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과학계 연구인력 퇴직 러시...핵심기술도 함께 사라진다


`과학기술 브레인` 1743명 …핵심노하우도 사라진다


NST소속 25개 국책연구기관

원자력 인재 등 줄줄이 퇴장


"보수 적어도 연구하고싶지만

정년제도 벽에 막혀 아쉬움"


베테랑 빠진 대학·연구기관

인력·지식단절 손실우려 커


베이비부머의 퇴장 ②


 

#1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A씨(60)는 올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1995년 입사해 25년간 로봇 소프트웨어 분야 연구에 매진한 A씨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결정체이기도 한 로봇제어 시스템은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이라며 "도전하고 싶은 과제가 많은데 정년의 벽에 가로막혀 연구를 그만둬야 한다니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2 1987년부터 산업부문 국책연구기관에 몸담았던 B씨(61)는 지난해 말 정년퇴직했다.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기계, 발전·담수화플랜트, 터널굴착장비, 지역산업조직 분야를 전공한 B씨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품소재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며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B씨는 "보수는 덜 받아도 좋으니 경제를 위해 더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대표적 싱크탱크인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이 인구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 퇴장으로 인력·지식 단절에 휘청이고 있다. 727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 중 108만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1960년생이 올해로 만 60세에 도달하면서 은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현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되면 고스란히 국가적 손실로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1일 매일경제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 25개 국책연구기관의 정년퇴직 예정자 현황을 살펴본 결과 올해부터 2024년까지 은퇴하는 연구원은 총 1743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기관 정규직 전체 인원 1만4377명 중 12%에 해당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309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288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108명, 한국화학연구원 101명 순으로 베이비붐 세대 `퇴직 러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인문사회 분야 정책 연구기관도 정년을 채운 브레인들이 줄줄이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의 `산하 연구기관별 정년퇴직자 추이` 자료에 따르면 경사연 소속 26개 기관의 연구직 정년퇴직자는 2014년 28명에서 지난해 50명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는 연구원만 61명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2023년까지 퇴직 예정자 수가 가장 많은 산업연구원은 올해 5명을 시작으로 향후 4년간 연구직에서 28명이 빠져나갈 전망이다. 같은 기간 국토연구원은 20명,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7명,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6명이 자리를 잃는다. 해마다 1명 수준이었던 한국노동연구원의 정년퇴직자도 올해부터 평균 4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KDI 지식경제연구부는 그간 연구를 함께 진행한 이재형 전 KDI 전문위원이 퇴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54년생인 그는 5년 전 정년퇴임한 후에도 KDI 요청을 받아 계약직 형태 `촉탁연구원`으로 근무를 이어왔다. 그러나 규정상 이마저도 불가능해진 지난해 말 최종 퇴임하게 됐다. 안상훈 KDI 지식경제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KDI는 이 전 전문위원 퇴임 후에도 여전히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데, 연구원에 함께 속해 있을 때와 비교하면 업무에 불편함이 많다"며 "연구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수시로 토론하고 조언을 구하는 `집적효과`가 중요한데 한참 전에 만들어진 정년 기준으로 인해 이 전 전문위원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수월하지 못하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는 정년퇴직 교원 수가 2015~2019년 각각 42명, 32명에서 2020~2024년에는 59명, 35명으로 증가한다. 사회과학대학도 정년퇴직 교원 수가 2016년 1명에서 지난해 5명으로 증가했다.


 연구원과 교수 인력이 대거 이탈하면서 자칫 연구의 맥이 끊기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정년퇴직자 급증 현상은 우리 사회 인구구조와 맞물린 것"이라며 "문제는 경험 많은 연구인력이 정년을 이유로 그만두면 연구의 질적 저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준 KDI 선임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는 교육·소득 수준이 높다"며 "따라서 저임금·단순노무 일자리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고 이들이 만족할 만한 일자리가 단기간에 늘어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수린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의 고학력·고숙련 인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고 세대 간 지식 전수를 위한 일자리 마련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팀장 이지용 / 김태준 기자 / 문재용 기자 / 김연주 기자 / 양연호 기자 / 김형주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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