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온 벼루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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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온 벼루

2020.11.03

여름엔 뜨겁고, 겨울엔 차갑고, 무거운 이 돌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겨울입니다. 유리컵 몇 개를 싼값에 사려고, 벼룩시장에 있는 그릇가게에 들렀다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시커먼 물체를 발견한 후부터입니다.

 궁금한 것은 꼭 확인하거나 물어봐야 하는 성격이라 저는 쪼그리고 앉아 물체 위에 있던 먼지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크기와 두께는 고등학교 교과서 만한데 위는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의 윤기 나는 검은색 돌로 가운데는 오목하게 타원으로 파였는데, 3분의1은 깊게 3분의 2는 얕게 파여 있었습니다. 벼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덜 파인 부분이 먹이 갈리는 연당(硯塘) 또는 묵도(墨道), 깊게 파인 부분은 먹이 흘러 내려와 모이는 연지(硯池)였습니다. 값을 치르고 연구소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칠흑처럼 검은 돌로 유명한 일본 와카야먀 현 나치(和歌山県那智) 지방의 일명 ‘나치구로 벼루’였습니다. 이 나지(那智)석은 어느 정도의 등급일까요? 중급입니다.

나지석 벼루

벼루는 등급이 있습니다. 등급이 있는 것은 먹이 곱게 잘 갈리는 돌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칼을 갈 때는 숫돌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벼루로 사용할 수 있는 돌은 표면에 벼루 쪽에 쓰는 말로 봉망(鋒鋩)이 있어야 합니다. 봉망을 쉽게 이해하려면 고운 사포의 표면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육안(肉眼)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단단한 돌기들이 있습니다. 즉 좋은 벼루도 고운 사포의 표면처럼 돌기가 적당한 크기로 빼곡하게 표면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돌기가 너무 크면 먹은 잘 갈리겠지만 거칠어 고운 먹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 반대로 너무 작으면 먹은 그냥 미끄러지게 됩니다.

또 크기가 적당한 돌기가 있어도 이 돌기가 띄엄띄엄하다면 좋은 돌이라 할 수 없겠지요. 나지석이 이런 경우로 곱게 갈리지만 오랜 시간 먹을 갈아야 합니다. 고배율의 확대경으로 보면 이 봉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확대경 없이 어떻게 좋은 돌을 찾았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마도 수백 년 간 시행착오 끝에 생긴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상급의 벼루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는 모두 유명한 벼루의 산지가 있는데, 벼루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엔 단계연(端溪砚)과 흡주연(歙州砚) 그밖에 조하연과 징니연을 합쳐 4대 명연이라고 하는데, 수년간 벼루를 쫓아다녔지만 조하연과 징니연은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단계연과 흡주연에 집중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단계연과 흡주연에서도 등급이 또 여러 단계로 갈라져 이것을 공부하는 것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좋은 벼루는 보기에 윤기가 있고 조각이 훌륭합니다.

단계연의 경우 보라색과 녹색이 가장 많은데 표면이 거칠어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단색(單色)보다는 울긋불긋한 것이 좋고 힘줄 같은 것이 보이거나 금 간 것처럼 선이 보이고 윤기가 있으면 최상급입니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은 인사동 필방 등에 가서 가장 비싼 것과 싼 것이 뭐가 다른 가 그렇게 안목(眼目)을 높이고 혹시라도 벼룩시장에서 그런 벼루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시면 됩니다. 바람처럼 먹이 갈린다는 흡주연은 단계연과 비교하면 살짝 아래입니다. 흑청색이고 표면에 비단 실타래 같은 무늬가 보입니다. 단계연보다 딱딱하기 때문에 조각은 별로 없습니다. 두드려 보면 탱탱 맑은 소리가 흡주연에서 나고 단계연은 이보다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벼루가 없을까? 제가 조사해 본 결과 약 28개의 벼루 산지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남쪽엔 남포석(보령석)과 단양석(단양자석)이 있고, 북쪽엔 위원석과 종성석이 있는데 제가 실제 구입해 본 것은 보령석과 단양석입니다. 남포석은 흑색, 단양석은 자주색에 흰 반점이 살짝 있습니다. 손톱으로 살짝 그어 자국이 남는 것이 좋고 뚜껑에 용무늬, 소나무 등 조각이 많은 것은 별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언뜻 생각해도 뚜껑까지 만들 정도라면 바꾸어 말해 아주 귀한 돌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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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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