적인 집주인이라면 재계약에만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받지만 김씨가 알아본 집의 주인은 등록임대주택 사업자인 탓에 신규 계약에도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받았다.


김씨는 “집주인이 월세가 사실상 깎였으니 이 정도 편의는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도배·장판도 안 해준다고 하고, 월세를 한꺼번에 낼 경우 월세액 공제를 해주는 연말정산 혜택 등도 불투명해 계약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집주인은 월세 소득으로 인해 세금, 건보료 등이 늘어나는 것을 피하려고, 월세를 낮추는 대신 나머지 일부 금액을 한꺼번에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예컨대 보증금 2억원에 23만원 월세의 경우 2억원에 관리비 8만원만 매달 내고 나머지 15만원 24개월분을 일시불 현금으로 달라는 것. 관리비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관리비는 월세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월세를 받으면서 임대소득으로는 안 잡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양준환 수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월세가 절반으로 떨어지니 집주인은 목돈으로라도 받겠다는 것”이라며 “임대차보호법 부작용 중 하나”라고 했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 1000가구 아파트 단지에서 딱 두 개 나온 전세 매물 중 하나를 보려고 10여명이 복도에 줄을 서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임대차 3법은 ‘귀태'?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늘자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아니고 ‘주택임대차분쟁법’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주부 부동산 논객 ‘삼호어묵'은 “정부에서 법으로 세입자한테 갑질할 권한을 줬고, 집주인도 가만히 앉아 당할 순 없으니 거기에 또 대응책을 강구하는 꼴이다. ‘너 진상 부려도 돼!’ 하고 법에 적혀 있으니 당당히 진상을 부리는 것. 법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국토교통부·법무부에서 펴낸 해설집을 보면 ‘편하게 말 바꾸시라’고 말하는 것 같다”며 “이런 변이 있나 싶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정부는 큰 틀을 제시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조정과 합의 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하는데 일일이 세부적으로 명문화하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남편(정부)이 아내(민간)가 한 음식이 맛없으면 전문가가 만든 걸 시켜 먹으면 된다. 괜히 자기가 음식 맛을 좋게 하겠다고 소금 넣고 물 넣고 하다 보면 더 엉망이 된다. 정부가 시장에 손을 대면 댈수록 이상해진다는 얘기”라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3법은 뉴욕, 베를린 등 몇몇 도시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정책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품질 저하, 공급 위축, 뒷돈 거래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게 나와 있다”고 했다. 심 교수는 “지금은 세입자가 나가면서 집주인에게 웃돈을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도시들을 보면 결국 집주인이 임대료를 못 올리니 세입자에게 열쇠비(key money·키 받으면서 주는 사례금)나 뇌물을 받거나 관리비를 올리는 편법을 쓸 수 있다”며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는 거다”라고 했다.




김학렬(필명 ‘빠숑')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임대차 3법은 아무 의미가 없는 법”이라며 “국토부의 주거 실태 조사를 보면 자가는 평균 10.5년 사는데, 임차는 3년 산다. 그런데 이사를 못 하게 해 동맥경화에 걸렸다. 임차인들도 계약 갱신 요구를 안 하고 싶은데, 다른 곳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눌러앉는 거다. 임대차 3법이야 말로 귀태(鬼胎·태어나지 말아야 할 것)”라고 했다.


독일이 천국? 월셋집 구하려면 ‘면접’봐야

임차인의 권리를 크게 강화한 이른바 ‘임대차 3법’은 ‘세입자들의 천국’이라고 하는 독일의 임대차 제도를 표방한 것이다. 독일은 임대인이 직접 입주하거나 건물을 철거·개량하려고 할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임대차 존속 기간에도 제한이 없으며, 임대료도 국가나 지역 조합에서 정한 금액 이상 받을 수 없다. 이 얘기만 들으면 ‘천국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현지인들 반응은 조금 다르다. 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 임대차 계약서의 일부. 하루에 몇 분 환기를 해야 하는지, 퇴거할 때 청소비 등이 명기돼 있다. /독자 제공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주재원으로 거주한 김모(37)씨는 “한번 임차인을 들이면 그만큼 내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집을 얻기 위해 집주인들이 면접을 굉장히 까다롭게 본다”며 “얼마 전 한국에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집을 봤다는 건 독일에 비하면 ‘약과’”라고 했다.




독일에선 집을 얻기 위해 집주인에게 신분증 사본은 물론 소득 증명서, 은행 신용 등급 등 월세를 성실하게 지급할 수 있다는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집주인과의 면접에서는 음주 및 흡연 여부, 애완동물 여부는 물론이고 출산 계획 등 지극히 사적인 부분까지 답해야 한다. 아예 집주인들이 매물을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에게만 알음알음 소개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1~2여 항목에 그치는 우리의 임대차 계약서 특약과 달리, 특약만 수십여 개에 달하기도 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1시간 이상 환기할 것, 가구를 옮기지 말 것, 특정 요리를 하지 말 것 등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모두 특약 사항으로 기록돼 있다. 월 임대료의 3배 정도 되는 보증금을 손해배상 목적으로 설정했다가, 특약 위배 시 여기에서 제한다. 물론 특약 위배는 해약 사유도 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며 “임차인의 권리가 높아지다 보니, 월세를 연체하지는 않을지 비협조적으로 나오지는 않을지 경제력부터 인성까지 다양한 부분을 집주인이 살피려 들 것”이라고 했다. 고 원장은 “이미 매물을 부동산에 내놓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거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소개하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전·월세 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김미리 기자 남정미 기자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0/12/12/YU2CLBRLWBESLL3Y7UDN4BDU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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