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vs 시공사, 어느쪽이 甲?


입찰땐 조합원이 갑, 계약 후엔 시공사가 갑?
양측이 짜여진 판 벌리기도…현장점검 예고편 수두룩
"시공사들이 입찰할때나 잘 보이려고 하지 계약서에 도장 찍고 나면 슈퍼 갑이에요."(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 조합장)

"요즘은 조합이 마음만 먹으면 시공사 갈아치우는게 일도 아니더라고요."(대형건설사 관계자)


갑과 을. 통상 주도권을 지닌 쪽은 '갑' 그 반대 쪽은 '을'이라고 한다. 정비업계에선 시공권을 쥐고 있는 조합이 '갑'으로 조명되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그 상하관계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경우가 많다.

시공사는 정비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조합에 고개를 숙이는가 하면, 조합은 조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시공사를 어르고 달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권한 행사(갑질)가 나타나 조합 내홍이 생기거나 형사처벌을 받는 등 파행을 맞는 사업장도 수두룩하다.


조합의 특정 세력과 시공사가 미리 판을 짜놓고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보다 못한 정부와 지자체가 점검에 나서거나 관련법을 개정했으나 이같은 관행의 고리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계약 전-후로 확 달라지는 풍경
시공사와 조합의 관계는 시공사 계약을 기점으로 바뀌곤 한다.

우선 시공사 선정 총회 전까지는 조합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정비사업 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할때 일반경쟁에 부쳐야 하기 때문에 시공사 입장에선 조합원들의 표를 한표라도 더 확보해놔야 경쟁사를 제칠 수 있어서다.

시공사 선정 절차는 모집공고→시공사 현장설명회 개최→입찰 마감(2개 이상 시공사 참여)→시공사 합동설명회 개최→시공사 선정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기준'에 따르면 조합은 시공사 선정 총회 20일 전에 합동설명회를 열도록 돼 있는데, 그 전까지는 시공사들이 개별 홍보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홍보 제한 기간이 명확하지 않는 데다 그동안의 관행이 있어 시공사들은 암암리에 조합원들과 접촉해 홍보에 나선다. 이 때는 시공사들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겠다'는 식이라는 게 정비업계 조합원들의 공통된 얘기다.

서울지역 유망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집 앞에 서서 종일 기다리거나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잘보이려 노력하더라"며 "개별 홍보가 제한된 기간에도 조합원 우편함에 홍보 자료를 놓고 가거나 타시공사와 입찰 조건을 비교한 문서를 집 앞 마당에 던져놓고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시공사들이 애가 타 있는 시기에 조합들은 기세등등하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시공사들이 아쉬운 입장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며 "조합원 중에는 입찰 담당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사에 공문을 보내 직원을 교체해달라고까지 하는데 실제로 교체된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시공사 계약 후 뒤집히기도 한다.

 



정비사업은 '속도전'이기 때문에 조합 입장에서 시공사가 최대한 빨리 공사를 진행해 분양하기를 바란다. 이때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 등을 요구하며 조합을 쥐락펴락 하는 사례도 있다.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조합장은 "시공사들은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식이라 막상 계약하고 나면 말을 바꾼다"며 "조합은 사업이 지체될수록 금융비용 등이 추가되는데 시공사는 별다른 손해가 없어 급할게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구체적인 이유없이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하거나 기존에 했던 약속을 이행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 흑석3구역, 중앙2구역, 과천6단지 조합들이 주장했던 사례가 그렇다.

최근 들어서는 시공사를 선정한 후에도 조합들이 입찰을 취소하는 사례(신반포15차, 홍은13구역 등)가 늘고 있지만 이럴 경우 사업이 지연될 수 있어 조합 입장에서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다.

이미 그림은 짜여 있다?
특정 조합 세력과 시공사가 손을 잡고 판을 짜놓은 뒤 시늉만 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서울의 한 대형 재개발 사업장에선 A시공사와 조합장이 시공사 계약을 약속한 뒤 경쟁입찰 공고를 내걸었다는 후문이 공공연하게 퍼졌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시공사들도 입찰에 들어오게끔 해서 주목을 끌어 땅값을 올리면서 (실제로는) 특정 시공사를 밀어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조합원이 의혹을 제기한 시공사 선정 취소 총회 장면./조합원 제보

시공사들끼리 다수의 정비 사업장을 두고 '거래'를 한다는 의혹도 있다. 그는 "정비사업단지가 여러개 있을 경우 서로 하나씩 나눠갖기로 하고 최종 입찰엔 참여하지 않아 경쟁입찰할 수 없게끔(2개 이상의 시공사가 참여하지 않을 경우) 상황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며 "두번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진행되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포주공1단지 3주구의 경우 조합장이 특정 시공사를 밀어내려 한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조합 내홍이 생기고 형사고발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 단지는 지난해 7월 총회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을 수의계약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특화설계안 등 제안서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올해 1월엔 시공사 자격 취소 총회까지 열어 찬성률이 과반이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인명부 조작 논란 등이 불거지며 내홍만 더 커졌다. 결국 사업이 1년간 표류하다가 조합장 형사고발 등을 진행하고 최근에 조합장을 새로 선출했다.

한 조합원은 "당시 조합장이 시공사로 선정된 HDC현대산업개발을 밀어내고 다른 시공사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각종 총회를 수상하게 진행했다"며 "시공사 자격 취소 총회를 할때도 본인 확인을 하는데 조합 관계자들이 자켓으로 가리고 진행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방배삼익아파트도 조합과 시공사의 유착 의혹이 나오면서 서초구청이 서울시와 협의해 조합의 실태점검과 현장점검 등을 계획 중이다.
채신화 기자 csh@bizwatch.co.kr 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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