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스타 김대희가 생각난 날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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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스타 김대희가 생각난 날

2020.06.12


지난달 26일 “대통령,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 사셨다니 가슴 뭉클’”이라는 연합뉴스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KBS의 인기 프로그램이던 ‘개그콘서트(개콘)’의 간판 개그맨 김대희가 떠올랐다. “푸”하고 웃을 뻔했다. 밥때라면 입에 것이 튀어나올 뻔했다.

기사는 “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사상 최초로 정부가 국민에게 지원한 긴급재난지원금이 국민께 큰 위로와 응원이 되고 있어 기쁘다. 재난지원금이 모처럼 소고기 국거리를 사는 데 쓰였고, 벼르다가 아내에게 안경을 사줬다는 보도를 봤다. 특히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경제 위축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던 국민의 마음이 와 닿아서 가슴이 뭉클하다’고 소회를 전했다”는 내용이었다.

김대희는 2012년 개콘의 ‘어르신’ 코너에 김원효와 함께 출연했다. 코너가 끝날 때쯤 대머리에 흰 두루마기 차림 동네 어르신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돈 마이(많이) 벌면 뭐 하긋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지”라고 경상도 사투리를 한마디 하는 역할이었다. ‘노인들 불만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코너 흐름과 딱 떨어지는 명대사라 매주 일요일 저녁 TV에서 그가 이 한마디 하고 나면 나는 입을 헤벌리고 한참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돈 마이 벌면 뭐 하긋노. 소고기 사묵겠지”는 금세 유행을 탔고, 연말에는 한 방송사가 뽑은 ‘올해의 유행어’가 됐다. 이 말을 패러디한 광고도 여러 개 나왔다. 이미 개콘의 간판이었던 김대희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김대희도 자기가 만들어낸 여러 유행어 중 이게 제일 애착이 간다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좋아진 기분이 몇 사람 빼고는 오래 못 가는 것 같다. 돈 준 사람은 자기 돈 아니니까 아직 기분 좋을지 모르겠으나 돈 받은 사람, 그들에게 소고기 돼지고기 등 물건 판 시장통 사람들 기분 좋았던 게 너무 짧았다. 돈 받아 기분은 좋았으나 소고기는 못 사먹은 사람도 꽤 있지 않았을까?

부총리가 오래전부터 2분기는 더 엄혹할 거라고 말했지만 2분기의 마지막 달이 되면서 그런 느낌을 주는 풍경이 더 많다. 비어 있는 상가가 눈에 더 띈다. 장사를 접고 떠나간 곳이 외출할 때마다 늘어나고 있다. 간판불은 꺼지고, 점포 안쪽은 어두컴컴하고, 비닐봉지와 과자와 아이스크림 껍질, 담배꽁초 따위가 주변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곳 말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물건 값으로 못 받는 진짜 영세 상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대형마트 입구에서 뻥튀기를 만들어 팔던 영감님, 학교 파할 때 잠깐 나타나던 붕어빵 장수, 목욕탕 세신사, 미화원, 이발사 등등 …. 내가 아는 젊은 부부는 개학 때인 3월에 맞춰 학원을 차렸으나 코로나 때문에 문도 못 열었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반으로 깎아줬어도 2월부터 지금까지 매달 50만 원씩 돈 만들어내느라 피똥을 싸고 있다.

KBS는 6월 9일 녹화를 마지막으로 지난 21년 간 계속돼온 개콘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다른 방송에서 더 재미난 예능이 쏟아지고 있고, 유튜브 같은 신매체에서도 웃기는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어 개콘 같은 프로그램은 설 땅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KBS라는 방송사의 특성상 소재에 제한이 있는 것도 개콘 개그맨들을 위축시켰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로 개그맨들은 잠정 중단이 아니라 폐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개콘이 사라진다고 해서 개그와 개그맨과 그들이 유행시킨 유행어는 사라지지 않을 거다. 나만 해도 근 십 년 전에 유행했던 “돈 마이 벌면 뭐 하긋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지”를 소환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김대희를 롤 모델로 삼고 열심을 내는 신인 개그맨들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웃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 말이다. 5월 26일 국무회의 때 대통령 ‘말씀 자료’를 준비한 사람이 그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 그 말씀이 이밥에 소고기국 운운한 김일성을 연상케 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지친 국민들 잠시라도 즐거우라고 김대희의 그 유행어를 살짝 차용해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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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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