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해온 은퇴자들..."이 나이에 다시 일하라는 얘깁니까.”


위기 내몰린 은퇴 생활자들…"다시 일하는 것 외엔 답 없다"


임대 소득에 중과세, 1주택 보유세 강화도 추진

저금리에 이자 생활 사실상 불가능해져

소득 없이 자산만 가진 은퇴생활자들 궁지 내몰려


    “차근차근 노후 준비를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나이에 다시 일하라는 얘깁니까.”(70대 강남 거주 은퇴자 A씨)


정부가 종부세 부담을 올리고 임대사업자들의 혜택을 줄이는 등의 부동산 규제 정책을 쏟아내면서 고령 은퇴자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임대사업을 하던 이들은 물론 고가 주택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1주택 은퇴자마저 세 부담이 늘어서다. 여기에 역대 최저 수준의 저금리까지 겹치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냐”는 은퇴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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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사업자 폐지·2000만원 이하도 과세

정부는 ‘7·10 대책’을 발표하며 임대사업자 혜택을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이미 등록한 임대 사업자에 대한 혜택은 유지하되, 새 임대 사업자 등록은 받지 않는 방식이다. 기존 임대 사업자는 임대 의무 기간이 종료되면 등록을 자동 말소하기로 했다. 정부는 2017년 12월 ‘등록임대 활성화 정책’을 발표하는 등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혜택을 줬지만 2018년 9·13 대책을 발표하면서부터 입장을 정 반대로 바꿔 혜택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존 단기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던 은퇴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정부가 양도세 비과세 혜택이 유지되는지 여부를 정확히 밝히지 않아서다. 정부 방침대로면 단기임대는 4년 후 자격이 자동 해지되는데 이 경우 양도세 비과세 조건인 ‘5년간 주택임대 유지’ 조건을 채울 수가 없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검토를 거쳐 이달 중 다시 안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임대차 3법’ 추진도 은퇴자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임대차 3법의 핵심 내용은 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이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이 법을 소급 적용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기존 계약이 만료돼도 임차인이 요청하면 계약 기간을 연장해야 하고, 임대료도 5%로 인상 상한이 정해져 시세에 맞게 올릴 수 없게 된다.


기존에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한 ‘연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 과세’ 방침과 이에 대한 건보료 부과도 은퇴자들의 실질적인 생활 부담을 늘릴 전망이다.


보유세 부담 강화…“평생 산 집 떠나란 거냐”

7·10 대책으로 임대사업을 하지 않는 1주택자라 하더라도 종부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늘었다. 여기에 기존에 예정된 공시가격 현실화율 인상과 공정시장가액 비율 상향이 겹치면서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금액이 ‘자동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연금 등 소득은 일정한데 나갈 돈만 계속 늘어난 은퇴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 장기 보유자와 고령자에게 종부세를 상당부분 깎아 주고 있긴 하다. 예컨대 올해 시가 36억원인 집을 3년째 보유하고 있는 1주택자 B씨(58)가 올해 내는 종부세는 1892만원이지만, 내년에는 종부세 부담이 2940만원으로 확 뛴다. 하지만 같은 주택을 A씨가 10년째 보유 중이라면 고령자·장기보유 공제(올해 60%, 내년 70%)를 받을 수 있게 돼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올해 종부세로 756만원을 냈다면 내년에는 882만원으로, 더 내야 하는 돈이 126만원 남짓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은퇴자에게는 이런 인상폭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친민주당 성향 네티즌 등 일각에서 나오는 ‘집을 팔고 이사가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A씨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젊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데 수십년 간 아내와 살아온 정든 동네를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떠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집 팔면서 양도세를, 새로 사면서 취등록세를 내 가며 다른 곳으로 가라는 건 가혹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집값을 올려달라고 한 적도 없고 생전에 팔아 차익을 챙길 생각도 없는데 정부가 멋대로 올려 놓고 세금만 걷어 간다”고 토로했다.


저금리에 이자 생활자 '비상'

여기에 저금리로 인한 이자율 하락이 겹쳤다. 지난 5월 은행권의 예금금리는 1.07%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5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5월 중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기준 저축성 수신금리는 연 1.07%로 전월대비 0.13%포인트 하락했다. 




저축은행마저도 금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1.76% 수준이다. 지난해 말(연 2.15%)보다 0.6%포인트 가량 급락했고, 중앙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낮다.


시중 금리가 낮아진 것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0.5%로 인하한 영향이 크다. 이로 인해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가 따라 내려가면서 1~2%대 금리를 유지하고 있던 저축은행으로 돈이 몰렸고,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저축은행들까지 금리를 내렸다는 분석이다.


이자소득으로 생활하는 은퇴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자율을 1%로 가정하면 은행에 10억원을 넣어 둬도 매달 손에 쥐는 돈이 8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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