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부동산 대책] 집값 불질러놓고… 당장 대출금지 '초법적 조치'
집값 불질러놓고… 당장 대출금지 '초법적 조치'
[12·16 부동산 대책]
17차례 시장 역행 정책, 文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값 40% 폭등
오늘부터 15억 넘는 아파트 대출 막고 분양가상한제 지역 확대
전문가 "총선 의식, 하루아침에 사유재산권까지 침해하는 조치"
오늘부터 15억원이 넘는 아파트(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를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또 3주택 이상 보유자와 집값이 급등한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은 내년부터 종합부동산세 세율이 최고 4.0%로 중과(重課)된다. 주택 공급이 감소될 것이라는 우려를 고조시켜 최근 집값을 급등시킨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은 서울 대부분과 과천·광명·하남 등 수도권 주요 지역으로 더 확대된다.
정부는 16일 이 같은 내용의 '12·16 종합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2년 7개월 만에 18번째 나온 부동산 대책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가 40% 넘게 상승했고, 최근 3.3㎡(평)당 1억원을 돌파하자 '미친 집값'을 잡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대출 규제 등 중요 정책을 바꾸면서 사전(事前) 예고 없이 군사작전 하듯 '오늘 당장' 시행하는 것은 '초법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7차례 대책이 모두 반(反)시장적이었고, 이 때문에 집값이 더 올랐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시장을 윽박지르는 것은 비슷한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주택 시장 불안이 계속된다면 내년 상반기에 더 강력한 대책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내년 총선을 의식해 사유재산권까지 심하게 침해하는 조치"라며 "하루아침에 대출을 막으면 실수요자들은 더 힘들어지고, 돈 있는 투자자들만 유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책에는 조정대상지역 다(多)주택자가 내년 상반기까지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 중과 부담을 줄여주는, '퇴로(退路)'를 열어주는 정책이 포함됐다. 그러나 대상이 10년 이상 보유 주택으로 한정돼 과연 시장에 얼마나 매물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또 매물을 유도하는 정책이 주택담보대출을 더 조이는 정책과 함께 나와 시장이 반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모순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 공급을 늘리는 대책 없이는 집값 잡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33평형)를 대출을 보태 사려 했던 40대 김모씨는 16일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소식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17일부터 주택 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16억원까지 호가가 오른 이 아파트를 15억원대에 사기로 거의 흥정을 끝냈지만 6억원 정도로 예상한 대출을 받을 길이 없어져 거래는 없던 일이 될 전망이다. 김씨는 "살던 집을 팔고 집을 좀 키워 이사하려 했는데 이제 살던 집보다 비싼 집을 사기 어려워졌다"며 "실수요자만 규제하는 이해할 수 없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부동산 대책을 과거와 달리 사전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서울 집값이 5개월 연속 치솟고 매주 최대 상승 폭을 경신하는 '비상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는 방식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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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원 현금 부자만 집 사라는 대책" 분노한 실수요자들
정부는 이날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통해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지금까지는 규제 지역에서 다주택자 대출이 금지됐지만, 1주택자나 무주택자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40%까지 대출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 조치는 고가 아파트에 대해 1주택자·무주택자 등 실수요자 대출까지 막았다. 15억원 넘는 집은 현금으로만 사야 한다는 뜻이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실수요자들은 정부의 초강경 대출 규제에 대해 "수요·공급 원리에 맞서는 반(反)시장적, 모순의 정책"이라고 성토했다. 정부는 "일부 투기 수요로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며 이번 대책의 배경을 밝혔지만, 이날 시장에서는 "현금 부자만 집 사라는 대책" "국가가 국민의 금융 생활을 기습적으로 막아버렸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가입자가 80만이 넘는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는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 국가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15억원 현찰이 없으면 그냥 찌그러져 살라는 것 아니냐. 대출받는 것도 개인 신용이나 능력일 텐데…"라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연구위원은 "특히 강남권 고가 주택 진입은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지역 내에서 시가 9억원이 넘는 집을 살 때도 지금보다 대출 한도가 더 줄어든다. 14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지금은 5억6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4억6000만원에 그친다.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규제도 강화돼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등을 끌어 집 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규제 지역 내에서 실수요자로 인정받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요건도 까다로워졌다. 또 전세 자금 대출을 받은 후 시가 9억원이 넘는 집을 사거나 2주택 이상 보유하면 전세 대출금을 즉시 회수하기로 했다.
공급 대책은 시늉만
정부는 이번에 조정대상지역 다(多)주택자가 내년 상반기까지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 중과(重課)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일부 '퇴로(退路)'를 열었다. 하지만 대상을 '10년 이상 보유 주택'으로 한정해 충분한 매물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수요자 대출을 사실상 원천 봉쇄해 실제 거래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정부가 내놓은 주택 공급 확대 대책도 대부분 '재탕'인 데다, 주택 공급 효과도 크지 않아 '시늉만 했다'는 평가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 확대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경우 공급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날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 계획'은 정상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4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사업 승인 주택은 2400가구로 전체의 6%에 불과하다. 정부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해 내년까지 1만5000가구 이상 사업 승인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 택지 개발 사업 계획을 내년 하반기까지 세우고 토지 보상에 착수한다는 종전 계획도 다시 언급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 사업 추진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있지만, 서울시와 함께 임시 지원 조직을 만든다는 내용이 전부다.
채성진 기자 이기훈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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