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로또' 앞으로는 없다"...미래세대의 저주?


미래세대의 저주, 재건축 '로또'는 이제 불가능하다


고밀화는 지속 가능하지도 에너지 효율적이지도 않다.


     고밀개발론, 혹은 고층화 예찬론자들은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를 자주 인용한다. 용적률 133%의 뭄바이 시내의 교통 체증이나, 파리의 비싼 집값으로 예술가들이 밀려났다는 이야기를 보면, 과연 해법은 고밀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럼 얼마나 고밀화하면 좋을까? 200%보다는 500%가 좋고(공공재건축 ‘용적률500%-50층’ 허용..수도권 13만호 공급), 그보다는 700%가 좋으며(내년 1월까지 도심 역세권 주거지역 용적률 700% 법제화), 그보다는 1,000%가 좋을까?(서울 주요 역세권 용적률 1000%로 두배 상향 추진)




컴팩트 시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용적률은 무조건 높이면 좋을까? 적정선이라는 건 없을까? 이 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탄생했다.


앞서 ‘컴팩트시티’ 오독 비판(상)에서는 ‘아파트를 무조건 높이 짓는다고 서민의 주거난이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건 참으로 관념적이고 순진한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간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고층화의 한계 이익은 여러 면에서 줄어든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수직이동’을 위해 할당해야 할 공간은 점점 늘어난다. 즉, 가용 면적은 점점 줄어든다.




고층화할수록 쓸 수 있는 한 층의 면적은 줄고, 단위 면적당 건축 비용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어느 수준 이상부터는 에너지효율 측면에서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택 평수가 커지고 단위 면적당 수익이 커져야 하는 바, 주로 고급주택으로 공급되기에(60층이 넘는 타워팰리스, 하이페리온, 래미안 첼리투스, 모두 고급 주택이다), ‘서민의 주거난’의 해법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물론 전 국토가 100평이고 인구가 만 명이라면 용적률 십만%도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 그 정도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 아파트를 초고층화하려면 ‘타워팰리스’와 같은 고급주택으로 건축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즉, 초고층 아파트는 서민 주거난의 해법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출처上善若水

오늘은 시리즈의 중(中)편으로, ‘생애주기’ 차원의 통시적 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에너지 이야기, 컴팩트 시티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까지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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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률 뻥튀기 재건축, 미래세대에는 불가능한 행운



앞서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상)에서, 재건축 사업의 재원은 재건축조합원의 자기 분담금도 있지만, ‘일반분양’에서 들어오는 수익에 기대는 바가 크다고 하였다. 이 일반분양 물량의 원천은 ‘늘어나는 용적률’이다. 쉽게 말해 5층짜리가 15층이 되면, 늘어난 10층을 일반에게 분양해서 얻는 수익은 토지주인 재건축조합이 가질 수 있고, 이 돈에 자기 분담금을 보태서 건설사에 공사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계산상 편의를 위해, 건설사의 적정 이윤을 포함한 새집 원가가 4억 원이고, 재건축 후 일반 분양가가 6억 원이라고 쳐보자. 총 원가는 4×15층=60억이다. 이런 경우라면 재건축 비용은 일반 분양 10층분으로 다 회수가 된다(분양가 6억×10층=60억). 조합원들은 자기 돈을 한 푼도 안 들이고, 자기 지분의 토지만 제공하고도 새집을 받는 것이다. 과거의 집값은 2억 원이었지만, 시세 6억 원짜리 집을 공짜로 받는 마법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게 완공 직후 집값이 뛰어 8억이라도 될 것 같다면, 2억짜리 낡은 집에서 오래 살다보니 얻게 되는 시세 차익이 얼마인가. 그래서 오래된 좁은 아파트라도, 재건축을 앞에 두었다면, 이 예상되는 ‘8억’이 반영되어 집값이, 예상되는 일반분양가와 비슷한 6억에서 형성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8억에 팔면 2억이 남는 수준이다. 물론 최근에는 이렇게 뻥튀기 하기가 어려워서, 자기 분담금이 0원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자기 분담금이 1억이라 해도, 2억원을 벌 수 있다면 수익률 100%의 투자다. (계산상 편의를 위한 가정이다)


보통은 전세 가격이 매매가의 50~80%정도인 것과 달리, 이런 곳에서는 1/4수준이 되기도 한다. 전세 가격은 주택의 실제 사용가치를 반영하여 옛 가격 ‘2억’에 맞춰진 1억 6천 수준에서 형성되지만, 매매가격은 미래 수익을 기대하여 6억에 형성되는 경우다. 실제 은마아파트의 경우 올 초 매매가가 20억원 전후일 때 전세가는 5억5천만 원 정도에서 형성되기도 했다.


이런 시스템이 통시적 관점에서 왜 문제가 될까? 건설사 몫과 조합원 몫 사이에서 밀당이 이루어지며, 천 세대면 세대당 천만 원을 절약·낭비하면 100억이 왔다갔다하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오가는 와중에 조합장이 구속되는 일이 왕왕 벌어져서?




그건 다른 문제고, 통시적 관점에서 문제는 5층이 15층 되기는 쉬워도, 15층이 45층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45층이 135층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용케 입지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12층 정도가 36층 정도가 되는 경우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이 30~40년 뒤 재건축 할때에는? 36층에서 108층이 될 수 있을까? 공공재개발로 용적률 500% 허용되면, 15층이 45층이야 어찌어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다음엔? 나중에 135층이 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고층화 자체는 현재도 어렵지 않다. 고층화 되면 주로 고급주택만 공급해서 서민의 주거복지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전편 글에서 지적했지만, 어쩌면 ‘기술 발전’에 따라 ‘고층화의 한계이익 체감’을 극복하는 날이 온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수요다. 인구가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3배 튀기기라도, 5층에서 15층이 될 때와, 45층이 135층이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것도 도시화는 포화상태이고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는 정체된 시대에 말이다. 아무리 1인 가구화로 가구 수는 늘고 1인당 주거 면적도 느는 추세라도, 90층 어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서울 인구가 500만에서 천만이야 될 수 있었지만, 남은 지방 인구를 다 끌어 모아도 3천만이 될 수는 없을진대, 135층으로 지을 기술이 있다손 90층 어치는 누가 와서 채워줄까?


런던 뉴욕 파리보다 잘나가는 ‘글로벌 시티’가 되어 이주민들이 몰려와도 불가능하다. 45층 짜리 주택을 재건축 해야하는 시점에서는 135층은커녕, 10층만 줄여서 35층 정도로라도 지을 수 있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층수가 3배 늘어나는 예를 들었고, 실제로 총 용적률이 3배로 늘어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용적률을 튀겨서 하는 재건축·재개발 방식이 계속해서 작동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가까운 미래에는 이제 ‘축소재개발’에 맞는 재무구조를 고안해 내야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재개발해서 세대 수가 늘어났다는 말은, 그만큼 각 세대의 ‘토지 지분’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서민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서 중소형 주택으로 공급하면, 그만큼 동일 대지에 많은 세대가 들어갔으니, 각 세대의 토지 지분은 더 적겠다. 그럴수록 다음 재개발 때에 조합원의 토지 지분이 적으니 내야 하는 ‘자기 분담금’의 부담이 더 커진다. 사업성 악화의 요인이다. 재건축의 동력이 사라졌다.


극소수 인기가 유지되는 입지 조건의 주택단지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되면 ‘자기 분담금’을 낼 만한 처지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갔을 수도 있다. 건물은 낡고, 자체 힘으로는 재건축이 안 되면 슬럼화는 정해진 수순이다. 입지 조건이 양호하면 주택보다 수익성이 높은 상업지구로 변모하는 재개발계획이 나올수도 있겠지만, 전국의 아파트단지들이 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슬럼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번지면, 이제 재건축을 위해 공공재원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공공의 돈 한 푼 안들이고, 오히려 지자체의 세수도 늘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지 몰라도, 40년 뒤에도 그러란 법은 없다. 오히려 애물단지나 심지어 돈 먹는 하마가 되기 십상이다. 하여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세그리게이션이 문제가 되리라는 것이 나의 우울한 예측이다.


세그리게이션(segregation)이란?

도시학에서는 계층의 공간적 분리현상을 일컫는 개념이다. 특정 지역에 특정 문화권이나 소득계층이 몰려 살게 되면서 서로 생활권의 분리가 일어나면 사회통합에 장애가 되고 심한 경우 슬럼화 되어 폭동이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프랑스 교외(방리우)지역이 한 예다.


주택의 (재)개발로 인구가 늘어나면 해당지역에는 그만큼의 부하가 가해진다. 학교도 더 지어야 하고, 교통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개발사업에 학교용지 부담금이나 교통시설부담금 등을 부과하는 이유다. 롯데 타워의 경우는 교통개선사업에 5천억 원을 넘게 투자했다고 밝히고 있다. 유동인구를 많이 발생시키는 시설이니 그만큼의 책임을 다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용적률을 뻥튀기하는 재건축 사업이라면 비슷한 종류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출처롯데물산 홈페이지 첫 화면


그런데 동시대인들에게 미치는 부담에 대해서는 이러한 각종 부담금으로 그 의무를 다했다고 쳐도, 미래의 ‘뉴노멀’이 될 수도 있는 ‘축소재개발’에 들게 될지 모르는 비용에 대해서는 지금의 재건축 조합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장기수선충당금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이는 계속 사용을 전제로 엘레베이터 수리나 배관공사 등 시설 노후화를 위한 비용을 미리 조금씩 적립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다음 재건축은 축소재건축이고, 공공재원이 결국 투입된다면, 현재의 고밀화 재건축사업으로 조합원들이 향유하는 이익에는, 미래세대의 세금까지도 포함된 것이라 하겠다. 용적률 튀기기에 의존하는 현재의 재건축·재개발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세대간 형평성이나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유다.


건설회사야 ‘아파트 재건축이 어때서’라 여기며 미래세대의 세금에까지 신경 쓸 의무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거위 장사를 하고 싶다면, 황금알까지야 노리지는 않더라도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배를 가르지 않더라도 거위는 언젠가 반드시 죽을 운명이다. 거위 장수야 거위를 팔고 떠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공공정책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남은 거위 뼈를 묻을 자리도 마련해 두어야 하는 법이다.


6. 고층화와 고밀화, 비슷하면서 다른 문제

그렇다면 고층화는 서민의 주거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고밀화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잠깐. 고층화=고밀화 아니었나? 사실 앞서의 설명은 편의상 ‘고밀화’를 ‘고층화’로 등치시켜 설명했다. 바닥 면적(=건폐율)이 같다면, 고밀화될수록 고층화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둘은 사실 조금 다르다. 다세대 주택을 헐고 아파트를 지으면 녹지가 많이 확보되고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고층화=고밀화라고 여겨서 생기는 착각이다. 녹지는 더 확보될 수 있을지 몰라도, 아파트라고 해서 인구를 더 수용하는 건 아니다.


아래 두 사진을 보자. 서울에서 인구밀도가 높은 동네 1, 2위다. 서울에서니까 아마 전국에서도 1, 2위 아닐까 싶은데, 1위는 왼쪽 사진의 행당2동으로 인구밀도가 586.7(명/ha)다. 이런 인구밀도에 기여한 아파트 단지는 아래 사진의 붉은 박스 안의 행당한진타운으로, 2,303세대 규모에 용적률은 294%, 건폐율 19% 다. (네이버 항공뷰)


서울 인구밀도 1, 2위 행당동 vs. 상계5동



출처네이버지도 항공뷰


오른쪽 사진은 2위인 상계5동으로 인구밀도는 579.2명/ha다. 1위와 거의 차이가 없는데, 여긴 대부분이 소위 ‘빌라촌’이다. 용적률이 300%를 살짝 넘는 소규모 아파트 단지 3개는 합치면 1,123세대 수준이고 평범한(?) 아파트도 좀 있지만, 흔히 보는 다세대 다가구 주택으로 지어도 인구밀도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주차 편의에서는 행당동이 우위를 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건 고층화 해서가 아니라 지하 주차장 때문이라면, 다세대 다가구 주택도 단지화해서 지으며 지하에 주차장을 넣으면 해결될 문제다. 다른 관점에서는, 이제 주차대수가 다소 부족한 것은 이제 재건축이 아니라 공유 차량 시스템을 도입해서 풀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도심에 사는 대가이자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직은 너무 과격한 주장일지도 모르겠다. (집이 낡았거나 마을에 소방차나 구급차가 접근하기 어렵다면야 다른 문제다.)


1, 2, 3인 가구 등이 어울려 살거나, 주거 이외의 도시의 다양한 활동을 담아내는 생태계로서는 ‘빌라촌’이 좀 더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절대적인 건폐율의 차이로 인해 공원과 같은 오픈 스페이스가 많아질 수는 있어서 아파트가 좀 더 쾌적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위의 상계5동 빌라촌은 2종일반주거지역으로, 건폐율이 60%이니 빈땅이 40%라는 이야기고, 군데군데 흩어져있다. 건폐율이 20%인 아파트 단지의 빈 공간은 80%로 총량으로도 빌라촌의 2배이고, 흩어져있지 않다.


 


그러나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는 중고층 병풍에 둘러싸인 단지 내 공원이 주는 ‘배타적인 개방감’과 그래도 40%정도는 빈 틈이 있는 3~4층 건물들 사이에서도 어쩌다 있는 쌈지공원이 주는 효용은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아파트 단지의 경우는 담장 외부의 가로는 완전히 죽어버리게 된다. 이에 아파트 단지 가로의 도시설계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폐쇄형 단지가 아닌 개방형 단지’로의 전환이 대안으로 꾸준히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밀도론’과는 다소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루겠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가로공간 중심 도시’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원래 논의로 돌아오자면, 결국 (당연한 이야기지만)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용적률’을 늘려야 한다는것이다. 이쯤에서 서울시의 구별 인구밀도를 보자. 아파트가 많은 노원, 도봉, 강남, 서초구는 인구밀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오히려 ‘빌라촌’이 많은 동대문구, 중랑구, 광진구, 등이 인구밀도가 높다.


서울과 세계 대도시의 인구밀도

출처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흔히 쉽게 생각해왔던 것 처럼, 이 빌라촌들을 아파트로 재개발하면, 인구밀도가 더 높아질까? 오히려 서울시가 수용가능한 인구는 오히려 줄어드는 건 아닐까? 아니면, 안 그래도 옆 구보다도 더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구들이,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게 하기 위해서, 이 빌라촌들을 (주차난 해소, 커뮤니티 시설 확충 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옆 동네 아파트보다 빽빽하게 용적률 500%, 700%로 개발해야 할까? 정말?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비교해보면, 대개 서울시보다 인구밀도가 더 낮은데, 파리가 예외다. 여기서 또 잠깐, 파리는 고도제한의 강력한 규제로 공간에 대한 수요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한 사례로 알려져 있지 않았나? 글레이저도 그의 명작 [도시의 승리]에서 “..신축 건물 제한 때문에 과거 배고픈 예술가들을 환대한 것으로 유명했던 파리는 이제 부자들이나 살 수 있는 도시가 됐다.”(p32)고 강조하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데이터는 말한다. 파리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라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쫓겨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팔자 좋게 낮은 인구밀도를 유지해서는 아니라고. 물론 중저층으로도 이 정도 오픈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건물재료와 기후에 따라 ‘맞벽건축’과 ‘중정’이 보편화된 도시였고, 굳이 남향을 선호하지 않는 주거문화였기에 가능한 배경도 있다. (이들은 차라리 서향을 선호한다)


파리가 녹지는 서울보다 더 많은 것 같고, 건물들의 크기도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 방문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은 왜 이런 느낌일까? 정작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생활 녹지는 적지만, 평소에는 가기 힘든 외곽의 그린벨트에 있는 녹지 면적이 어마어마해서, ‘행정구역상 서울’의 평균 녹지면적은 크게 나오는 ‘통계의 착시’ 때문이다. 파리의 인구밀도가 낮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화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어쨌든 인구 밀도가 제일 높은 도시라 할만한 파리로서는 마치 ‘컴팩트하지 못한 도시’의 대표격으로 등장하고 ‘공급이 모자라서 수요를 못 쫓아가는 사례’로 언급되면 상당히 억울한 노릇이다. 몽마르트 언덕이 나오는 영화의 관람객이나 에펠탑 앞에서 관광객의 눈으로 볼 때와는 달리, 파리는 이미 충분히 컴팩트한데 말이다. 여기서 과연 파리가 더 고밀화했다고 해서 예술가들이 쫓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글쎄, 서울의 홍대거리가 건물 밀도가 낮아서 예술가들이 쫓겨났던가, 생각해보면 되겠다.




6절을 정리해보자.


 

인구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파트냐 빌라냐, 혹은 고층이냐 저층이냐가 관건이 아니라 용적률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미 저층주거지로 이루어진 도시나 구들의 인구밀도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보다 높다.

‘용적률이 어떤가’가 관건이라는 말이다.



지금보다 더 인구밀도를 높여 컴팩트 해지기 위해서는 같은 용적률 안에서 상계5동과 같은 ‘빌라촌’을 행당2동과 같은 아파트로 바꾼다는 게 다가 아니고, 용적률 자체를 높여서, 저 행당동 사진의 아파트보다 한참은 더 높은 아파트로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타워형’으로 비껴짓는 것만으로는 인동간격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인동간격 규제가 완화되고, 건폐율이 높아지면, 그동안 아파트가 자랑해온 ‘쾌적성’도 무너진다. 반복되는 질문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컴팩트시티 오독 비판(상), (중)에 걸쳐 우리는 쭉 살펴 보았다. 단순히 건물을 아파트로 바꾸는 게 아니라 ‘용적률 상향’시에는


 

기반시설 부하가 증가하고,

환경 쾌적성이 저하되며,

한계이익은 체감하고,

재난 리스크가 증가하며,

쾌적성을 위해 얇고 높게 (건폐율이 낮게) 지으면 주로 대형 주택 위주로 공급됨에 따라 중저소득층 수요에는 부응하기 어렵고, 훗날 후속세대의 세금으로 축소재건축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7. [도시의 승리] 올바로 읽기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 시대에 에너지 효율을 위해서라도 고밀화를 하는게 정답일까? 이 논의를 위해 우선 나는 고밀화론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도시의 승리]를 제대로 읽자고 제안한다.



글레이저는 그의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한다. 녹지에 둘러 쌓인 집에서 살고 싶은 ‘환경친화적인 욕심’으로 저밀도 도시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교통비용을 증가시키고, 에너지효율을 저하시켜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를 더 악화시킨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럼 과연 어느 정도 고밀화가 적당한가 하는 것이다. 용적률, 현재의 250%보다는 500%? 그보다는 700%?나 1,000%?


물론 도시마다 역사적 지리적 맥락이 다르니, 일률적인 공식처럼 특정 수치를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글레이저 자신이나, 그의 명작을 오독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도시들 사이의 기후의 차이, 교통체계의 차이, 이들을 종합한 에너지 효율의 본질이다. 그리고 글레이저의 얼마간의 ‘공간인지적’ 관점에는 미치지 못하는 ‘시간인지적’ 관점이다.


파리가 저밀도의 도시라는 오해를 했을지언정, 글레이저가 참으로 올바로 지적한 것은, ‘모여 사는 것’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장점이다. 그는 가령 195.3명/km2 이상의 국가들의 평균 기대수명이 그 이하보다 6개월 더 길고, 39명/km2 인 경우보다는 9개월이 더 긴 점도 계산해냈다.


도시화로 장티푸스타 콜레라가 유행하고, 최근에는 지구화로 인하여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유행했지만, 어쨌든 도시화로 인한 진보가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한 점도 분명히 있다. 물론 ‘경제발전’이라는 매개변수가 있어서 기대수명도 길어지고 더 밀도 있게 모여산 측면도 있겠지만, 어쨌든 팔자 좋게 흩어져 사는 것은 지구에게도 인간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는 지적은 적절하다.


또한, 글레이저가 적절하게 한탄한 것은 저밀도 주거단지에 살면서 먼 도심으로 자가용을 몰고 가면서 생기는 탄소 배출의 문제였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도시 스프롤(Urban sprawl; 무분별한 도시확산) 현상이 심화되었다며 그는 뉴욕주 레빗타운을 예로 들었다. 아래 사진이 레빗타운의 모습인데, 과연 자동차 없이는 살기 힘들겠고, 건물들이 다 단독주택이니 (그곳 기후는 잘 모르겠으나, 필요할 경우라면) 단열 등의 에너지 효율도 떨어지고 탄소배출 문제도 심각하겠다. 이 레빗타운의 인구밀도는 29명/ha이다. 컴팩트 시티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래빗타운은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글레이저의 ‘집중론’은 멈포드나 슈타인, 바우어와 같은 ‘탈집중론자’에 대한 반론에 가깝고, ‘적정 집중도’가 얼마인지 제시를 안했을 뿐이지, 글레이저가 ‘초과집중’을 하자고 한 것은 아니다. (초과집중에 관한 그의 고민을 자세히 밝히지 않은 게 아쉽긴 하다.) 헥타르 당 29명이 살면 곤란하니 고밀화하자는 그의 주장을 듣고, 강남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있다고 해서, 헥타르당 554.8명(세대당 3명일 경우)이 사는 은마아파트의 용적률을 두 배로 늘려서 1109.6명이 살아야 할까?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 단지의 인구 밀도는 654.5명/ha (용적률 284% 건폐율 17%, 세대당 3명 기준)인데, 이 정도로도 모자라서 더 컴팩트 해져야 할까? 글레이저는 미국의 주거 밀도를 높인다면 운전과 신규 주택 에너지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절반 정도 줄일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러기 위해 은마아파트를 지금의 두배로 키워서 헥타르당 1,000명이 넘게 살자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래 왼쪽은 스웨덴 말뫼의 Bo01지구다. 도시재생과 신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인구밀도는 106.3명/ha 로 한국 아파트 단지의 1/4~1/5의 ‘저밀’ 수준이지만, 에너지효율이나 탄소 배출은 훨씬 더 적게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도 유럽에서는 고밀개발에 속하는 것으로 소개되는데, 이미 여기의 4배가 넘는 밀도에 살고 있는 한국이 더 이상 컴팩트해져야 할까? 그래야할 만큼 다른 방도가 없을까?


말뫼의 Bo01 지구 일부 모습(왼쪽)과 강남의 아파트 단지 모습


그렇다면 정말 한국에서는 어느정도 인구밀도가 ‘컴팩트’함의 가치를 실현하는 최대치일까? 에너지 효율차원에서 보면, 건폐율이 높아져서 인동간격이 줄어들어 일조량이 감소하게 되면, 난방 부하가 증가한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에 한정되지만, 고층화가 되어 건물 전체 면적에서 지붕면적의 비중이 줄어들면, 그만큼 태양광 설치면적 비중이 줄어드는 셈이 된다. 기타 건물의 가로 세로 비율 역시 냉난방 부하에 큰 영향을 주므로, 무조건적 고밀화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조상규, 이진민 2010). 서울의 경우 2016년 에너지 소비분야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건물 부문이 67.5%였다는 점(이정찬 외, 2020)을 참고하자.




물론 말뫼 Bo01지구의 인구밀도를 우리나라의 대도시에서 추구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인구가 많기는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 컴팩트해지는 것보다, 혹은 컴팩트해질 때 해지더라도, 단순히 고밀화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체계와 교통 체계를 저탄소 체계로 만드는 것이다.


글레이저는 냉방보다는 난방에 에너지가 많이 들고 특히 ‘자가용 이동’ 비중이 큰 미국의 교외 지역에 주목했다. 인도 뭄바이의 용적률이 133%라며 교통체증의 원인이 마치 낮은 용적률 때문인 것처럼 말한 부분은 글레이저가 남긴 오해의 소지이겠다. 뭄바이 교통체증의 문제는 용적률이 낮아서가 아니라 도로율이 낮아서일지도 모른다. 또는 도로의 위계와 역할 구분 없는 점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뭄바이의 도시계획이나 교통체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불행히도 글레이저에게 뭄바이의 교통난의 원인으로 설명해줄 시원한 답은 나도 찾지 못했다.


또는, 뭄바이와 같이 더운 지방에서는 고밀화를 할 경우 냉방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UNEP에 따르면 세계적 평균으로는 주택 내의 에너지 소비는 주로 난방, 온수, 조리 등 ‘열을 내는’ 부문의 비중이 크고, 냉방과 조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기술 발전 덕분인지 다른 분야의 에너지 소비는 2010년 이후 줄어들고 있지만, 냉방이 필요한 건축연면적의 증가 등으로 냉방분야만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을 생각하면, 냉방 수요의 증가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악순환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듯 지역 마다 다른 기후도 에너지 효율을 생각할 때 놓치면 안되는 중요한 요소다.


인도의 상업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발리우드’의 본고장 뭄바이


국내의 교통체계와 인구밀도에 대해서는 다소 오래 전의 연구지만, 순밀도 기준 500/ha 를 초과하는 도시의 경우 오히려 도시 전체의 교통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안건혁, 1998). 이상의 연구들에 이어 압축도시 관점에서 적정 개발밀도가 무엇인지를 7대 광역시 74개 자치구를 놓고 탐구한 실증연구(조윤애, 최무현 2013)의 결론은, 적정 개발 밀도가 순밀도 기준 528명/ha, 총밀도 기준 220명/ha라는 것이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고밀화의 효용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 하겠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던 당연한 이야기지만, 컴팩트 시티 교통체계의 효능은 단순히 집중해서 고밀화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적게 이동해도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미국의 맥락에서는 자가용 이동량의 감소다.) 성남에 사는 사람이 서울로,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성남으로 출근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양쪽을 고밀개발하여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것이 (물론 그 인구가 전 국토에 퍼져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것 보다야 낫겠으나) 교통 에너지를 줄이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의 근접)이다. 이를 위해 ‘서울 4대문 안을 고밀개발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얼핏, 그럴듯 하지만, 몇 가지 허점이 있다. 무엇보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직주근접’은 공공이 계획한다고 쉽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음 마지막 ‘하편’은, ‘고밀화 하면 직주근접이 이루어지고 교통부하가 줄어들겠지’라는 편안하고 낭만적인 상상을 넘어, 직주근접을 계획할 때 반드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짚고, 주거정책의 공간적 궁극에 있는 국토도시계획적 차원에서의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대안을 이야기할 때까지 너무 지체 되고 있으니, 오늘은 앞에서 살짝 언급한 ‘복선’을 설명하고 마무리 하려 한다. 바로 ‘시간인지적 관점’이다. 공간 문제는 공간 외에 ‘시간’으로도 어느 정도 풀 수 있다. 글레이저가 [도시의 승리]에서 강조하는 ‘고밀화’의 장점이자 컴팩트 시티의 핵심인 교통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법으로는, 지금의 이 도시에서도 재택근무를 확대하거나 주 4일제를 실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출퇴근을 주 5회에서 4회로 줄이면 출퇴근 교통량 1/5을 줄일 수 있다. 용적률 상향보다 확실한 방법이다.


by. 경호 연구자

돈 안되는 부동산 업계에 종사하며 희망은 격렬하지만 너무 느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https://1boon.daum.net/slownews/78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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