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에는 만년필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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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에는 만년필

2020.07.06

1945년 4월 1일 아이젠하워 원수(元帥)는 1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미국 위스콘신 주(州)에 있는 파커사(社)로 보냈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케네스 파커. 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입니다. 만년필 선물은 잘 받았고, 유럽에서의 궁극적인 적대행위의 종식(독일의 항복)에 공식적인 서명이 있다면 나는 그 만년필을 사용하겠다는 것. 이 두 사람은 1937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다.

약 한 달 뒤 이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5월 7일 프랑스 상파냐 지방 랭스 아이젠하워 장군 사령관실에서 독일의 무조건 항복 조인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조인식에서 미국, 소련, 프랑스, 독일, 4개국 대표가 서명을 했고, 여러 기록에 의하면 이 때.사용된 만년필은 세 자루였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명한 사람은 4명인데 만년필은 세 자루. 이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한 사람이 실수로 만년필을 가져오지 않은 것일까요. 관련 필름을 찾아봤습니다. 독일 대표는 탁자 중앙에 놓인 만년필을 잡아 다른 종이에 써본 후 서명을 합니다. 펜 끝이 살짝 보이고 클립은 화살클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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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표 알프레드 요델이 파커51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위키디피아

미국과 프랑스 대표 역시 같은 모양의 만년필을 잡았습니다. 소련 대표만 다른 만년필입니다. 화살클립에 펜촉이 살짝 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미국 파커사(社)의 파커51입니다. 서명식이 끝나고 아이젠하워는 파커51 두 자루로 V자를 만들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편지의 내용과 필름에서 본 것을 종합하면, 추측이지만 실상(實狀)은 이런 것 같습니다. 조인식 전(前) 연합군 최고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각국 대표에게 만년필을 준비하지 말라는 연락을 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이 연락대로 했지만 소련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소한 에피소드가 앞으로 있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예언처럼 예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 6월 5일 독일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으로 분할 점령하는, 나중에 동서(東西)로 45년간 분단되는 베를린조약 문서에 아이젠하워 원수는 파커51로 서명합니다. 참고로 5월 7일 항복 조인식에서는 아이젠하워 원수는 파커51을 제공만 하고 서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든 파커51은 항복과 분단까지 이래저래 독일에 아픔을 준 만년필입니다.  

파커51 어떻게 생겼을까요?

파커51은 공식적으로 1941년에 처음 출시되었고 197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펜촉의 대부분은 손잡이 속에 들어가 있고 펜 끝만 살짝 나와 있어 뚜껑을 열어놓아도 잘 마르지 않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만년필의 최대 장점은 매우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생산된 1940년대 것들 중에도 아직 현역(現役)으로 있는 것이 많고 1948년 이후의 것들은 고장 난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이젠하워 원수가 좋아했던 것은 물론 올해 94세인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지금도 파커51을 사용하는데 자주색 몸체에 금색 뚜껑의 모델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밖에 트루먼 대통령, 니미츠 원수, 마크 클라크 장군이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만년필일까. 20~30년 전이라면 몰라도 현재 1위는 정반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회사인 몽블랑사(社)의 마이스터스튁 149입니다.  

몽블랑 149는 1952년에 출시되었으니 파커51보다는 아홉 살 적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어 현존 최장수 모델이면서 만년필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만년필입니다. 펜촉을 보면 파커51처럼 감싸 있지 않고 펜촉은 시원하게 오픈되어 있습니다. 이런 펜촉을 오픈 펜촉 이라고도 하는 데 149는 오픈 펜촉의 대표, 파커51은 감싸진 펜촉의 대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정반대라고 하는 것이 이제는 이해되시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149가 51에게서 1위를 빼앗기도 했지만 1990년 독일의 통일 서명에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파커 51이 독일을 나누었다면 독일 몽블랑의 149는 독일을 다시 합치게 한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만년필에는 만년필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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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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