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가 판치는 헌재재판관들..."횡적인 지위에서 종적으로 조직체계 파괴"


"소장님 덕에 비 그쳤네요" 헌법재판관의 이 발언에 술렁이는 헌재


워크숍서 헌재소장 띄워주기… 직장에선 흔한 일이지만
한명 한명이 독립된 헌법기관인 헌재선 '이례적 상황'으로 논란
법조계 "헌법재판소의 역할, 유남석 소장에 과도하게 쏠린듯"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9명은 작년 11월 충남 예산으로 워크숍을 갔다. 재판관들이 그날 오전 버스를 함께 타고 서울에서 출발할 땐 비가 내렸다. 그런데 예산의 수덕사에 도착할 때쯤 비가 그쳐 재판관들은 우산을 쓰지 않고 수덕사 경내를 둘러봤다. 이후 재판관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을 때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일부 재판관이 유 소장을 향해 "소장님 덕분에 (경내를 둘러볼 때) 비가 그친 것 같다"는 취지의 '아부성'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정도 말은 상사와 부하들 간에 주고받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와 법원에서는 헌재소장과 재판관들 사이에 도저히 오갈 수 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헌재소장과 재판관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다. 상하 관계로 얽혀 있지 않다. 이 농담이 얼마나 '상례를 벗어난 것'으로 여겼던지 헌재 연구관들에게 이 대화가 파다하게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전직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헌재 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적잖은 헌재 구성원은 이 일을 헌법재판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헌재 연구관은 "동기 법조인이나 친한 사람들이 사석에서 '요즘 헌재는 어떠냐'고 물어올 때 이 일을 자주 말한다"고 했다. 대법원과 함께 국내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비중이 헌재소장 한 명에게 과도하게 쏠려 있는 현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란 것이다.

 


그동안 헌법재판관은 대부분 경력이 오래된 법조인으로 채워졌다. 법원에서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 검찰에선 고검장·지검장 등이 헌법재판관으로 가는 게 관례처럼 굳어져 있었다. 면면이 실력과 경륜을 갖춘 인물이라는 데 별 이론이 없었다. 헌재소장은 대외적으로는 헌재를 대표하지만 재판관 전원이 모여 사건을 논의하는 내부 평의(評議)에선 재판관 9명 중 1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평의 과정에서 헌재소장의 논리를 다른 재판관이 그 자리에서 반박하거나, 반박 자료 수집을 연구관에게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헌재재판관들 온통 문재인파로 구성되어 있다./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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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헌재에선 이런 모습이 전에 비해 줄었다는 평가가 헌재 안팎에서 많이 나온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인사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했다. 현 정권 들어 이뤄진 헌법재판관 인사에선 처음으로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곧바로 헌법재판관이 되거나 순수 재야 출신 변호사가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물론 다양성 차원에서 이런 인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다만 법조계 인사들은 "헌법 관련 경륜·지식 등에서 재판관들 사이의 차이가 클 수 있다"고 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유남석 헌재소장은 판사 재직 때부터 헌법 전문가로 평가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헌재 내에서 발언권이 전보다 상대적으로 강할 수 있다"고 했다. 복수의 전직 재판관은 "현 정권 인사 패턴을 고려하면 유 소장 한 명에게 점점 더 무게가 실릴 수 있고, 이는 헌재 다양성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는 우려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었다"고 했다.
조백건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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