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까지 간 백사마을 재개발...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송까지 간 백사마을 재개발... 그 뒤엔 변창흠식 도시재생


    신임 국토부 장관에 변창흠 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내정되면서 그가 앞으로 추진할 부동산 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거복지 전문가인 변 후보자는 부동산 안정세를 위해 규제와 증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변 후보자는 과거부터 각종 칼럼과 강연 등에서 기존의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 방식의 도시 정비를 강조해왔다. 낙후된 지역의 건물을 허물어 아파트를 올리고 골목길을 도로로 넓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이 가진 현재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고 보전해 정비하는 방식이다. 변 후보자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으로 있을 당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도시재생 정책과 궤를 함께하며 서울 일부 지역에 이른바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종로구 창신동과 관악구 난곡동이 대표적이다. 특히 창신동은 2015년 서울 도시재생 1호로 선정된 뒤 900억원이 투입됐지만 낙후된 주택과 도로에 대한 주민들의 불편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전경./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도시재생 통해 기업형 협동조합” 주장

‘도시재생’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한 개념이다. 박 전 시장이나 변 내정자를 비롯해 도시재생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성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쇠퇴하는 과정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도시재생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들이 말하는 도시재생이란 단순한 정비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고, 주민들 간의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사회적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변 후보자 역시 지난해 3월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전국 도시재생 1호 사업지인 창신숭인에서 전국 최초로 협동조합형 도시재생기업(CRC)이 설립되었지만 시설관리와 판매유통 중심이다. 우리나라의 주택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는 개별단위 사업에 머물 만큼 아직은 초보 단계에 있다”고 했다. 도시재생을 통해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내고, 이 협동조합이 기업형으로 성장해 사회적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변 후보자가 강조하는 도시재생과 보존형 정비사업은 추진되는 곳마다 갈등과 반발을 낳았다.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높고 넓은 집을 갖고 싶은 보통 사람들의 욕구와 상충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알려진 서울 노원구의 ‘백사마을’이 대표적이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도심 개발로 서울 청계천과 창신동, 영등포 등에서 주택을 철거당한 주민들이 모이며 형성된 동네다.


지난 12월 8일 찾아간 백사마을은 이제 달동네보다 ‘폐가촌’에 가까워 보였다. 집집마다 빨간색 래커로 붕괴 위험을 나타내는 ‘위험’ 표시가 적혀 있고, 공가(空家)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인기척보다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컸다. 이곳 주민들은 4~5가구가 주소를 함께 쓰면서 생활한다. 집집마다 화장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슬레이트로 지어진 공공화장실을 공유해 사용하기도 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2월 7일 경기도 과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SH 사장 당시 백사마을 재개발 떠맡아

30여년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떠돌던 백사마을은 2008년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개발 논의가 시작됐다. 2011년 9월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지역 원형을 최대한 살린 재개발 방식이 결정됐다. ‘박원순식 재개발’, 곧 도시재생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2016년 1월 사업시행자였던 LH가 용적률 등의 측면에서 사업성이 없다며 손을 떼면서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재개발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2017년 7월 변 후보자가 사장으로 있던 SH가 공공사업시행자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당시 서울시와 SH는 백사마을 재개발 설계안 마련을 국제지명공모 방식으로 진행해 여기에 참여한 6개 업체를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당시 승효상 전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커미셔너로 참여해 사업을 이끌었다.


그 결과 당선된 설계안은 백사마을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임대주택 지역은 2~3층의 저층 구조로 짓고, 이와 조화를 맞추기 위해 나머지 개발 지역 중 3분의 2를 4~5층짜리 저층 단지로 짓는 방안이었다. 대신 총 가구수(2000가구)를 맞추기 위해 불암산 자락에 25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배치하기로 했다. 그러자 백사마을 주민대책위원회는 반기를 들었다. 저층 아파트의 동간 가격이 너무 좁아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불암산 앞에 설계된 25층 아파트가 경관을 해친다며 평균 16층 높이로 지을 것을 요구했다.


당시 백사마을 상당수 주민들은 “정치인과 건축가들의 건축 철학을 왜 우리 사유재산에 구현하려고 하나”라며 반발했다. 급기야 이들은 SH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재개발 설계 계약을 해지하라”고 요구했다. 건축가와 주민들 사이의 대립은 송사로까지 이어졌다. 한편 당시 건축계에서는 “엄밀히 따지면 백사마을은 도시재생 축에 속하지도 못하는데 큰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백사마을의 터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바뀌고 ‘재생’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평가다. 주민들과 건축계 모두 만족하지 못할 방식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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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건축가 소송전으로 비화

백사마을 주민들과 건축가, 서울시 사이의 대립은 결국 건축가와 설계안을 교체하고 평균 층수를 16층으로 맞춰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으로 바뀐 후에야 마무리됐다. 다만 임대주택 484가구가 들어설 주거지 보전사업 구역(4만832㎡)에는 집터와 골목길 등 마을의 기존 틀을 남기면서 신축 건물을 짓는 방식이 채택됐다. 백사마을은 지난 9월 사업시행인가를 접수하고 승인을 기다리는 상태로, 내년 하반기까지 거주자들을 모두 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키고 착공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백사마을 주민대책위에 따르면, 현재 100여명의 주민이 이곳에 실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변 후보자는 아직 국회 청문회를 거치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 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변 후보자가 구상하는 주택공급 방안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라”고 주문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국회에서 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현재로선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경북 의성 출신인 변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행정학 박사 출신이다. 세종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공간환경학회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한국도시행정학회,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한국부동산분석학회 이사를 맡는 등 도시·부동산 관련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현 정부 들어선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위원직을 맡았다. 학계에서는 ‘도시학’과 경제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라고 본다.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사는 이유가 경제활동의 편의성 때문이므로, 경제학자들이 도시 정책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8일 가본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은 달동네보다 ‘폐가촌’에 가까웠다. 재개발 방식을 두고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백사마을은 지난 9월 사업시행인가를 접수했다. photo 곽승한




‘김수현 라인’과 한국공간환경학회 인맥

변 후보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쪽에서는 현장·실무 경험을 장점으로 꼽는다. 정치인 출신 김현미 장관과 달리 LH와 SH 사장직을 지내며 정책과 현장 사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다. 또 변 후보자가 이념에 치우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도시경제’를 공부해온 인물이므로 합리적인 편에 가깝다는 평가도 한다. 국가건축정책위 소속 한 위원은 “공기업 SH와 LH는 일반 공무원 조직과는 색채가 다소 다르기 때문에 이 두 조직을 이끈 경험이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김현미 장관보다는 현장감 있게 실효성이 나타날 정책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변 후보자는 흔히 ‘김수현 라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청와대 사회수석, 정책실장을 지낸 김수현 전 실장과 한국도시연구소, 한국공간환경학회, 세종대 산업대학원 등 경력의 상당 부분이 겹친다. 특히 한국공간환경학회는 현 정부에서 중용된 여러 인물이 활동한 곳이다. 변 후보자를 포함해 김수현 전 실장, 조명래 환경부 장관,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등이 이 학회에 고문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변 후보자가 2013년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기존 재개발 정책을 이기려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모든 판례를 다 뒤집을 만한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던 발언도 이 학회 모임에서 나온 것이었다. 학계에서는 한국공간환경학회가 국토개발 및 도시정책에 대해 사실상 현 정권의 ‘싱크탱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으로 평가한다.




이런 인맥 탓에 한국공간환경학회는 변 후보자가 LH 사장 시절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의원은 전임자 시절 3년간 17억원(8건)이었던 LH 수의계약 건수가 변 사장이 취임한 2019년 4월 기준 1년 반 만에 36억원(11건)으로 늘었다고 주장했다. 이 중 국토연구원 8건, 한국도시연구소 1건, 미래이엔디가 2건의 연구용역을 따냈다. 이 중 한국도시연구소는 변 후보자가 소장으로 재직했었고, 과거 김수현 전 실장이 근무했던 곳이다. 한국도시연구소 현 최병두 이사장은 한국공간환경학회 4대 학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국토연구원은 총 25억9400만원 규모의 수의계약을 LH와 맺었다. 현재는 고문직을 맡고 있는 강현수 원장도 한국공간환경학회 9대 학회장 출신이다.

곽승한 기자 [주간조선]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0/12/13/YKDZTVYOPRFXFPIUA7TMP2PZ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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